[목요광장] 가족인 듯 가족이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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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광장] 가족인 듯 가족이 아닌

류유선 대전세종연구원 책임연구위원

  • 승인 2023-05-03 12:19
  • 수정 2023-05-04 09:28
  • 신문게재 2023-05-04 18면
  • 심효준 기자심효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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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유선 책임연구위원
고마운 사람이 많다. 고민이 생겼을 때나 실질적 도움이 필요할 때 언제든 기꺼이 손을 내밀어 준 사람들이다. '자주 전화할 걸… 다정하게 말할 걸… 지난주에 찾아뵐 걸…' 후회는 오월에 찾아온다. 오월의 후회는 너무 가까워서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지 못한 친밀한 가족들에게 향한다.

2007년 결혼과 함께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이주한 혜진(가명) 씨 마음은 오월이면 편치 않다. 딸을 출산하고, 산후조리를 해줄 사람을 구하지 못했을 때, 필리핀 어머니가 대전에 와 혜진 씨와 딸을 돌봐줬다. 낮에 직장을 다니며 야간대학에서 공부할 때, 청소와 빨래, 식사를 담당하면서 딸을 돌봐준 것도 필리핀 어머니였다. 혜진 씨 딸은 지금 필리핀 부모님 댁에서 중학교에 다니고 있다.

2006년 결혼과 동시에 우즈베키스탄에서 대전으로 온 영주(가명) 씨가 첫째 아이를 낳았을 때, 연로한 친정부모님 대신 큰 언니가 영주 씨와 아이를 돌봐줬다. 둘째 쌍둥이를 출산하고, 아이 셋을 돌볼 엄두가 나지 않아 울고 있을 때도 우즈베키스탄 가족이 손을 내밀어 줬다. 친정집에서 부모님, 형제자매, 사촌들의 헌신적인 돌봄을 6개월 받고, 씩씩해진 영주 씨는 아이 셋과 대전으로 돌아왔다.

2009년 국제결혼으로 대전에 온 베트남 출신 유라(가명) 씨는 첫 아이 출산 후 우울증이 왔다. 몸이 좋지 않은 어머니 대신, 아버지가 유라 씨와 아이를 돌봐줬다. 아버지의 음식과 위로 덕분에 유라 씨의 우울은 많이 나아졌다.



'다문화가족'이라 불리는 혜진 씨와 영주 씨, 그리고 유라 씨와 같은 이주여성이 대전에 많다. 필리핀과 베트남, 우즈베키스탄 외에도 중국과 캄보디아, 네팔, 태국, 몽골 등 국적도 다양하다.

2021년 11월 1일 기준, 대전 다문화가구원은 2만 3139명이다. 한국인 배우자 3,568명, 결혼이민자와 귀화자 6,681명, 자녀 6,538명, 그리고 기타동거인 6,352명이다(행정안전부, 2022). 기타동거인은 ‘한국인 배우자의 직계존속 또는 외국인배우자의 직계존속 등 다문화가구 구성원이나 한국인 배우자, 결혼이민자, 귀화자, 미성년 자녀가 아닌 동거인’이다. 국제결혼 남녀의 부모가 주로 기타동거인이고, 대전의 외국인 기타동거인은 458명이다. 이들은 출산과 양육을 하는 결혼이주민을 돕거나, 직장에 다니거나 학업을 지속하는 결혼이주민을 대신해 자녀를 돌보고 집안일을 한다.

돌봄 부족은 이주민에게 일상적이다. 임신과 출산, 양육 전 과정에 필수적인 신체적 돌봄 외에도 다른 언어와 문화 배경에 둘러싸인 이주여성의 정서적 돌봄은 출신국 가족이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결혼이주민 부모는 손자녀 1명당 2회, '자녀 양육 지원' 자격으로 입국이 가능하고 머물 수 있는 기간은 한정돼 있다.

이들이 다문화가족 돌봄 수행의 주된 역할자들이다. 여기서 '다문화가족'의 범주는 누구까지 인가라는 질문에 직면하게 된다. 현재 ‘다문화가족지원법’에서 결혼이주민 부모는 다문화가족이 아니다. 법에서의 다문화가족은 ‘한국 국적을 가진 자와 외국인’ 및 ‘한국 국적을 가진 자와 한국 국적을 취득한 개인’으로 이뤄진 가족을 의미한다. 즉 법이 의미하는 다문화 가족은 ‘한국 국적을 가진 자와 외국인의 결합’을 기반으로 한다.

다문화가족의 형성과 유지를 위한 이들의 기여는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법이 정한 양육지원 기간이 끝나면 돌아가야 하는, 가족인 듯 가족이 아닌 '기타동거인'으로 불리는 이들에게 다문화가족 구성원은 어떻게 감사의 마음을 전할 수 있을까? 다문화가족 구성원에게 오월은 감사와 후회가 교차하는 계절일 수 있다.

/류유선 대전세종연구원 책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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