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광장] 돌봄이 기본이 되는 사회

  • 오피니언
  • 목요광장

[목요광장] 돌봄이 기본이 되는 사회

류유선 대전세종연구원 책임연구위원

  • 승인 2023-08-23 09:47
  • 심효준 기자심효준 기자
2023062801002015500078991
류유선 책임연구위원
'저출생'과 '인구감소'라는 국가적 위기와 '소멸'이라는 지역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불안이 커지는 가운데, 2022년 대전광역시의 조출생률과 합계출산율은 2021년에 비해 각각 0.2와 0.03명 증가했다. 미세하지만, 타 시도의 감소와 비교하면, 의미 있는 증가다.

전례 없는 돌봄 부족을 경험하면서 돌봄의 중요성을 깨달았던 지난 몇 년을 지나면서 나온 출산율 증가이기에 놀랍고, 출산율을 걱정하면서 정작 아무도 '돌봄'을 하려 하지 않는 분위기에서 나온 증가기에 더욱 놀랍다.



학교와 돌봄 시설이 문을 닫을 때, 돌봄노동은 출근 여부와 상관없이 여성에게 휘몰아쳤다. 이때 만난 여성들의 이야기는 공적 돌봄 시스템이 가족관계에 직접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려준다. 아이들과 함께 점심을 먹고, 산책도 하던 처음 며칠은 즐거웠단다. 그러나 그 후로는 밤마다 운동장을 돌며 울었다는 엄마들이 많았다.

엄마들은 온라인 등교로 집에 있는 자녀의 수업 참여 및 집중 여부를 확인하고, 진도를 관리하고 숙제를 지도했다. 집에 있는 자녀와 재택근무하는 남편 점심을 챙기면서,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에 투여되는 그녀들의 시간은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육체적 힘듦보다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상황이 더 힘들다고 했다. 엄마들은 배우자 및 자녀와의 관계,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으로 인한 피로와 우울감을 호소했다.



무엇보다도 양육자를 힘들게 한 건, 온종일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온라인 수업은 잘 듣고 있는 건지, 내용은 제대로 이해하는지, 온종일 자녀와 같이 있어도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집에 아이들만 남기고 출근해야 하는 양육자의 마음은 더 불안했을 것이다.

돌봄이 온전히 개인, 가족에게 맡겨진 시기를 경험하면서, 우리는 '돌봄'이 중요한 기술이자, 능력, 자원이라는 걸 깨달았고, 돌봄 정책의 확대에 동의했다. 그러나 수요와 공급이 우선 논의되면서, 돌봄을 받는 아이와 돌봄을 제공하는 양육자나 노동자가 어떤 공간과 환경에서, 어떤 관계와 조건 속에서 돌봄을 주고받는지에 대한 논의는 보이지 않는다. '돌봄'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이 어려운 직종에는 왜 특정 성별이 많이 고용되어 있는지, 돌봄노동의 가치는 왜 낮게 책정되어 있는지 등의 논의는 진척되고 있지 않다.

개인의 능력과 경쟁력이 척도가 되는 직장에서, 성과와 업적을 쌓기 위해 오래 일해야 하는 일터에서 돌봄을 위해 노동시간을 줄여야 하는 이들이 설 자리는 없다. 24시간 돌봄을 필요로 하는 자녀를 낳아 키운다는 건, 더 많은 노동으로 돌봄노동을 제공할 노동자를 구매하거나, 부부 가운데 한 명이 일을 포기해야 하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기 때문이다. 인정받는 노동자이면서 좋은 양육자가 되기 어려운 사회다.

사회에 참여하는 여성 수가 증가하고 있지만, 돌봄 때문에 경력을 포기하는 여성들이 줄지 않는다. 출산휴가, 육아휴직, 육아시간 등 여러 제도가 만들어지고 있고 덕분에 일과 돌봄을 병행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제도를 여전히 사용할 수 없는 조건의 이들이 많고, 제도를 이용하면서 맘이 편치 않은 이들도 있다.

좋은 '돌봄'은 몸과 마음, 시간, 그리고 전문성을 기반으로 한 좋은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삶의 기술이자 공동체의 인프라이며, 지역사회의 분위기다. '돌봄'이 기본이 되는 사회의 시민은 돌봄을 남에게 미루지 않는, 기꺼이 돌보는 사람일 거다. '좋은' 돌봄 능력과 기술을 가진 시민이 돌봄사회의 주요 자원으로 인정받을 것이다.

아무나 할 수 있으나 아무도 하려 하지 않는 것, 그런데 여성 고유의 특성으로 돌봄이 인식되는 사회에서, 돌볼 가족이 없는 혹은 돌봄노동에서 제외된 노동자가 디폴트값인 노동 사회에서, 출산을 결정한다는 것은 경력을 포기하면서, 기한 없고, 퇴근 없고, 급여 없는 돌봄노동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돌봄이 장려되지도 선호되지도 않은 사회에서 출산은 격려되기 어렵다.

/류유선 대전세종연구원 책임연구위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정부부처·위원회'의 세종시 이전… 6.3 지방선거 분수령
  2. '결국 일자리'…천안·청주, 청년친화지수 전국 상위권
  3. 역할 커진 의용소방대… 처우 개선·내부 개선 함께 가야
  4. [세종시의원 후보군 릴레이 인터뷰] 17선거구 김현옥 "현장서 답을 찾는 실천형 정치"
  5. 345㎸ 송전선로 대전 5개 자치구와 충남 14개 시군 영향권…"정부차원 재검토를"
  1. 민주당 세종시의원 후보 신청 38명 "검증 개시, AI도 도입"
  2. 퇴행성 관절염 치료 시대 열리나… 연골 '방패' 단백질 찾았다
  3. 지역서 키운 쌍둥이 경찰의 꿈… 건양대 글로컬캠퍼스서 현실로
  4. [사설] 수도권 잔류 정부부처·위원회 세종 이전해야
  5. 신천지 빌립지파, '42년' 성장 서사…지역과 해외로 확장

헤드라인 뉴스


李정부 국정과제 후속조치 하세월…충청 핵심 현안 지지부진

李정부 국정과제 후속조치 하세월…충청 핵심 현안 지지부진

이재명 정부가 국정과제 반영을 통해 충청권 등 지역 현안 해결을 약속했지만, 이를 뒷받침할 후속 조치는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특히 혁신도시 공공기관 2차 이전 등 주요 사업이 포함된 지역 과제 세부 계획 발표가 늦어지면서, 사업 추진 동력은 물론 국가 계획 반영 여부마저 불투명해지고 있다. 19일 지방시대위원회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해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맞춰 '17개 시·도별 7대 공약, 15대 지역 과제'를 확정하고, 이를 국가균형성장 종합계획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후속 절차는 속도를 내지 못한 채 답보 상태다. 당..

충청권 혼인 늘고 이혼 줄었다…대전 조혼인율 전국 1위
충청권 혼인 늘고 이혼 줄었다…대전 조혼인율 전국 1위

대전과 세종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조혼인율을 기록하며 '젊은 도시'의 면모를 다시 한번 입증했다. 특히 대전은 인구 1000명당 혼인 건수를 의미하는 조혼인율이 6.1건으로 전국 1위를 기록하며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가장 높은 곳에 이름을 올렸다. 19일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2025년 혼인·이혼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결혼 건수가 높은 증가세를 유지한 24만 건으로 전년보다 1만 8000건(8.1%) 증가하며 팬데믹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이는 2018년(25만 8000건) 이후 7년 만에 가장 많은 규모다. 국가데..

세종시·국회의원 `행정수도 명문화` 협력… 시기와 방법은 이견
세종시·국회의원 '행정수도 명문화' 협력… 시기와 방법은 이견

우원식 국회의장이 제안하고 이재명 대통령이 재차 주문한 ‘단계적 개헌’과 관련, 세종시와 세종시 국회의원이 행정수도 명문화 개헌에 힘을 모으기로 했다. 다만 정부와 정치권에 검토 중인 6월 3일 지방선거와 ‘5·18 정신 헌법 전문 수록과 비상계엄 요건 강화, 지역균형발전 정신’을 담은 개헌 국민투표에 '행정수도 세종'을 포함하는 것에 대해선 이견을 보였다. 세종시는 19일 여의도 서울사무소에서 최민호 세종시장과 더불어민주당 강준현(세종시을)·조국혁신당 황운하(비례) 의원의 '세종시 행정수도 완성을 위한 정책간담회를 마련했다. 간담..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번호판 키우고 더 뚜렷해졌다’…이륜차 전국번호판 도입 ‘번호판 키우고 더 뚜렷해졌다’…이륜차 전국번호판 도입

  • 지역사회 든든한 파트너…제5주년 의용소방대의 날 개최 지역사회 든든한 파트너…제5주년 의용소방대의 날 개최

  • 이란 침략 전쟁 중단 촉구 기자회견 이란 침략 전쟁 중단 촉구 기자회견

  • 도심 유휴공간, ‘스마트팜으로 대변신’ 도심 유휴공간, ‘스마트팜으로 대변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