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수포자' 말고 '수사자'

  • 오피니언
  • 세상읽기

[세상읽기] '수포자' 말고 '수사자'

  • 승인 2023-09-20 10:00
  • 현옥란 기자현옥란 기자
수학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어느 날 학교에 다녀온 아이가 "나는 수포자 할거야"라고 선언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수업시간에 수학 단원평가를 했는데 절반가량을 틀려서 그렇단다. '수포(수학 포기)는 대포(대학 포기)요 영포(영어 포기)는 인포(인생 포기)다'라는 말을 이제 겨우 인생 12년 차인 초등생에게서 들을 줄이야…. 교사들 얘기로는 '초3 나눗셈과 분수'나 '초5 분수의 사칙연산'을 배우면서 학생들이 수포의 첫 고비를 맞는다고 한다. 한 시민단체의 조사를 보면 초6 학생의 11.6%가 '스스로 수포자라고 생각한다'고 응답했다. 중3 학생은 22.6%, 고2 학생은 32.3%에 달했다. 또 초6의 44.9%, 중3의 60.6%, 고2의 72.4%가 '수학 때문에 정서적인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말했으며, 초6의 75.8%, 중3의 83.8%, 고2의 86.7%가 '학교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는 사교육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수학 사교육을 시작하는 나이도 어려졌다. 한 언론조사에서 초교 입학 전에 수학 사교육을 시작한 비율이 70.6%로 영어(61.3%)를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수학 문제를 풀기 위해선 먼저 문제를 읽고 이해할 줄 알아야 하기 때문에 유아를 대상으로 한글도 빠르게 떼주고 수학도 함께 가르치는 일타강사가 인기라는 사실도, 유명 수학학원에 입학하기 위한 과외가 성행한다는 뉴스도 더는 놀랍지 않다.

최근 '공태기(공부와 권태기의 합성어)'를 겪고 있다는 초6 학생을 상담하는 유튜브 영상을 본 적 있다. 영상에서 아이는 고등학교 과정을 선행 중이며 하루 최대 공부시간 20시간을 기록한 적이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는 이유는 Y대 의대에 가기 위해서라고…. 이른 나이에 뚜렷한 목표를 갖고 노력하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한 반면, 한창 뛰놀며 몸도 마음도 성장해야 할 시기에 긴 시간을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이 아이의 꿈이 '왜 의사가 되고 싶고, 어떤 의사가 되고 싶은지'가 아닌 '의대 진학'이라는 얘기를 들으며, 혹시 자녀를 '의치한약수(의대 치대 한의대 약대 수의대)'에 보내고자 하는 부모의 욕망이 아이에게 반영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대학 진학만을 위해 수년간 공식들을 줄줄이 암기해 기계처럼 끊임없이 문제를 풀어대는 수학이 재밌을 리가 없다. 어렵고 재미도 없으니 끈기와 집중력으로 버티다가도 지치고 포기하기 십상이다. 수학에 대한 흥미와 호기심, '수학이 어려워도 할 수 있다'는 의욕과 자신감을 불어 넣어줄 수학 공부법은 지구촌 모든 부모와 교사들의 풀리지 않는 난제일 것이다.



난 수학을 좋아한다. 문제를 푸는 과정은 더디고 복잡하고 어렵기도 하지만 정답이 분명하고 명쾌하다는 것이 수학의 매력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초교 입학 전 구구단을 다 못 외워서 엄마에게 혼이 난 적이 있다. 왜 이걸 외워야 하는지 이유도 모른 채 엄마를 원망하면서 앵무새처럼 구구단을 머리에 욱여넣었다. '삼삼은 구'가 '3 곱하기 3'이고 '3을 3번 더한 수'와 같다는 의미는 학교에 들어가서야 알았다. 개념을 깨우치고 나니 구구단의 의미도 알게 되고 산수가 쉬워졌다. 수학의 매력에 본격적으로 빠진 것은 고교 때의 수학선생님 덕이 크다. 당시 수업시간 내내 선생님과 문답을 주고받거나 선생님이 가르쳐주신 것과는 다른 방식의 풀이도 시도해보면서 문제를 풀곤 했는데 그 시간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이후 고3의 무덤이라는 미분, 적분, 함수도 마찬가지. 하얀 연습장이 새까매지도록 문제풀이를 하고 마침내 답을 도출했을 때의 보람과 쾌감이란…. 그 시절의 유쾌한 경험 덕분에 아직도 수학은 내게 재미있는 학문으로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있다. 내 아이도 엄마를 가르치셨던 선생님과 같은 '인생의 교육자'를 만나 '수사자(수학을 사랑하는 자)'가 되길 바래본다.
현옥란 뉴스디지털부 부장

현옥란-수정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시가 총액 1위 알테오젠' 생산기지 어디로?… 대전시 촉각
  2. '행정수도 개헌' 이재명 정부 제1국정과제에 포함
  3. "국내 최초·최대 친환경 수산단지 만든다"… 충남도, 당진시 발전 약속
  4. 이 대통령, 세종시 '복숭아 농가' 방문...청년 농업 미래 조망
  5. 논란의 금속보호대 대전교도소 1년간 122회 사용… 기록누락 등 부실도
  1. "착하고 성실한 학생이었는데"…고 이재석 경사 대전대 동문·교수 추모 행렬
  2. 고교학점제 취지 역행…충청권 고교 사교육업체 상담 받기 위해 고액 지불
  3. 이철수 폴리텍 이사장, 대전캠퍼스서 ‘청춘 특강’… 학생 요청으로 성사
  4. ‘숭고한 희생 잊지 않겠습니다’
  5.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대전충청본부, 치매안심센터 찾아 봉사활동

헤드라인 뉴스


논란의 금속보호대… 대전교도소 1년간 122회 사용

논란의 금속보호대… 대전교도소 1년간 122회 사용

<속보>교정시설에서 수용자의 폭력이나 자해를 방지할 목적으로 제한적으로 허용되는 금속보호대가 대전교도소에서 1년간 122차례 사용되고 한 번 사용되면 평균 3시간 50분간 수용자에게 착용시킨 것으로 조사됐다. 금속보호대를 이용해 6시간 이상 수용자를 결박한 사례도 16차례 있었는데 사후 전자기록을 남겨놓지 않거나 부실작성 등 보호장비 사용에 대한 문제가 추가로 확인됐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대전교도소장에게 발송한 직권조사 결정서를 분석한 결과 폭력이나 자해 위험 수용자를 관리할 목적의 여러 보호대 중 결박 강도에 따라 통증이 뒤따르는..

서울대 10개 만들기·탑티어 교수 정년 예외…교육부 새 국정과제 본격 추진
서울대 10개 만들기·탑티어 교수 정년 예외…교육부 새 국정과제 본격 추진

새 정부의 서울대 10개 만들기, RISE 재구조화, AI 인공지능 활용 등 교육 분야 주요 국정과제가 본격적으로 추진된다. 학문별 대가로 선정된 교수에 대한 정년 제한을 풀고, 최고 수준의 연구비를 지원하는 것은 물론 대학생 학자금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지원 대상을 확대한다는 계획도 내놓았다. 교육부는 6대 국정과제를 위한 25개 실천과제(공동주관 1개 국정과제, 3개 실천과제 포함)를 최종 확정했다고 17일 밝혔다. 우선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실현해 거점국립대에 대한 전략적 투자와 체계적 육성에 나선다. 학생 1인당 교육비를..

해수부 부산 이전… `정부세종청사` 공백 해소 대안은
해수부 부산 이전… '정부세종청사' 공백 해소 대안은

이재명 새 정부가 오는 12월 30일 해양수산부의 부산 청사 개청식을 예고하면서, 정부세종청사 공백 해소를 위한 동반 플랜 마련을 요구받고 있다. 수년 간 인구 정체와 지역 경제 침체의 늪에 빠진 세종시에 전환점을 가져오고, 정부부처 업무 효율화와 국가 정책 컨트롤타워 기능 강화를 위한 후속 대책이 중요해졌다. 해수부의 부산 이전에 따른 산술적 대응은 당장 성평등가족부(280여 명)와 법무부(787명)의 세종시 이전으로 가능할 것으로 분석된다. 단순 셈법으로 빠져 나가는 공직자를 비슷한 규모로 채워주는 방법이다. 지난 2월 민주당..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숭고한 희생 잊지 않겠습니다’ ‘숭고한 희생 잊지 않겠습니다’

  • 대한민국 대표 軍문화축제 하루 앞으로 대한민국 대표 軍문화축제 하루 앞으로

  • ‘청춘은 바로 지금’…경로당 프로그램 발표대회 성료 ‘청춘은 바로 지금’…경로당 프로그램 발표대회 성료

  • 새마을문고 사랑의 책 나눔…‘나눔의 의미 배워요’ 새마을문고 사랑의 책 나눔…‘나눔의 의미 배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