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르 뒤 몽블랑을 가다] 4-TMB의 매력, 이방인과의 불편한 동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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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 뒤 몽블랑을 가다] 4-TMB의 매력, 이방인과의 불편한 동거

긴 반지? 쇼트 팬츠? 당신의 선택은
전천후 사계절 레포츠 산촌마을
최악의 도미토리 잠자리 배정

  • 승인 2023-09-26 08:58
  • 심효준 기자심효준 기자
트레킹(trekking), 심신 수련을 위해 산이나 계곡 따위를 다니는 도보 여행. 등반과 하이킹의 중간 형태로, 하루에 15~20㎞ 정도 걸으며 야영 생활을 한다고 사전에 정의돼 있다. 건강과 힐링, 낭만을 떠올리게 하는 트레킹 열풍 속에 많은 코스들이 소개되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투르 뒤 몽블랑(TMB·Tour du Mont Blanc)'은 대표적 코스로 손꼽힌다. 서유럽에서 가장 높은 산인 몽블랑(4810m) 둘레를 일주하는 170㎞ 트레킹 코스다. 보통 프랑스 레주슈(Les Houches)에서 출발해 시계 반대 방향으로 한 바퀴 돌아 레주슈 바로 윗 도시인 샤모니몽블랑에서 여정을 마무리한다. 프랑스∼이탈리아∼스위스 3개국을 통과한다. 주로 6∼9월 여름철에 세계 트레커들이 찾는다. 올해 7월 '충청도 사나이'의 뚝심으로 투르 뒤 몽블랑 트레킹에 도전한 김형규 작가의 여행기를 지면에 옮겨본다. 12월까지 매주 수요일 자에 게재할 예정이다. <편집자 주>



해발 1800m에서 맞닥뜨린 빗줄기는 다행히 하산길에 들어서면서부터 잦아들었다. 비가 그치고 기온이 올라가자 몸에 땀이 차올라 판초우의와 바람막이까지 훌러덩 벗었다. 판초우의와 바람막이는 수시로 입고 벗기를 반복해야 한다. 5㎞쯤 하산해 르 샹펠(Le Champel)마을의 한 농가 잔디밭에서 점심을 먹었다. 격식을 차린 성찬일 수 없다. 생존을 위한 칼로리 주입이다. 아침에 길을 나설 때마다 각자 통조림샐러드, 주스 한 봉지를 챙긴다. 식빵, 바게트, 치즈, 햄, 버터 등은 그날그날 지원자가 대표로 짊어진다. 삶은 감자와 당근, 오이도 간식으로 챙긴다. 숙소에서 온수를 보온병에 담아와 컵라면을 먹는 일행도 있다. 들쩍지근한 통조림샐러드는 우리 입맛에 맞지 않았다. 점심때마다 얼큰한 국물 생각이 간절했다.

산장
로젤레트 산장 전경. 해발 1800m고산지대에 지어진 로젤레트 산장은 전면이 레스토랑이고 공동침실은 뒤쪽에 있다. 워낙 오지여서 통신과 인터넷이 안되고 전력도 약해 실내가 어둑하다.(사진=김형규 여행작가)
7월 하순 유럽 전역은 무더위로 아우성치는데 TMB에서 첫 점심을 먹는 샹펠 마을은 해발 1100m의 산골마을이라 그런지 햇볕이 따가울 뿐 덥지는 않았다. 우리나라 트레커들이 TMB에 오기 전 공통으로 고민하는 게 '어떤 옷을 가져갈까'일 것이다. 여름이라고는 하는 데 고산지대를 오르내려야 하기에 하절기와 춘추용에다 초겨울용까지 만지작거린다. 특히 셔츠와 바지는 짧은 것과 긴 것을 놓고 저울질하지만, 십중팔구 긴소매와 긴바지를 택한다. 자외선과 노출에 대한 경계심 때문일 것이다. 반면 강한 햇살에 익숙한 유럽인들은 반소매, 민소매 셔츠나 쇼트 팬츠를 선호한다. 이런 옷가지는 짐의 무게와 부피를 줄여주고 세탁이 손쉽고 빨리 마른다.

샹펠 마을 이후부터 한적한 시골길이 이어졌다. 개울을 따라 난 오솔길과 자갈길을 거닐다가 농가를 지나칠 때는 차 한 대 겨우 다닐만한 포장된 농로를 통과하기도 했고 마을이 멀어지면 임도처럼 평탄한 산길이 펼쳐졌다.



15㎞쯤 지나자 레 콩타민 몽주아(Les Contamines-Montjoie·이하 '레콩타민')가 나타났다. 지나쳐온 마을과 달리 제법 정비된 포장도로가 놓여있고 산장형 호텔이 즐비한 풍경에 레콩타민임을 금방 알 수 있었다. 가이드 실비는 레콩타민 마을 외곽 봉낭천(川, Le Bonnant)을 따라 난 오솔길로 우리를 안내했다. 봉낭천은 하천폭이 넓지는 않았지만, 우리나라 깊은 산중의 계곡처럼 수량이 많고 물살이 거셌다. 이 하천은 내일 오르게 될 본옴므 고개(Col du Bonhomme·2329m)의 빙하에서 발원해 아르브(L'Arve)강(江)으로 흘러 들어간다.

레 콩타민 몽주아는 인구 1100여명 밖에 되지 않는 산촌이지만 사계절 레포츠로 북적이는 마을이다. 일년 내내 스키와 스노보드, 바이애슬론, 패러글라이딩, 트레킹, 승마, 산악자전거, 수영, 골프, 자전거 펌프트랙, 롤러스키, 캠핑, 놀이공원을 즐기려는 가족단위 인파로 북적인다.

레저 프로그램 중 '카니 랑도'(Cani-Rando)가 눈길을 끌었다. 반려견과 함께하는 하이킹을 말한다. 실제로 TMB 중에 반려견을 앞세우고 트레킹을 하는 현지인을 심심찮게 목격했다.

마침 주말을 맞아 레콩타민 곳곳은 10대 청소년들이 산악자전거를 타는 등 각자 취미생활을 즐기느라 왁자지껄했다. 유럽인들이 자전거와 승마, 겨울 스포츠에 강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레콩타민 레포츠공원을 벗어나자 오늘 일정을 마무리해줄 곤돌라 승강장이 나타났다.

하루 이동거리는 모두 22.2㎞, 짧지 않은 거리지만 산에서는 거리만큼 얼마나 올라가고 내려갔느냐도 중요하다. 총 오르막은 1700m, 내리막은 850m였다. 만일 이 과정을 온전히 다리에만 맡겼다면 하루에 다 이루지 못할 난코스였다. 해발 1100m의 레콩타민에서 곤돌라를 한 차례 더 갈아타고 순식간에 해발 1900m 고지대로 올라섰다. 곤돌라에서 내려 10여분 걸어가자 너른 들판에 목조건물 하나가 나타났다. 로젤레트 산장이다. 첫눈에 보기에도 아주 오랜 연륜이 묻어나는 산장이다.

테라스
로젤레트 산장의 명소인 테라스 전경. 테라스의 안락의자에 앉아 멀리 알프스 산줄기를 바라보면 하루 피로가 사라진다.(사진=김형규 여행작가)
로젤레트 산장은 1861년 해발 1871m 고산지대에서 소를 사육하기 위해 목장으로 지어졌다가 1989년 산장으로 개조되었다. 기숙사형 도미토리와 5∼6명 수용 가능한 캠핑 트레일러, 티피 텐트 등에 모두 28명까지 숙식을 제공한다. 테라스 앞 노지에는 캠핑을 할 수도 있다. 올해는 지난 7월 2일부터 개장해 9월 2일까지 영업했다. 지금은 동면에 들어간 상태로 내년 예약을 받고 있을 것이다. TMB의 모든 산장은 로젤레트처럼 여름 한철 장사를 한다.

8시간 동안 걷느라 모두 피곤했지만, 첫날 일정을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에 들떠있었다. 산장 앞 테라스에 앉아 간식을 먹거나 생맥주로 목을 식혔다. 나는 샤워를 하고 그날 입었던 옷을 가볍게 세탁한 후 야외 빨랫줄에 널었다. 비가 올 듯 말 듯 한 날씨지만 운에 맡기기로 했다.

2층으로 된 도미토리의 잠자리 배정은 가장자리부터 가족에게 우선권을 줬다. 외곽으로 밀린 나는 일행과 낯선 이방인 사이의 경계선에 잠자리를 강제(?) 배정받았다. 더군다나 그 낯선 이방인이 대학생쯤으로 보이는 빨강머리 젊은 여성이다. 집 나오면 각오해야 할 게 개고생만 있는 건 아니다. 최악의 불편한 동거도 참아내야 한다. 저 빨강머리도 불운을 탓하긴 마찬가지겠지만. 오늘 밤은 입술 테이프, 코고리, 비강 확장스프레이, 귀마개 등 민폐인이 되지 않기 위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겠다.

/김형규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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