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홍철 칼럼] 38. 가을의 상념

  • 오피니언
  • 사외칼럼

[염홍철 칼럼] 38. 가을의 상념

염홍철 한밭대 명예총장

  • 승인 2023-10-05 12:00
  • 현옥란 기자현옥란 기자
염홍철칼럼
염홍철 한밭대 명예총장
가을은 양력으로 9월에서 11월까지를 말하나 요즘은 이상기후로 늦더위가 심합니다. 그래도 세월은 못 속여 추분과 추석이 지난 지금 자고 나면 가을이 한 뼘씩 깊어지는 것을 느낍니다. 가을은 완벽한 계절이지요. 애써 농사지은 곡식을 추수하기도 하고, 책을 읽기에도, 글을 쓰기에도, 여행을 가기에도, 사색을 하기에도, 사랑을 하기에도 모자람이 없는 계절인 것 같습니다.

갈색이며 붉은색으로 옷을 갈아입는 나뭇잎을 배경으로 누구나 멋진 사색가적 분위기를 풍기게 하는 마술 같은 한 장의 사진을 남길 수 있는 계절이기도 하고, 더욱 중후해진 커피 향을 즐기며 한 템포 느린 깊이와 여유로 사유할 수 있는 철학적 계절이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이웃에 따뜻한 정을 전하는 여유로운 마음을 가질 수 있어, 안도현 시인은 '한 잎 두 잎 나뭇잎이/ 낮은 곳으로/ 자꾸 내려앉습니다/ 세상에 나누어 줄 것이 많다는 듯이/ 나도 그대에게 무엇을 좀 나누어주고 싶습니다/ 내가 가진 게 너무 없다 할지라도/ 그대여/ 가을 저녁 한때/ 낙엽이 지거든 물어보십시오/ 사랑은 왜 낮은 곳에 있는지를'이라는 <가을 엽서>를 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왜 가을방학은 없느냐고 불평하는 이야기를 자주 들을 수 있습니다. 봄, 여름, 겨울은 짧든 길든 방학이 있는데 가을만 방학이 없다는 것이 잘 이해가 되지 않지요. 더욱 아이들 입장에서 보면 덥지도 춥지도 않아 뛰어놀기 좋은 계절에 방학이 없다는 게 무척 서운하게 느껴질 법도 하겠지요. 아마도 방학은 덥거나 추워서 공부하기 어려움을 피해서 집에서 쉬라는 뜻이겠지만, 좋은 계절에 오롯이 놀기만 하는 방학을 주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인데 거두어들일 풍성함 만큼 향유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이 우리 곁에 있습니다. 가을 밤하늘에 총총히 떠 있는 별을 바라보며 걷기를 한다든지, 한적한 영화관을 찾아 예술의 향기를 물씬 풍기는 영화를 볼 수도 있고, 서점에 가서 가장 최근에 나온 시집 한 권을 사서 그날 밤 마지막 장까지 다 읽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첫눈이 오기 전까지 지인들에게 안부 전화하는 것도 가을과 어울리는 일이 아닐까요? 이렇게 밑도 끝도 없는 상념들이 꼬리를 무는 것을 보니 제 마음에도 가을이 찾아온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가을은 이렇게 풍요롭고 낭만적인 것만 아니라 쓸쓸한 계절이기도 합니다. 한 줄기 가을비가 흩날리고 나면 단풍이 짙어지고 그 찬란한 단풍이 낙엽이 되어 땅으로 내리면 머잖아 올해의 가을도 우리의 기억 속에 또 하나 잊혀진 계절로 머물 것 같습니다. 그때 누굴 만났었는지, 어느 곳에 있었는지, 누구를 미워했는지, 사랑했는지, 용서했는지도 빛바랜 일기장에나 남아있는 얘기일 뿐입니다. 올해의 가을도 그동안 보낸 무수한 세월 속의 갈피로 남아 꿈과 같은 추억이 되어 가겠지요. 지나고 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소중한 기억들을 오래오래 간직할 수 있도록 더욱 열심히 일하고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누구라 할 것도 없이 가을이라는 무대를 배경으로 살아가는 배우들입니다. 이 무대에서 누구는 어머니의 배역을 맡고 누구는 선생님이 되고 누구는 복덕방 아저씨 역을 맡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 무대도 언젠가는 막이 내리고 관객들과 배우들 모두 각자 제 갈 길을 가게 되겠지요. 김춘수 시인이 오래전에 쓴 것처럼 '어디로 물 같이 흘러가는 것' 같아 가슴이 아려 오기도 합니다. 이렇게 우리 모두는 무대를 떠나지만, 무대에서 남긴 아름다운 말들이 뒤에 나올 배우들에게 풍부한 얘깃거리를 만들어 줬으면 합니다.

염홍철 한밭대 명예총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한우리·산호·개나리, 수정타운아파트 등 통합 재건축 준비 본격
  2. 대전충남통합市 명칭논란 재점화…"지역 정체·상징성 부족"
  3. 대전 유성 엑스포아파트 지구지정 입안제안 신청 '사업 본격화'
  4. <속보>갑천 파크골프장 무단조성 현장에 잔디 식재 정황…고발에도 공사 강행
  5. 대전교육청 종합청렴도 2등급→ 3등급 하락… 충남교육청 4등급
  1. 이재석 신임 금융감독원 대전세종충남지원장 부임
  2. [중도초대석] 임정주 충남경찰청장 "상호존중과 배려의 리더십으로 작은 변화부터 이끌 것"
  3. 주택산업연구원 "내년 집값 서울·수도권 상승 유지 및 지방 상승 전환"
  4. 대전세종범죄피해자지원센터, 김치와 쇠고기, 떡 나눔 봉사 실시
  5. [행복한 대전교육 프로젝트] 대전둔곡초중, 좋은 관계와 습관을 실천하는 인재 육성

헤드라인 뉴스


김태흠-이장우, 충남서 회동… 대전충남 행정통합 방안 논의

김태흠-이장우, 충남서 회동… 대전충남 행정통합 방안 논의

대전·충남 행정통합을 주도해온 김태흠 충남도지사와 이장우 대전시장이 만났다. 양 시도지사는 회동 목적에 대해 최근 순수하게 마련한 대전·충남행정통합 특별법안이 축소될 우려가 있어 법안의 순수한 취지가 유지되는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만났다고 밝혔다. 가장 이슈가 된 대전·충남광역시장 출마에 대해선 김 지사는 "지금 중요한 것은 정치적인 부분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불출마 할 수도 있다 라고 한 부분에 대해선 지금도 생각은 같다"라고 말했다. 이장우 시장은 24일 충남도청을 방문, 김태흠 지사를 접견했다. 이 시장은 "김태흠..

정청래 "대전 충남 통합, 法통과 되면 한 달안에도 가능"
정청래 "대전 충남 통합, 法통과 되면 한 달안에도 가능"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24일 대전 충남 통합과 관련해 "충남 대전 통합은 여러 가지 행정 절차가 이미 진행되어 국회에서 법을 통과시키면 빠르면 한 달 안에도 가능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대전·충남 통합 및 충청지역 발전 특별위원회 제1차 전체회의에서 "서울특별시 못지 않은 특별시로 만들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8일 대통령실에서 대전 충남 의원들과 오찬을 가진 자리에서 "내년 지방선거 때 통합단체장을 뽑자"고 제안한 것과 관련해 여당 차원에서 속도전을 다짐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기획] 백마강 물길 위에 다시 피어난 공예의 시간, 부여 규암마을 이야기
[기획] 백마강 물길 위에 다시 피어난 공예의 시간, 부여 규암마을 이야기

백마강을 휘감아 도는 물길 위로 백제대교가 놓여 있다. 그 아래, 수북정과 자온대가 강변을 내려다본다. 자온대는 머리만 살짝 내민 바위 형상이 마치 엿보는 듯하다 하여 '규암(窺岩)'이라는 지명이 붙었다. 이 바위 아래 자리 잡은 규암나루는 조선 후기부터 전라도와 서울을 잇는 금강 수운의 중심지였다. 강경장, 홍산장, 은산장 등 인근 장터의 물자들이 규암 나루를 통해 서울까지 올라갔고, 나루터 주변에는 수많은 상점과 상인들이 오고 가는 번화가였다. 그러나 1968년 백제대교가 개통하며 마을의 운명이 바뀌었다. 생활권이 부여읍으로 바..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크리스마스 분위기 고조시키는 대형 트리와 장식물 크리스마스 분위기 고조시키는 대형 트리와 장식물

  • 6·25 전사자 발굴유해 11위 국립대전현충원에 영면 6·25 전사자 발굴유해 11위 국립대전현충원에 영면

  • ‘동지 팥죽 새알 만들어요’ ‘동지 팥죽 새알 만들어요’

  • 신나는 스케이트 신나는 스케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