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르 뒤 몽블랑을 가다] 6-한반도 수렵채집인 DNA가 K-컬처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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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 뒤 몽블랑을 가다] 6-한반도 수렵채집인 DNA가 K-컬처 뿌리

노새라는 '잡종'의 무한 변신
수도사 '본옴므'가 되는 고행의 길
경사도 28%와 각도 45도의 비밀

  • 승인 2023-10-17 08:47
  • 심효준 기자심효준 기자
본옴므가는길
본옴므 고개로 올라가는 막바지 난코스가 길게 이어져 있다. 갈수록 등산로 경사가 가팔라진다.(사진=김형규 여행작가)
호모사피엔스, 네안데르탈인, 멸종, 돌연변이, 사이보그…좀 전에 목격한 노새 트레킹은 나를 까마득한 과거여행으로 끌어들였다.

노새는 유사한 종(種)의 암말과 수탕나귀 사이에서 태어난 잡종이다. 생물분류에서 '종' 항목이 없다. 자식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노새는 말과 당나귀의 장점인 힘과 지구력, 지능 등 장점만 물려받아 유전자 복제나 개량종의 연구 대상이었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에 따르면 현생 인류의 조상격인 호모 사피엔스는 15만 년 전까지만 해도 아프리카 동부에 거주했던 평범한 영장류에 불과했다. 이후 7만 년 전부터 유럽과 동아시아에 진출해 토박이인 호모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에렉투스를 인지혁명이란 무기로 멸종시키면서 독주의 시대를 열었다. 사피엔스보다 힘이 강했던 네안데르탈인은 어떻게 지구상에서 사라졌을까.

본옴므고개
5시간 30분만에 본옴므 고개(2329m)에 도달했다. 본옴므 고개는 전망이 확 트여 등산객들이 한숨을 돌리고 사진 찍기에 좋다. 20분쯤 더 올라가면 본옴므 십자가 고개(Col de la Croix du Bonhomme·2483m)가 이날 오른 최고점이다.(사진=김형규 여행작가)
7만 년 전 어느 날 유럽 북부의 초원에서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이 맞닥뜨렸다. 낯선 침입자에 대한 경계심과 함께 비슷한 용모에 호기심을 느꼈을 것이다. 둘 사이에 자식을 낳았다면 노새처럼 불임이다. 그런데 현재 중동·유럽인의 DNA 중 1∼4%가 네안데르탈인의 것이라고 한다.



호모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을 지구상에서 몰아낼 수 있었던 무기는 언어 소통, 권모술수, 신화창조 등의 인지능력 때문으로 추정된다. 상상력을 보태자면 호모 사피엔스는 네안데르탈인을 당근과 채찍으로 몰살시킨 여세를 몰아 전 세계로 진출하면서 스스로 또는 우연히 DNA를 자가발전(돌연변이)해 오늘날 우주선까지 쏘아 올리는 능력을 물려줬다.

한편 한반도에 정착한 호모 사피엔스는 수만 년에 걸쳐 이동하면서 극적인 경험치를 DNA에 축적했다. 극한 기후와 험지를 뚫고 머나먼 동아시아의 끄트머리 한반도까지 올 수 있었다는 건 강인한 생존능력과 신박한 위기대처능력을 지닌 수렵 채집인이 아니면 불가능했다. 그 DNA가 오늘날 K-컬처라는 꽃으로 만개한 건 아닐까. 유발 하라리는 더 나아가 우리 인체가 사이보그로 서서히 대체되면서 현생 인류도 중대한 국면을 맞을 수 있다는 여운을 남겼다.

본옴므산장
본옴므 고개를 지나 800m쯤 전진하면 본옴므 산장이 나타난다. 본옴므 산장 뒤로 닭 볏처럼 생긴 능선이 크레트 데 기트 그 뒤로 보이는 설산이 로슈 메를르이다.(사진=김형규 여행작가)
좀 더 상상해보자면 15만년 전 아프리카의 초원을 뛰놀던 호모 사피엔스가 아닌, 다른 생명체가 유라시아의 초원지대로 진출해 현지 유사 종과 교배·교체이론을 완성하고 수만 년간 우월한 돌연변이를 연속배출했다면 상황은 어떻게 변했을까. 영화 '혹성탈출'이 아닌 '노새탈출'을 보는 세상이 되지는 않았을까. 이쯤 되면 우리는 유일무이하다는 우월감에서 빠져나와 모든 생명체를 포용하는 자아성찰에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찬 공기에 노새에 대한 잡다한 상상이 깨져 주위를 둘러보니 본옴므 고개(Col du Bonhomme·2329m)에 성큼 다가왔음을 느꼈다.

본옴므는 영어로 'Good Man'인데 라틴어 유래로 보면 청빈·정결·순종에 따라 독신으로 도를 닦는 '수도사'다. 본옴므 고개라는 명칭은 인근 본옴므 마을에서 따온 듯하다. 중세시대에 이 마을에 수도원이 있었는데 수도사를 뜻하는 라틴어 'bono homine'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시야가 뻥 뚫린 산허리를 따라 끝없이 이어진 트레일에 수도사처럼 묵묵히 발걸음을 옮기는 트레커들이 까마득히 줄을 이었다. 이곳에선 길을 잃을 이유가 없다. 우리나라 산은 숲이 우거져 앞사람을 놓치면 갈림길에서 길이 어긋나기 십상이지만 이곳은 키 작은 관목과 초지 사이에 확연히 눈에 띄는 등산로가 가로놓여 멀리서도 일행을 가려낼 수 있다. 다만 완만해 보이는 등산로가 실제 가보면 돌길에 경사도가 꽤 높다. 본옴므 고개에 도달하기 직전 경사도를 보니 28%나 되고 보통 20%를 웃돌았다.

막판 힘을 쏟아야 하는데 발 디딜 때마다 무릎 관절이 터질 듯한 통증과 함께 숨이 턱에 차올랐다. 이럴 땐 엉뚱한 셈법으로 고통을 분산시킬 필요가 있다.

'경사도는 왜 각도가 아닌 퍼센트로 표시할까.'

경사도 28%를 각도 28도로 착각하곤 한다. 경사도는 탄젠트값의 백분율 즉, 수평거리 100에 대한 수직거리의 비율이다. 수평거리와 수직거리가 같으면 경사도는 100%이고 각도는 당연히 45도다. 아마도 경사각도를 측량하기 어려워 길이로 계산하기 때문에 퍼센트가 보편화된 것으로 보인다. 자전거로 고도프로필을 측정했던 대전 식장산을 예로 든다면 가장 높은 경사도가 17%가 나왔고 대개 10% 초반을 유지했다.

우리나라는 일반도로 경사도를 12%(6.8도), 임도를 17%(9.6도) 이내로 규정하고 있단다. 대관령과 미시령 도로가 각각 9.8%, 9.5%라는 점을 감안하면 12% 이상은 자동차가 힘겨울 수밖에 없겠다. 군사용 차량 험비는 경사도 60%(31도)까지 등판할 수 있다고 한다. 건물 계단의 경사도는 보통 33%(18.3도)인데 맨땅이라면 서 있기 힘든 비탈이다.

본옴므 고갯길은 크고 작은 오르막 구간이 식장산의 2.5배 정도 되는 10㎞나 이어지니 트레커 입에서 곡소리가 터져 나오는 건 당연하다. 출발한 지 5시간 30분 만에 본옴므 고개에 도달했다. 황야 같은 본옴므 고개의 상징물인 작은 대피소와 낡은 표지석이 파김치 트레커들을 환대했다. 한 달 전만 해도 이곳은 눈으로 뒤덮였는데 지금은 군데군데 흔적만 남아 있다. 해발 2500m에 가까워지니 바람이 차가웠지만, 다행히 맑은 날씨였다./김형규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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