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어떤 인형이 되고 싶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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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논단] 어떤 인형이 되고 싶나?

최영민 대전평화여성회 공동대표

  • 승인 2023-12-03 08:55
  • 수정 2023-12-03 09:13
  • 송익준 기자송익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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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민 공동대표
세 개의 똑같은 나무 인형을 서클 중앙에 놓고 긍정, 부정, 무관심으로 인형에 이름을 붙인다. 학생들에게 돌아가며 이름이 붙여진 대로 말하도록 하면 긍정적인 말은 쑥스러워하고, 부정적인 말은 신나게 쏟아낸다. 수위 높은 욕을 할 때는 주위를 의식해 작게 말하기도 한다. 재밌는 활동이구나 생각하며 학생들이 자리에 앉으면 두 개의 질문을 한다. 어떤 나무 인형을 집에 가져가고 싶나? 내가 인형이라면 어떤 인형이 되고 싶나?

첫 번째 질문에는 다수가 부정적 인형을 선택하지만, 두 번째 질문에는 즉답을 피한다. 잠시 후 긍정의 인형이라고 누군가 말하면 같은 생각이라는 듯 교실은 조용해진다. 모든 사람이 생각하는 존중의 크기와 질량은 같다는 것을 공유하면 숙연해진다.



학생들이 자신과 친구를 존중하는 마음의 씨앗이 점점 커져 노동자와 시민이 다르지 않고, 학생과 교사의 인권이 다르지 않고, 이스라엘의 무차별 공격으로 천장 없는 감옥에 사는 팔레스타인 사람과 유대인이 다르지 않다는 인식을 공유하는 어른으로 성장하리라는 강사의 마음과 신뢰가 학생들에게 전달되길 바란다.

상호존중감 형성은 교육의 핵심 주제고 대전평화여성회에서 진행하는 모든 교육의 첫 번째 목표다. 존중이란 말이 높이고 중하게 여긴다는 의미이니 존중은 생명을 대하는 태도자 삶의 고갱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 존중받는다고 느낄 때가 언제고, 존중의 언어, 태도, 방식을 말해보라고 하면 잘 들어주는 것, 나쁜 말 하지 않기가 가장 많이 나온다.



나와 너, 상호존중의 모습이 내 얘기를 들어줄 때와 나쁜 말을 하지 않을 때라니 참 쉬운 것 같아도 어렵다. 존중은 추상이 아니라 개별적인 얼굴에 있고, 생각하는 방식이 말하는 방식에 영향을 주고, 말하기 방식이 존중감과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이해하고 실천하기엔 각자 너무 바쁘다. 그래서 어쩌다 몇 시간이라도 찾아가는 외부자인 강사들이 이 역할을 해야지 하면서 매번 수업을 고민하고 정성스럽게 준비한다.

대화의 실패는 곧 존중의 실패임을 알아차리길 바라며 짧은 활동과 낯선 질문 몇 개로 학생들의 마음을 흔들어 자명한 것을 자명하지 않게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교육은 대답이 아니라 질문으로 완성되고, 질문하기 시작하면 자신과 세계에 대한 이해를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으니 질문을 선물로 생각한다.

인생의 많은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고 자녀를 보내고 학위와 진급 다양한 이유로 배움에 열정이 많은 우리가 스스로 이런 질문을 자주 했으면 좋겠다. 평등한 교육이 능력주의 사회를 만드는 역설의 학교에서 학생과 교사 학부모에게 학교는 무엇인가? 평화로운 관계는 어떻게 만드는가? 폭력으로 깨어진 관계를 법으로 회복할 수 있나? 수년간 학교와 경찰서와 가정법원을 드나들며 절실하게 느끼는 것은 학교뿐 아니라 우리는 질문하고 대화할 수 있는 여건이 준비되지 않았다는 안타까움이다.

'모든 문명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눠보기 전까지 우리의 교육은 완성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시어도어 젤딘’은 요리가 아니라 스물네 가지의 질문이 적혀 있는 대화 메뉴를 만들었다. 손님을 초대해서 둘씩 마주 보고 앉아 한 번에 한 가지 질문을 골라 서로 답하며 대화를 이어가는 프로그램을 '대화의 만찬'이라 불렀다. 처음 만나는 사이이거나 알아도 잘 모르는 사람끼리 둘씩 앉아 긴 대화를 나누는 동안 삶의 이야기는 상호 물들고 영향을 주고받는다. 질문과 대화 없이 사는 건 주먹을 쥐고 사는 것과 같지 않을까. 아무것도 줄 수도 받을 수도 없다면 각자 무인도에 사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일주일 전, 협소한 나를 확장해주는 수많은 너의 삶에 귀 기울이자는 의미로 교실에 붙여두고 온 존중의 약속이 잘 지켜지길 바랄 뿐이다.

/최영민 대전평화여성회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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