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르 뒤 몽블랑을 가다] 14-마르티니를 손에 넣는 자, 세계를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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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 뒤 몽블랑을 가다] 14-마르티니를 손에 넣는 자, 세계를 품는다

카이사르의 큰 그림, 마르티니 정복에서 출발
사통팔달 요충지에서 문화예술 중심지로
'왕 중의 왕' 기분으로 다시 프랑스를 향해

  • 승인 2023-12-12 09:03
  • 심효준 기자심효준 기자
마르티니 (1)
마르티니 시내 전경. 조형미가 돋보이는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눈길을 끈다.(사진=김형규 여행작가)
스위스 마르티니(Martigny)에 도착해 태국 음식점에서 저녁을 먹고 시내 도보 투어에 나섰다. 역사문화예술 도시 마르티니는 전날 추위에 고생했던 샹페에 비해 확실히 따뜻했다. 고도가 471m로 TMB에서 가장 저지대일 것이다. 이 때문에 고대로부터 알프스산맥을 넘는 최적의 길목이자 베이스캠프 역할을 했다. 지금은 유럽에서 손꼽히는 문화예술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고리타분하게 보이는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이곳에선 도시미관과 어울리게 잘 가꿔져 있다.

아쉽게도 피에르 지아나다 재단의 미술관은 개장 시간을 넘겨 상설전시관에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야외조각공원에서 세계적인 작가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다. 귀에 익숙한 마크 샤갈, 오귀스트 로댕, 아르만 페르난데스, 윌렘 데 쿠닝 등 20세기를 대표하는 40여 작가 작품이 공원 곳곳에 설치돼 있다.

피에르 지아나다 재단은 피에르 지아나다라는 재력가가 1976년 사고로 사망하자 그의 동생 레오나르 지아나다가 형을 기리며 설립한 문화재단이다. 재단 건물에는 빈티지 자동차 전시장, 미술관, 고고학박물관이 있고 야외조각전시장이 재단건물을 둘러싸고 있다. 예산은 2%만 정부의 지원을 받고 나머지는 후원금(25%)과 자체 출연금으로 충당한다. 연간 3차례 여는 전시회 미술품은 대중에 쉽게 공개되지 않은 작품 가운데 엄선한다. 유명 솔리스트들의 연주회도 매년 10여 차례 기획하고 있다. 재단을 지금껏 키워온 창립자 레오나르 지아나다는 지난 3일 88세를 일기로 사망해 재단 홈페이지에서 그의 일대기가 재조명됐다.

자비에르
지오나다재단 조각공원에 설치된 프랑수와 자비에르 랄라느 작품 '양떼(Moutons)'.(사진=김형규 여행작가)
재단 바로 옆에는 로마시대 증기사우나(Tepidarium)가 유리에 덮여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마르티니에서 가장 유명한 로마 유적은 미니 콜로세움이라 할만한 원형극장이다. 로마제국이 가장 번성했던 2세기쯤 트라야누스 황제 통치기간에 건설된 것으로 추정된다. 1978년 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복원돼 소싸움, 야외영화관으로 활용된다고 한다.



원형극장 입구 공터에는 세 개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로마제국의 기틀을 다진 총독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BC100-BC44, 재임기간 BC49-BC44)와 카이사르의 양아들이자 로마제국의 초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스(BC63-AD14, 재위기간 BC27-AD14), 4대 황제인 클라우디우스(BC10-AD54, 재위기간 AD41-AD54)가 동상의 주인공이다. 실제 로마 유적지에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곳곳에 당시 흔적이 남아있다.

카이사르는 로마공화국의 총독으로 갈리아전쟁(BC58-BC51)에서 승리해 마르티니 일대를 장악했다. 카이사르는 마르티니가 로마공화국에서 로마제국으로 한 단계 도약시켜줄 보물덩어리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이탈리아의 맹주였던 로마는 북쪽으로 진출하기 위해 알프스산맥을 수시로 넘나들 수 있는 통로를 확보해야 했지만 워낙 험준한 빙벽이 많아 쉽지 않았다. 그나마 나은 길목이 이탈리아 북부 아오스타와 스위스 마르티니를 연결하는 그랑 생 베르나르 고개(Col du Grand St-Bernard)였다. 해발 2469m의 협곡이지만 알프스산맥 가운데 가장 낮은 고개로 한겨울 통행만 피하면 됐다. 1800년 나폴레옹도 이 고개를 넘어 이탈리아로 입성했는데 장면을 묘사한 유화가 유명하다. 이 고개는 청동기 시대부터 주요 통로로 활용된 흔적이 남아있다. 이 때문에 이 고개를 확보하기 위해 예전부터 켈트족을 비롯해 여러 갈리아 부족들이 암투를 벌였다. 비싼 통행세를 물어야 할 때도 있었다. 고개만 확보하면 마르티니라는 안락한 배후휴양지가 가까이 있으니 금상첨화였다. 산을 넘느라 체력을 탕진한 군사들은 아늑한 마르티니에서 쉬면서 재충전할 수 있었다. 기후가 좋아 포도 등 농작물도 풍부했다. 마르티니에 로마식 사우나와 원형극장 등 위락시설을 세운 이유를 알만했다. 일단 마르티니를 수중에 넣으면 동쪽으로 발칸반도, 북쪽으로 영국, 서쪽으로 프랑스와 스페인, 남쪽으로 북아프리카에 진출할 교두보를 확보한 셈이다. 실제로 카이사르는 영국의 남부 브리타니아까지 진출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라는 의지로 사생결단의 상징이 된 카이사르는 결국 "브루투스 너마저?"라는 마지막 말을 남긴 채 측근에 암살을 당했다.

카이사르
원형극장 앞에 세워진 로마제국 황제 동상. 가까운 곳부터 카이사르, 클라우디우스, 아우구스투스 황제상이다.(사진=김형규 여행작가)
카이사르의 유언에 따라 후계자가 된 아우구스투스는 여러 정적을 물리치고 자신의 입지를 다지면서 로마제국의 초대 황제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를 얻었다. 이 칭호에는 '카이사르 신의 아들이자 존엄한 아우구스투스 황제'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카이사르는 사후 원로원으로부터 신성화됐고 후세의 왕이 '카이사르'라는 명칭을 받으면 황제로서 정통성이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세계사적으로 '왕 중의 왕'이라는 '황제'의 시조는 중국의 진시황제와 로마제국에서 찾아볼 수 있다.

내일은 다시 프랑스로 넘어간다. TMB 순환 코스의 북쪽 고점인 포르클라즈 고개에서 서쪽 스위스의 마지막 마을 트리앙(Trient)을 지나 프랑스와의 국경인 발므 고개(Col de Balme)를 넘어간다./김형규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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