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르 뒤 몽블랑을 가다] 15-수목한계선에서 만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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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 뒤 몽블랑을 가다] 15-수목한계선에서 만난 사람들

TMB 절정 발므고개와 에귀뒤미디
목초지와 동백꽃, 한계선 초목의 차이
TMB, 목적 같지만 각자 방식으로 즐겨

  • 승인 2023-12-19 08:47
  • 심효준 기자심효준 기자
반려견
한 트레커가 함께 발므 고개 정상에 오른 반려견과 환희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들 바로 뒤에 보이는 산이 몽블랑, 바로 좌측 귀엽게 솟은 봉우리가 레드뤼(3754m), 왼쪽 가까이 보이는 산이 에귀베르트(4121m)다.(사진=김형규 여행작가)
어느덧 TMB 일정이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 일행 모두 일주일 연속 등산을 해보기는 처음이었을 것이다. 7일째가 되니 얼굴에 윤기와 핏기가 메말랐다. 눈과 볼이 퀭하고 허리마저 구부정해진 몰골이지만 눈빛만큼은 살아 움직였다. 초반 힘에 부쳤던 큰누님도 내일 샤모니몽블랑까지 입성하는데 자신감을 드러냈다. 체력은 바닥이지만 몸이 트레킹에 반응하게 된 것이다. 남은 거리가 하루 10㎞ 안팎인 점도 고무적이었다.

오늘 트레킹의 하이라이트는 발므고개(Col de Balme 2191m)와 에귀뒤미디(Aiguille du Midi 3842m) 전망대다. 일행은 마르티니에서 이웃 소도시인 트리앙(Trient) 남쪽 르푀티(Le Peuty)까지 차량으로 이동해 거기서 발므고개까지 5㎞를 기어오를 예정이다. 상승고도는 900m. 3시간쯤 걸리는 난코스지만 고생은 거기까지다. 이후 르투르(Le Tour)-몽트록(Montroc)까지 곤돌라와 도보로 내려간 다음 버스를 타고 샤모니몽블랑으로 이동해 에귀뒤미디 전망대에 오를 예정이다. 에귀뒤미디는 마지막 날 갈 예정이었지만 비 예보에 따라 하루 앞당겼다.



르푀티는 캠핑과 트레킹을 즐기는 젊은이들이 많이 모인다. 운동장 두세개 크기의 르푀티 야영장에는 이른 아침부터 캠퍼들이 텐트를 걷고 출발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SNS에선 르푀티 야영장 매점에 한국라면을 진열해 놓은 사진이 올라와 있다. 남쪽 등산로를 따라 내려가다가 낭느와르(Nant Noir) 하천을 따라 서진을 하면 본격적인 트레킹이 시작된다. 해발 1600-1700m대의 울창한 침엽수림대를 헤치고 올라가다보면 어느 순간 시야가 확 트이는 초원지대가 펼쳐진다. 해발 2000m에 근접했다는 신호다. 우측으로 깎아지른 듯한 황토색 봉우리 크르와드페르(Croix de Fer 2343m)와 라롤레트(L'Arolette 2330m)가 초록색 초원 위에서 환하게 빛났다. 여기부터 TMB는 색감에서 묘한 대비를 이룬다. TMB루트를 중심으로 왼쪽 몽블랑 산괴쪽은 하얀 설산과 빙하가, 맞은편은 밝은 황토색 산세가 이어진다.

3.5㎞ 지점을 지나는데 등산로 바로 옆에 구들장 모양의 돌로 겹겹이 쌓은 창고가 보였다. 얼핏 보면 군사용 벙커다. 언덕 연장선상에 석축을 쌓아 석굴 모양을 한 모습인데 축사 겸 농막이다. 돌로 담을 쌓은 이유는 눈사태에도 끄떡없기 때문이다. 근처에 이곳이 '레제르바제르'(2036m)이고 30분만 더 가면 발므고개라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레제르바제르는 목초지, '레제르바제'(les herbagers)는 목동들이라는 의미이므로 이곳이 방목장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몽블랑 둘레길은 대체로 해발 2000m에 다다르면 수목이 사라지고 초원지대가 펼쳐졌다. 흔히 말하는 수목한계선이 1900∼2000m 높이인 모양이다. 우리나라는 TMB와 같은 수목한계선이 거의 없는 듯한데 문득 동백나무가 떠올랐다.

투르빙하
프랑스 르투르(Le Tour)마을 뒤쪽으로 커대한 투르 빙하가 금방이라도 마을을 덮칠 듯하다.(사진=김형규 여행작가)
동아시아 아열대에서 자생하는 동백나무는 우리나라가 해발이 아닌, 위도에 따른 최북단 한계선이다. 서천 마량리 동백정의 경우 북위 36도인데 여기보다 북쪽 지방에서는 동백나무가 자라기 힘들다. 이 때문에 한국 토종 동백나무를 연구해 추운 지방에서도 동백꽃을 얻을 수 있는 종자를 얻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위 45∼46도에 걸쳐 있는 TMB를 다니는 동안 분홍바늘꽃, 데이지, 엉겅퀴, 산마늘, 아르니카 몬타나, 투구꽃 등의 야생화는 목격했지만 동백꽃은 보지 못했다. 500m 전방에 빨간색 창문틀 벽돌집이 보였다. 발므산장이다. 다 왔구나 하고 숨을 들이쉬는데 뒤에서 "아 유 코리안?"이라는 어설픈 영어가 들렸다.

올해 72세 된 동갑내기 일본인 부부였다. 그들은 5월부터 유럽 여행을 시작해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 이어 TMB에 오게 됐다고 소개했다. 그들을 만난 날이 7월 27일이므로 그때부터 70∼80일 전부터 여행을 시작한 것이다. 일정상 산티아고 순례길은 절반 정도(풀코스는 도보로 3개월 정도 걸림), TMB도 필수 코스만 다니는 것으로 보였다. 70세를 넘기고도 부부가 함께 장기간 자유여행을 떠나는 건강과 사고의 유연성이 남달라 보였다.

에귀루즈
설산이 많은 몽블랑 산괴와 달리 에귀루즈 산군은 철을 함유한 편마암이 많아 붉은색을 띤다.(사진=김형규 여행작가)
TMB에선 목적은 같지만, 각각의 방식으로 산행을 즐긴다. 제약이 따르긴 하지만 반려견, 자전거와 함께 당일치기로 산을 오르는 사람, 울트라마라톤, 백패킹, 노새 트레킹을 하거나 어린 자녀와 함께 산을 오르는 가족들도 만난다. 동양인들은 주로 팀을 꾸린다. 일본인들은 연령대가 비슷한 것으로 보아 지역 커뮤니티나 계모임 정도에서 온 듯하다. TMB에 관한 각종 예약 정보가 우리에게 좀 더 친절하게 제공된다면 조만간 우리나라도 가족· 친구 단위로 트레킹이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발므고개에 다가가자 지평선이 서서히 내려가면서 전방의 햇살이 눈에 가득 들어왔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쏟아졌다. 바로 눈앞에 몽블랑 산군이 햇살 아래 하얗게 빛을 뿜었다. 가까이 에귀베르트(Aiguille Verte 4121m)와 우측으로 귀엽게 솟은 레드뤼(Les Drus 3754m). 그 옆 봉우리를 살짝 구름에 숨긴 몽블랑(4808m)이 한눈에 들어왔다. 지상에서 보는 몽블랑 산괴의 파노라마였다.

/김형규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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