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광장] 소크라테스가 경찰서에 간 까닭은?

  • 오피니언
  • 목요광장

[목요광장] 소크라테스가 경찰서에 간 까닭은?

충남경찰청 안보수사과장 유동하

  • 승인 2024-01-17 16:52
  • 신문게재 2024-01-18 18면
  • 심효준 기자심효준 기자
유동하 충남경찰청 안보수사과장
충남경찰청 안보수사과장 유동하
"아니! 자네 여기에는 어쩐 일인가?" 소크라테스는 '불경죄'로 고발을 당해 조사받으러 경찰서에 갔는데, 우연히 복도에서 에우티프론이라는 한 청년을 만났다. 그 청년은 '경건함'에 대해 세상에서 가장 잘 안다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을 만났으니 심장이 뛸 만큼 기뻤다.

"예, 저는 아버지를 살인죄로 고발하기 위해 왔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농장을 운영했다. 한 품삯꾼이 농장의 노예를 죽였고, 그 품삯꾼을 어찌 처리할지 사정 당국에 물어보기 위해 며칠 가두어 두었는데, 그만 추위와 배고픔으로 죽어버린 것이었다.



여기서부터 칠순의 테스옹(翁)과 청년 티프론은 '경건과 불경'에 대해 묻고 답한다. 인생을 건 토론이었다. 한쪽은 목숨을, 한쪽은 명예를 건 전쟁이었다. 테스옹은 자기 아버지를 고발하는 것이 불경한 짓이 아닌지, 두렵지 않냐고 묻기도 했다.

대화가 진행될수록 청년의 경건함에 대한 정의는 달라져 갔다. 처음에는 ①살인을 하면 그가 누구건 간에 고발하는 것이 경건이다. ②신들에게 사랑받는 것은 경건이다. ③경건이란 신들과 인간 일종의 거래기술이다. ④신들에게 감사하는 것이고 신들에게 유익하거나 사랑받는 것이다. 그렇게 한 시간 동안 되었던 논의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여기서 그 유명한 질문이 등장한다. "경건한 것은 경건하기 때문에 신들에게 사랑받는 것인가, 아니면 신들에게 사랑받기 때문에 경건한 것인가?"



테스옹은 다시 한번 경건함의 본질(ousia)에 대해 말해달라고 하자, 그 청년은 다른 곳에 급한 볼일이 있다며 자리를 황급히 떠나버렸다. 청년이 도주한 것이다. 대화는 그렇게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이상이 플라톤의 '에우티프론'의 내용이다. 허무하게 답을 주지 않고 끝내버리는 것을 '아포리아'라고 하는데 플라톤 초기작품의 특성이라고 한다.

우리 경찰은 지난해 11월부터 고소·고발 전건접수제를 시행하고 있다. 과거 경찰은 '고소·고발 반려제도'를 도입했었다. 그런데 경찰이 사건접수를 잘 해주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가 됐다. 경찰청이 2022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는, 72.4%가 "형사사건이 되지 않는 고소·고발이더라도 우선 접수한 뒤 종결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늦게나마 국민의 뜻에 따라 규정을 개정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생각해 볼 것이 있다. 한번은 지역의 변호사에게 고소 사건을 줄일 방안이 없느냐 물어봤는데 결이 다른 답변이 왔다. 우선 의뢰인이 금전을 받지 못했다고 상담해오면 사기로 고소하라고 요구한다는 것이었다. 이유는 고소하면 사건의 큰 맥락이 잡히고 민사소송을 진행하기도 수월해진다는 설명이었다. 즉 민사로 가기 전에 형사를 이용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우리나라의 고소사건은 인구대비 세계에서도 많은 분포를 차지한다. 실제 2020년 전체 158만 7000건의 형사사건 중 고소 26만 7000건(16.8%), 고발 4만 6000건(2.9%)을 차지했다. 반면 일본은 오래전 통계이긴 하지만 전체 사건의 1%도 채 되지 않았다. 그 이유가 경악할만한데 일본 경찰이 고소고발사건을 잘 접수해 주지 않고, 민사적으로 해결을 하거나 합의를 종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고소·고발이 많은 우리나라와 그렇지 않은 일본이 정상적인 상황이라고는 사료되지 않는다. 고소 사건을 거의 받아주지 않는 일본도 문제지만 민사소송 전 단계로 고소를 이용하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해서는 고소 사건을 감축할 길이 요원하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2400년 전 그리스에서는 고소·고발 제도가 있었다는 것, 그리고 자기의 친족을 고소·고발할 수 있는지 생각할 거리를 주는 것은 참 재미있지 아니한가?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에 의하면, 그 무렵 한반도에서는 일본 남서부로 이주해 세력을 형성했다고 한다. 더 많은 역사가 발굴되기를 희망한다.

필자의 조사경력은 3년밖에 되지 않지만, 최고의 친절은 신속성·정확성이라 생각한다. 그중 하나를 선택하자면 '신속성'이 아닐까?

/충남경찰청 안보수사과장 유동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인천 남동구 장승백이 전통시장 새단장 본격화
  2. 베일 벗은 대전역세권 개발계획…내년 2월 첫삽 확정
  3. 대전 횡단보도 건너던 50대 승합차 치여 숨져
  4. 대학 경쟁시킨 뒤 차등 지원?… 서울대 10개 만들기 사업 놓고 '설왕설래'
  5. 고등학생 70% "고교학점제 선택에 학원·컨설팅 필요"… 미이수학생 낙인 인식도
  1. 전국 학교 릴레이 파업… 20일 세종·충북, 12월 4일 대전·충남
  2. 대전·충남 우수 법관 13명 공통점은? '경청·존중·공정' 키워드 3개
  3. [홍석환의 3분 경영] 가을 비
  4. 충남도의회, 인재개발원·충남도립대 행정사무감사 "시대 변화 따른 공무원 교육·대학 운영 정상화" 촉구
  5. [기고] 디지털포용법과 사회통합

헤드라인 뉴스


대학 경쟁시킨 뒤 차등지원?… ‘서울대 10개 만들기’ 논란

대학 경쟁시킨 뒤 차등지원?… ‘서울대 10개 만들기’ 논란

새 정부의 국정과제인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둘러싼 잡음이 끊이질 않고 있다. 전국 거점국립대 9곳 모두 서울대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재정을 집중 지원한다는 방침이지만, 예상과 달리 평가에 따라 일부 대학에 예산을 몰아주거나 차등 지원한다는 얘기가 나오면서다. 여기에 일반 국립대와 사립대까지 지원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는 건의까지 속출하면서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19일 중도일보 취재 결과, 전날인 18일 내년도 예산안을 심의한 국회 예결위 예산소위는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위한 '국립대학 육성' 사업비 심사를 보류한 것으로..

섬비엔날레 조직위, 기본계획 마련… 성공 개최 시동
섬비엔날레 조직위, 기본계획 마련… 성공 개최 시동

'섬비엔날레' 개막이 500일 앞으로 다가왔다. 섬비엔날레 조직위원회(이하 조직위)는 예술감독과 사무총장, 민간조직위원장 등을 잇따라 선임하며 추진 체계를 재정비하고, 전시 기본계획을 마련하며 성공 개최를 위한 시동을 켰다. 19일 조직위에 따르면, 도와 보령시가 주최하는 제1회 섬비엔날레가 2027년 4월 3일부터 5월 30일까지 2개월 간 열린다. '움직이는 섬 : 사건의 수평선을 넘어'를 주제로 한 이번 비엔날레는 원산도와 고대도 일원에서 펼쳐진다. 2027년 두 개 섬에서의 행사 이후에는 2029년 3개 섬에서, 2031년에..

정부, 공공기관 지자체 발주 공사 지역제한경쟁입찰 대상 확대
정부, 공공기관 지자체 발주 공사 지역제한경쟁입찰 대상 확대

정부가 공공기관과 지자체가 발주하는 공사 '지역제한경쟁입찰' 대상을 확대하는 등 지역 건설업체 살리기에 나선다. 정부는 1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이러한 내용이 담긴 '지방공사 지역 업체 참여 확대방안'을 발표했다. 최근 지역 건설사의 경영난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지방공사는 지역 업체가 최대한 수주할 수 있도록 개선 방안을 마련한 것이다. 우선 정부는 공공기관(88억 원 미만)과 지자체(100억 원 미만)의 지역제한경쟁입찰 기준을 150억 원 미만까지 확..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은빛 물결 억새의 향연 은빛 물결 억새의 향연

  • 구직자로 북적이는 KB굿잡 대전 일자리페스티벌 구직자로 북적이는 KB굿잡 대전 일자리페스티벌

  •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서 ‘찰칵’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서 ‘찰칵’

  • 추위와 독감 환자 급증에 다시 등장한 마스크 추위와 독감 환자 급증에 다시 등장한 마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