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홍철 칼럼] 57. 역사를 보는 두 시각

  • 오피니언
  • 사외칼럼

[염홍철 칼럼] 57. 역사를 보는 두 시각

염홍철 국립한밭대 명예총장

  • 승인 2024-02-22 12:00
  • 현옥란 기자현옥란 기자
염홍철칼럼
염홍철 국립한밭대 명예총장
역사 발전을 보는 기존의 인식은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가 주류 이론으로 정착하다시피 했습니다. 그는 "역사는 많은 사람들에 의해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비전을 갖고 미래를 향해 직면한 시련을 이겨나가는 창조적 소수에 의해 새롭게 창조되어 간다"고 했습니다. 여기에 영국의 역사학자 토머스 칼라일도 "세계의 역사는 위대한 인물의 전기"라고 동조했지요.

그러나 이러한 주류 이론에 반해 톨스토이는 그의 작품 '전쟁과 평화'에서 이른바 '창조적 소수'나 '위대한 인물론'을 부정하였습니다. 위대한 인물들은 시대 흐름을 이용할 뿐이지 그 흐름을 만들지는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독일의 비스마르크도 톨스토이와 같은 역사관을 가져 "정치인은 대세를 만들지 못한다. 만들어진 대세를 이용할 뿐이다"고 말했으며, 로버트 캐네디도 "역사의 흐름을 바꿀 만한 위대한 사람은 거의 없다. 그렇지만 누구나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일들을 바꿀 수는 있다. 인간의 역사는 사소한 일들을 바꾸는 수없이 많은 용기와 믿음에 의해 이루어져 간다"고 했습니다. (염홍철, '천천히, 천천히 걷는다' 40쪽 참조)

이렇게 각기 다른 역사관은 서로 보완적일 수도 있겠으나 현대 사회의 다양성과 정보화의 진전으로 위대한 인물 주도의 역사관은 더욱 퇴색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역사는 일상 속의 작고 단순한 변화들이 모여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대표적인 사례가 베를린 장벽의 붕괴입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6개월 전에 동방정책을 통해 독일 통일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알려진 빌리 브란트 전 독일 수상이 서울을 방문했습니다. 저도 당시 그 자리에 있었지만, 빌리 브란트는 초청 강연에서 독일 통일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독일 통일은 앞으로 5년 또는 10년이 걸릴지도 모르고, 아니면 영원히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고 얘기했습니다.



당시 증언들을 종합하면 초소 경비원들이 시민들의 자유로운 통행을 도왔고 수많은 시민들이 실천한 아주 작은 행동이 여기저기서 수시로 모이고 모여 정치인들로 하여금 베를린 장벽을 붕괴시키는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정치 협상의 결과가 아니라 주민들이 무너뜨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작고 아주 사소한 사건 중 하나가 나중에는 커다란 결과를 가져온다는 카오스 이론이나 나비 한 마리가 멀리 어느 나라에서 파닥거린 날갯짓이 다른 나라에 폭풍우를 몰고 올 수 있다는 나비 효과도 같은 맥락일 것입니다. (염홍철, '천천히, 천천히 걷는다' 41쪽 참조)

많은 사람들은 사회 곳곳에서 불합리한 점을 발견하면 먼저 정부 또는 국회가 정책화를 통해 시정하기를 희망합니다. 물론 당연한 절차지요. 그러나 이러한 희망 이전에 일단 자신이 담당할 수 있는 일을 실천하는 것이 더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잘못된 것을 규제하고 처벌하거나 시정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악덕 기업의 부당 행위를 발견했을 때 그것을 인지한 개개인이 '불매운동' 등 더 빨리 변화를 유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정부는 뒤늦게라도 그런 제도를 만들 것입니다. 저도 공직을 수행하면서 세상의 의미 있는 변화는 항상 일반 대중에게서 시작되고, 그것이 혁신의 원천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느 환경 운동가가 얘기했듯이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든다는 희망은 소파에 앉아서 당첨되기만을 꿈꾸며 손에 꽉 쥐고 있는 복권이 아닙니다. 희망은 문을 깨부수는 도끼입니다. 따라서 희망은 행동을 필요로 합니다.

염홍철 국립한밭대 명예총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중앙로지하상가 비대위, 대전시에 공청회 요구... 경쟁 입찰 조회수 부풀리기 의혹 제기도
  2. [대전다문화] 열대과일의 나라 태국에서 보내는 여름휴가 ? 두리안을 즐기기 전 알아야 할 주의사항
  3. 약국 찾아가 고성과 욕설 난동 '여전'…"가중처벌 약사폭력방지법 시행 덜 알려져"
  4. 중앙로지하상가 비대위, 대전시에 공청회 요구
  5. [인터뷰] 송호석 금강환경청장 "대청호 지속가능 관리방안 찾고, 지역협력으로 수해 예방"
  1. [대전다문화] 7월 17일 '제헌절', 대한민국 헌법이 태어난 날입니다
  2. [대전다문화] 세계 일회용 비닐봉투 없는 날
  3. 설동호 대전교육감 새 특수학교 신설 추진할까 "적극 검토"
  4. 충남대 동문 교수들 "이진숙 실천형 리더십… 교육개혁 적임자"
  5. 제6회 인천국제해양포럼, 7월 3일 송도서 개막

헤드라인 뉴스


이재명 대통령, 4일 취임 후 첫 대전 방문 ‘타운홀미팅’

이재명 대통령, 4일 취임 후 첫 대전 방문 ‘타운홀미팅’

이재명 대통령이 4일 취임 후 처음으로 대전을 방문한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후 대전 유성구 도룡동 대전컨벤션센터에서 ‘국민소통 행보 2탄, 충청의 마음을 듣다’를 주제로 타운홀 미팅 시간을 갖는다. 국민의 현장 목소리를 듣고 자유롭게 토론과 질문을 하는 자리로, 불황으로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비롯해 과학기술인 등 30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이번 미팅은 사전에 참석자를 선정하는 관행에서 벗어나 전날인 3일 오후 2시 대통령실 홈페이지를 통해 행사 일정을 공개하고 행사 당일 현장에서 선착순으로 300여 명을 참석시킨..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41. 대전 서구 가장동 돼지고기 구이·찜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41. 대전 서구 가장동 돼지고기 구이·찜

자영업으로 제2의 인생에 도전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정년퇴직을 앞두거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만의 가게를 차리는 소상공인의 길로 접어들기도 한다. 자영업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나 메뉴 등을 주제로 해야 성공한다는 법칙이 있다. 무엇이든 한 가지에 몰두해 질리도록 파악하고 있어야 소비자에게 선택받기 때문이다. 자영업은 포화상태인 레드오션으로 불린다. 그러나 위치와 입지 등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아이템을 선정하면 성공의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에 중도일보는 자영업 시작의 첫 단추를 올바르게 끼울 수 있도록 대전의 주요 상권..

트로트 신동 김태웅, 대전의 자랑으로 떠오르다
트로트 신동 김태웅, 대전의 자랑으로 떠오르다

요즘 대전에서, 아니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초등생이 있다. 청아하고 구성진 트로트 메들리로 대중의 귀를 사로잡고 있는 대전의 트로트 신동 김태웅(10·대전 석교초 4) 군이다. 김 군이 대중에게 얼굴을 알린 건 2년 전 'KBS 전국노래자랑 대전 동구 편'에 출연하면서부터다. 당시 김 군은 '님이어'라는 노래로 인기상을 받으며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공중파 TV를 통해 강렬한 인상을 남긴 김 군은 이후 케이블 예능 프로 '신동 가요제'에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김 군은 이 무대에서 '엄마꽃'이라는 노래를 애절하게 불러 패..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취약계층을 위한 정성 가득 삼계탕 취약계층을 위한 정성 가득 삼계탕

  • 대통령 기자회견 시청하는 상인들 대통령 기자회견 시청하는 상인들

  • 의정활동 체험 ‘재미있어요’ 의정활동 체험 ‘재미있어요’

  • 도심 열기 식히는 살수차 도심 열기 식히는 살수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