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하추동]진료실을 넘어 골목길로

  • 오피니언
  • 춘하추동

[춘하추동]진료실을 넘어 골목길로

김화준 원장·민들레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 승인 2024-03-19 17:18
  • 신문게재 2024-03-20 18면
  • 임병안 기자임병안 기자
김화준 원장
김화준 원장(민들레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우리나라 정반대에 위치한 남미 파라과이에서 한국 정부 현지 기관에 파견되어 일한 적이 있다. 주요 업무는 파라과이 수도 인근 도시에서 지역보건사업을 기획하는 일이었다. 보건소 환경 개선도 주요 사업 중의 하나라 해당 지역의 보건소들을 자주 방문했었다.

예상하다시피 저개발국가의 공공보건의료 시설들은 대부분 낙후한 상태였고, 때로는 제대로 기능을 할까 의문을 가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배울 것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파라과이 보건소에 가면 늘 벽에 붙어 있는 인상적인 그림이 있다. 보건소의 사정에 따라 칠판에 그려진 경우도 있고, 하얀 백지 위에 그려진 경우도 있었다. 도구나 매체는 달라도 내용은 동일하다. 보건소 관할구역의 지도이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깔끔하게 출력된 것도 아니고 손수 손으로 직접 그린 지도로, 해당 동네의 가구들과 거리가 개략적으로 그려져 있다. 그리고 특정 가구에는 체크 표시가 되어 있는데 다름이 아니라 고혈압, 당뇨, 장애, 임산부 등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한마디로 동네에서 그들이 돌봐야 할 대상자들을 나름이 방식으로 시각화 한 것이다. 솔직히 신선하고 인상적이었다.

이제 시공을 초월하여 우리나라로 돌아와 보자. 필자가 일하는 의원의 경우에는 지역의 노인과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방문진료를 실시하고 있다. 굳이 이런 말을 꺼내는 이유는 그나마 지역에 대해서 다른 일반적인 1차 의료기관(동네의원)보다는 지역을 좀 더 파악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지만 대상자가 아닌 가구에 대한 정보는 없다.



의원이 위치하고 있는 동네의 주민과 환자들이 어디에서, 어떤 환경으로 살아가는지, 그들이 어떤 신체적 고통이 있는지, 어떤 질환을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 비단 이것은 필자가 일하고 있는 의원만의 문제는 아니다. 방문진료를 하지 않는 대부분의 동네 의원은 그 지역에서 10년을, 20년을 자리를 지켰더라도, 대략의 경험과 감으로는 추측할 수는 있어도, 환자들이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오지 않는 이상 알 방법이 없다. 결국 환자들이 불편함을 가지고 스스로 찾아와야 원인을 파악하고 치료를 시작한다. 즉, 그 지역에 자리잡고 있지만 그 동네를 잘 모른다는 것이다.

질병의 양상이 많이 바뀌었다. 이전에는 급성기 질환이 중심이었다. 질병이 생기면 그것을 치료하거나 관리하는 것이 의료의 주요한 역할이었다. 하지만 인구구조가 바뀌면서 변하기 시작했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2023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2023년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전체 인구의 18.4%에 해당하고, 2025년이면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전망이라고 한다. 즉, 이제는 의료라는 것이 단순히 치료나 관리 단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노년 계층이 건강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치료 뿐만 아니라 밀착하여 개입하고, 돌보는 것이 의료의 주요한 목적이 되었다. 노화 과정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필요하고, 질병의 개수를 줄여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중요한 일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전처럼 진료실에서 환자를 기다리는 의료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진료실을 벗어나 해당 지역 골목으로 들어가 누가 어떻게 사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질문을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누가 아픈지, 무엇이 불편한지, 어떤 것을 필요로 하는지 파악하고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병원 진료실이 아니라 지역사회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의료공간이 되었다.

보건의료 종사자들이 과감하게 진료실 문을 벗어나 동네의 골목으로 갈 필요가 있다. 그리고 우리도 파라과이 보건소처럼 지도를 그려야 할 것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부산 광안리 드론쇼, 우천으로 21일 변경… 불꽃드론 예고
  2. 세종청년센터, 2025 청년 도전과 성장의 무대 재확인
  3. "마을 앞에 고압 송전탑 있는데 345㎸ 추가? 안 됩니다" 주민들 반발
  4. 한국산업은행 세종지점, 어진동 단국세종빌딩에 둥지
  5. 세종충남대병원, 지역 보건의료 개선 선도
  1. [현장취재]신임 윤성원 제38대 한남대 총동문회장 취임
  2. 한수정, '야생동물' 보호·공존 강화한다
  3. 대전CBS 신임 대표에 신태호 마케팅사업본부장
  4. [세상읽기]샤프의 눈물
  5. 이장우 대전시장 "김태흠 지사와 충청 미래를 위해 역할 분담할 것"

헤드라인 뉴스


이장우 "김태흠 지사와 충청 미래를 위해 역할 분담할 것"

이장우 "김태흠 지사와 충청 미래를 위해 역할 분담할 것"

이장우 대전시장이 이재명 대통령의 적극 추진으로 급물살을 탄 대전·충남 행정통합의 단체장 출마에 대해 "김태흠 충남지사와 함께 충청의 미래를 위해 역할분담을 나눌 것"이라고 밝혔다. 이 시장은 19일 대전시청 기자실에서 가진 오정 국가시범지구(도시재생 혁신지구) 선정 관련 브리핑에서 대전충남행정통합시장 출마 여부에 대한 질문에 "통합시장을 누가 하고 안 하고는 작은 문제이고, 통합은 유불리를 떠나 충청 미래를 위해 해야 하는 일"이라면서 "(출마는) 누가 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당과도 상의할 일이다. 김태흠 충남지사와는 (이..

`2025 도전! 충청남도 재난 안전 골든벨` 성료… 퀴즈왕 주인공은?
'2025 도전! 충청남도 재난 안전 골든벨' 성료… 퀴즈왕 주인공은?

청양 목면초등학교 4학년 김가율 학생이 2025 충남 재난 안전 퀴즈왕에 등극했다. 충청남도, 중도일보가 주최하고, 충남교육청, 충남경찰청이 후원한 '2025 도전! 충청남도 재난 안전 골든벨'이 18일 예산 윤봉길체육관에서 열렸다. 이번 골든벨은 충남 15개 시군 퀴즈왕에 등극한 학생 및 우수한 성적을 거둔 학생들이 모여 충남 퀴즈왕에 도전하는 자리로, 272명의 학생이 참여했다. 행사엔 전형식 충남도 정무부지사, 남도현 충남교육청 기획국장, 김택중 예산부군수, 유영돈 중도일보 사장, 최재헌 중도일보 내포본부장 등이 참석해 퀴즈왕..

충남 천안·보령 산란계 농장서 고병원성 AI 의사환축 잇따라 발생
충남 천안·보령 산란계 농장서 고병원성 AI 의사환축 잇따라 발생

충남 천안과 보령 소재 산란계 농장에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H5형)가 잇따라 발생했다. 충남도에 따르면 17일 충남 보령시 청소면, 천안시 성환읍 소재 농장에서 폐사가 증가한다는 신고가 접수돼 동물위생시험소가 확인에 나섰다. 충남 동물위생시험소가 18일 확인한 결과, H5형이 검출돼 농림축산검역본부에 고병원성 여부 검사를 의뢰했다. 검사결과는 1~3일가량 소요될 예정이다. 성환읍 소재 농장은 과거 4차례 발생한 사례가 있고, 청소면 농장은 2022년 1차례 발생한 바 있다. 현재 성환읍 소재 농장에서 사육 중인 가금류 22..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성금으로 잇는 희망…유성구 주민들 ‘순회모금’ 동참 성금으로 잇는 희망…유성구 주민들 ‘순회모금’ 동참

  • 시니어 모델들의 우아한 워킹 시니어 모델들의 우아한 워킹

  • 딸기의 계절 딸기의 계절

  • 보관시한 끝난 문서 파쇄 보관시한 끝난 문서 파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