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하추동]내 친구, 프라밧을 기억하며

  • 오피니언
  • 춘하추동

[춘하추동]내 친구, 프라밧을 기억하며

김화준 원장(민들레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 승인 2024-05-21 17:36
  • 신문게재 2024-05-22 18면
  • 임병안 기자임병안 기자
김화준 원장
김화준 원장
2020년 11월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일하고 있을 때다. 거의 사용하지 않던 페이스북 메신저로 알림이 왔다. 스팸이나 광고겠지 하면서 클릭했는데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나의 동료이자, 친구인 프라밧이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잠시 멍했고, 5분간 모니터를 쳐다보다 밖으로 나와 푸르디푸른 하늘을 한없이 쳐다봤다.

2010년 겨울부터 2012년 겨울까지, 만 2년 동안, 네팔에서 해당국 정부와 함께 5개 지역 공공의료보험 시범사업을 수행했었다. 필자의 역할은 현지사무소 총괄매니저였고, 현지 직원 중 한 명이 프라밧이었다. 국내 NGO 네팔 사무소에서 일하던 친구였는데 단체의 사정으로 퇴사했고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채용했다. 그만큼 똑똑하고 성실한 친구였으며, 네팔 명문 카트만두 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던 재원이었다. 항상 커리어를 쌓아 네팔 정부에서 일하고 싶다고 말했던 기억도 있다. 되돌이켜 보면 그는 현지 사무소에서 핵심적인 인력이었다. 물론 사무실에 있었던 한국인 및 현지 직원들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그의 기여는 비교 불가였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그가 없었다면 수많은 과제와 난관을 쉽게 헤쳐 나가지 못했을 것이다.

네팔 현지에 있는 지인을 통해 들은 소식에 따르면 그의 죽음은 너무나 허망하고 안타까웠다. 30대 초반인 그가 중한 질병이 있을 리 만무하고, 술, 담배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만성질환도 없었다. 또한 체력도 좋아서 네팔 산악지역에서 누구보다 월등한 주행 능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런 그의 사인은 산책 도중 낙상으로 인한 사고사였다. 새벽에 일어나서 반려견을 데리고 산책하러 나갔다가 동네 주변 정돈되지 않는 길에서 헛디뎌 2~3미터 되는 길옆으로 미끄러졌고, 그는 한참의 시간 동안 사투를 벌이다 사망했다고 한다.

수소문을 통해서 미망인에게 조의금을 전달하고, 일주일 정도 지나서 그가 나에게 보냈던 옛날 메일을 보다가 다시 한번 그의 죽음을 상기했다. 만약 네팔이 아시아 최빈국이 아니었다면, 동네 주위의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있었다면, 낙상당한 이후에 적절한 대처를 받을 수 있는 응급의료 시스템이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참고로 네팔은 한국의 119와 같은 체계적인 응급의료 시스템이 미비하다.)

동시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가 만약 네팔인이 아니라 한국인이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장담은 못하지만 아마도 생존했을 확률은 상대적으로 높았을 것이다. 태어난 국가를 선택할 수 없으니 더욱 안타까웠다. 그럼, 국가 간에만 이런 것이 존재하는가?

치료가능사망률이라는 보건학 용어가 있다. 이는 인구 10만 명당 의료적 지식과 기술을 토대로 치료가 효과적으로 이뤄졌다면 발생하지 않을 수 있었던 조기 사망자의 수를 뜻한다. 2023년 보건복지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인천은 51.49명으로 가장 높았고, 서울이 38.56으로 가장 낮았다. 전국 평균은 43.7명이다.

즉, 국내에서도 어디에 사느냐에 따라서 사망률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결국 저개발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내에도 지역간에 존재하는 문제이다. 어디에서 태어나느냐, 어디에서 거주하느냐에 따라서 사고나 중한 질병 발생 시 생존할 확률이 달라지는 것이다.

얼마 전 22대 총선이 끝났다. 의사파업이라는 의료대란이 있었음에도 이번 선거에서 보건의료문제는 중요한 쟁점이 되지 못했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보면 22대 국회에서도 비슷할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또 한 번 기대를 걸어본다. 국민이 어느 지역에 사느냐에 따라서 생존확률이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

마지막으로 사랑스러운 부인과 아들을 두고 하늘로 간 나의 친구이자, 동료인 프라밧을 기억하며, 지구상에 이런 격차와 차별이 최소한으로 줄어들기를 동시에 기원해 본다. 안녕! 나의 친구, 프라밧, 매우 고마웠고, 영원히 기억하마.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의료원 ‘어떻게 지을까’… 시공사 공고 앞두고 주민·의료계 의견 듣는다
  2. 대전 여야, 2차 중앙행정기관 세종 이전 놓고 '공방전'
  3. 대전교도소·대전의사회 협력, 수용자 대면진료 ‘메디컬센터’ 전국 첫 개설
  4. 32사단, 대둔산에서 6·25 전사자 유해발굴 착수
  5. 90년 역사 품은 테미오래, 시민과 함께하는 문화예술공간으로
  1. 대전 금연구역 5만여 곳에 지도원 35명… 단속 한계에 정책 실효성 의문
  2. '대학생이 제안한 위성을 우주로'…항우연 경연대회 7개 팀 선정
  3. 대전 서구 '구청장 직통문자' 100일…민원 999건 접수
  4. 탈석탄 충남, 신재생 전환 이익 절반은 역외로
  5. [사설] 허 시장 '상생 투어', 현안 해법 모색하길

헤드라인 뉴스


대전교도소 수용자 대면진료 ‘메디컬센터’ 전국 첫 개설

대전교도소 수용자 대면진료 ‘메디컬센터’ 전국 첫 개설

대전교도소가 전국 교정시설 중 처음으로 스마트 메디컬센터를 구축하고 대전시의사회와 협력해 수용자에게 가장 필요한 안과와 이비인후과 그리고 신경과에 대한 시설 내 전문진료를 시작한다. 2005년 교정시설의 원격진료가 허용된 이후 수용자 의료처우 개선을 위한 가장 혁신적인 도전으로 여겨져 주목받고 있다. 법무부는 22일 유성구에 위치한 대전교도소에서 스마트 메디컬센터 개소식을 갖고 새롭게 조성하고 확보한 시설과 장비를 소개했다. 이날 법무부 교정본부 권창모 의료과장과 이동철 의료 교정관이 참석하고, 김재술 대전교도소장 주관으로 임정혁..

세종 `장애인 학대사건` 무혐의 뒤집혀… 시설 직원 구속 송치
세종 '장애인 학대사건' 무혐의 뒤집혀… 시설 직원 구속 송치

세종시 장애인 거주시설 학대사건의 가해자로 지목된 시설 직원이 구속 송치됐다. 경찰이 초기 수사 과정의 미흡함을 인정하며 재수사 돌입한 지 5개월 만이다. 세종경찰청 강력마약범죄수사대는 시설 직원 A(30대) 씨를 장애인복지법 위반 혐의로 지난 13일 대전지방공소청에 구속 송치했다고 23일 밝혔다. 사건 발생 1년여 만인 지난 5월 재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시설 내 목격자 진술과 A 씨의 근무 시간 등을 토대로 혐의를 입증할 만한 정황을 확보하고 지난 7일 구속영장을 발부받았다. 앞서 경찰은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A 씨에게 무혐의 처분..

고교 이주배경학생 급증하는데…대전·세종 한국어학급 `0`
고교 이주배경학생 급증하는데…대전·세종 한국어학급 '0'

대전과 세종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이주배경학생이 797명에 달하지만, 이들을 위한 한국어학급은 한 곳도 운영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충남과 충북이 각각 한국어학급을 운영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대전·세종은 고교 단계의 한국어 교육 기반이 부족해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2일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한병도 의원이 교육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6년 기준 대전지역 고교 이주배경학생은 655명, 세종은 142명으로 집계됐다. 두 지역의 학생 수를 합하면 797명이지만, 고등학교 한국어학급은 모두 운영되..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수험생들의 꿈을 향한 섬세한 붓 터치 수험생들의 꿈을 향한 섬세한 붓 터치

  • 2026 대전 장애인 취·창업박람회 성료 2026 대전 장애인 취·창업박람회 성료

  • 대전 3대 하천 가을 꽃단지 ‘인기’ 대전 3대 하천 가을 꽃단지 ‘인기’

  • 대전경찰청, 제81주년 경찰의 날 기념식 개최 대전경찰청, 제81주년 경찰의 날 기념식 개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