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하추동]'뜨거운 얼음'을 품은 6월의 말

  • 오피니언
  • 춘하추동

[춘하추동]'뜨거운 얼음'을 품은 6월의 말

북-칼럼니스트 김충일

  • 승인 2024-06-04 17:37
  • 신문게재 2024-06-05 18면
  • 임병안 기자임병안 기자
김충일 북칼럼니스트
김충일 북-칼럼니스트
한해의 절반인 6월. 오늘도 '여린 손자의 탄생과 성장' '어느 청년의 아픈 시대적 사고' '일상 속에 녹아든 중년의 고된 노동' '주름 겹쳐지는 엄니들의 세상 살아냄' '정신 줄 놓은 집 나간 노인의 죽음'은 일어난다. 사람이 사는 것 다 그렇지만 저마다로 다르다는 점만큼은 똑 같은 우리네 삶, 특히 이런 세상사 속에서 '감사와 위로' 그리고 '분노와 혐오'의 말잔치가 다층적인 빛깔과 냄새를 풍기며 일어난다.

봄의 선물인 꽃들의 잔치마당, 오월은 '유난스럽게 많은 감사와 위로'의 무대 위에 배우로, 무대를 꾸미는 디자이너로, 관객으로 참여할 기회가 많았다. 무대의 소품으로는 꽃다발, 케이크, 현찰, 밝은 웃음 속의 악수 등 여러 갈래의 사물과 몸짓들이 활용되었다. 그래도 이 달의 무대를 살린 촌철활인(寸鐵活人)의 소품은 무심코 쓰던 '고마워, 고맙소, 고맙다'란 '말품'이었을 게다.



어버이 날 즈음에 고운 색 종이에 "할아버지 사랑해요! 고맙습니다"라고 쓴 작은 선물과 손 편지에 감동한 춘추자(春秋者)는 손자를 시내 향토서점에 데리고 나갔다. 진열대 위에서 그림책 위인전을 고른 손자를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공간에 앉혀두고, 인문학 섹션을 찾아가 '말에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집어 들었다.

그 책 속엔 "많은 사람이 말을 포기하고 말을 계속 경시하면 세상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분명 의미라고는 없는 일만 일어날 것이다. 다음 세대에게 이런 세상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나를 도와주었던 말들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에 가장 가까운 일은 무엇일까? 아라이 유키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무차별적으로 살포되고 있는 파괴된 언어 속에서 사례를 찾아 말의 힘을 찾아내고 있었다.



말은 개인과 사회에 축척되어 가치관을 형성한다. 사회 유지의 책임은 말의 존엄성을 지키는데 있다. 존엄성을 잃어버린 말들이 사회 구성원간의 관계를 분리시켰다면 다시 회귀하는 통합의 과정은 말 찾기의 긴 여정에서 말의 힘을 키우는 일이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도 격려의 말은 있으며 타인을 위로하는 마음은 어떤 환경에서도 '말을 믿는 말'을 찾아내기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짙은 녹색의 잎으로 세상을 채색한 이번 달은 특히 '분노와 혐오의 쉬운 듯 우아한 말잔치'가 풍성한 호국 보훈의 달이다. 신체·사회적 통증을 겪어내며 삶을 흔들어 버린 이들의 아픈 기억을 무엇으로 어떻게 위로하겠는가? 그래도 최선·최상의 방책은 "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는 진정(眞情)성을 품어 안은 따뜻한 말의 힘이 아닐까.

물론 개인과 국가는 역사의 그늘에 묻히면 안 된다. 과거는 언제든지 맞닥뜨릴 현재와 미래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진실은 알려져야 한다. 모든 것을 말함으로써 상처는 치유하고 우리 삶의 현재와 미래를 역사 앞에 보장할 수 있다. 이것이 '파레사이(parrhesia)', 모든 걸 말하기다.

그러나 어떻게 모든 걸 말할 수 있을까? 입술에서 매끄럽게 흘러나오는 생소한 단어들은 무심한 듯 잊어버리자. 받아들이기에 이질적이며 정신을 들척이게 만드는 구절은 되받아 쳐내자. 사고의 전개가 고개를 끄덕여 줄 정도의 이해력을 내포하고 있는 문장은 소리 내어 낭송해 보자. 외마디 소리로 질러대거나, 꿈도 꾸지 못했던 온화하고 경이로운 화술로 속삭이는 언설(言舌)엔 침묵으로 엄혹하게 단죄해보자.

이제 '말 없음'표 신발을 장만해서 손자의 손을 잡고 서점을 찾아가 책을 읽거나 이십여 년 전 비행기사고로 명을 달리한 동기가 잠들어 있는 현충원을 찾아가 보자. 이는 삶의 열매를 찾아 말 씀씀이에 힘들어했던 어느 할아버지가 "말이 어떻게 행동이 될 것인지?" 되돌아보는 가늠자가 될 일이며, 말을 믿는 말을 찾는 자성(自省)의 길이 될 것이다. '뜨거운 얼음을 머금은 말'이 많이 떠돌아다닐 것 같은 6월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멈춰버린 엘리베이터, 고칠 시스템이 없다
  2. 2025 교원양성기관 역량진단 발표… 충청권 대학 정원 감축 대상은?
  3. 사실상 처벌 없는 관리… 갇힘사고 959번, 과태료는 3건
  4. [라이즈人] 홍영기 건양대 KY 라이즈사업단장 "학생중심 성과… 대학 브랜드화할 것"
  5. 강수량 적고 가장 건조한 1월 …"산불과 가뭄위험 증가"
  1. "대전충남 등 전국 행정통합法 형평성 맞출것"
  2. 단속 무시한 건축 폐기물 무단 투기
  3. 초미세먼지에 갇힌 대전 도심
  4. 대전교육청 공립 중등 임용 최종 합격자 발표… 평균경쟁률 8.7대 1
  5. 대전교육청 교육공무원 인사… 동부교육장 조진형·서부교육장 조성만

헤드라인 뉴스


대형마트도 새벽배송 허용?… 골목상권에 ‘로켓탄’ 던지나

대형마트도 새벽배송 허용?… 골목상권에 ‘로켓탄’ 던지나

당·정·청이 대형마트 '새벽배송'을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골목상권인 소상공인들이 즉각 반발하며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규제가 완화될 경우 전통시장과 소상공인들의 매출 급감이라는 직격탄으로 다가올 것이라는 게 업계의 우려다. 5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과 정부, 청와대는 최근 실무협의회를 열고 대형마트 새벽배송을 허용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정청은 해당 법에 전자상거래의 경우 관련 규제를 적용하지 않는 예외 조항을 두는 방안을 협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만..

[정책토론회] "대전·충남 행정통합, `지방의회`의 역할과 준비 과제를 묻다"
[정책토론회] "대전·충남 행정통합, '지방의회'의 역할과 준비 과제를 묻다"

연말부터 본격화된 대전·충남 행정통합이 본궤도에 올랐다. 더불어민주당이 충남·대전통합특별법안을 국회에 발의하며 입법 절차에 들어가면서다. 민주당은 9일 공청회, 20~21일 축조심사, 26일 본회의 통과를 목표로 속도를 내고 있다. 계획대로라면 오는 7월 충남대전특별시 출범이 현실화된다. 하지만 저항도 만만치 않다. 국민의힘 소속인 이장우·김태흠 시·도지사와 지역 국민의힘은 항구적 지원과 실질적 권한 이양 등이 필요하단 점을 들어 민주당 법안에 반대 의사를 명확히 하고 있다. 시민사회단체에서도 시민의 목소리가 배제된 채 통합이 추진..

부여 관북리 유적서 `백제 피리` 첫 확인… 1500년 잠든 ‘횡적’이 깨어나다
부여 관북리 유적서 '백제 피리' 첫 확인… 1500년 잠든 ‘횡적’이 깨어나다

국가유산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소장 황인호)는 5일 오전 부여군과 공동으로 진행 중인 부여 관북리 유적 제16차 발굴조사 성과 공개회를 진행했다. 이번 공개회에서는 2024~2025년 발굴 과정에서 출토된 주요 유물들이 처음으로 일반인에게 알렸다. 부소산 남쪽의 넓고 평탄한 지대에 자리한 관북리 유적은 1982년부터 발굴조사가 이어져 온 곳으로 사비기 백제 왕궁의 핵심 공간으로 인식된다. 대형 전각건물과 수로, 도로, 대규모 대지 등이 확인되며 왕궁지의 실체를 밝혀온 대표 유적이다. 이번 16차 조사에서 가장 주..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취약계층을 위한 설맞이 사랑의 온정 나눔 취약계층을 위한 설맞이 사랑의 온정 나눔

  • 국민의힘 대전시당, ‘졸속통합, 차별통합 중단하라’ 국민의힘 대전시당, ‘졸속통합, 차별통합 중단하라’

  • 초미세먼지에 갇힌 대전 도심 초미세먼지에 갇힌 대전 도심

  • 단속 무시한 건축 폐기물 무단 투기 단속 무시한 건축 폐기물 무단 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