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준 원장 |
이 시기 대한민국이 관리했던 주요 질병은 단순했다. 현대의학은 기생충, 감염성 질환 등에 대한답을 찾아내기 시작했고, 그 효과는 드라마틱했다. 1992년 국내 기생충 감염률은 4%로 떨어졌다.
#2. 1993년에 의과대학에 입학하고, 예과 1년을 마치고 개인 사정으로 휴학을 했다. 마침, 그때 어머니가 직장암 진단을 받으셨다. 본가가 있는 지방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봤는데 수술을 하면 직장을 보존하기 힘들고, 창자 샛길(장루)을 가지고 평생 살아야 한다고 했다. 어머니는 절망하셨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마음으로 결국 서울까지 가셨고, 천운이 따랐는지 직장을 살리셨고, 지금까지 잘 지내고 계신다.
많은 연구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암은 아직까지도 완벽하게 정복되지 않았다. 그래도 조기 건강검진, 신약, 새로운 수술 및 치료 기법 등으로 조기에 발견하면 5년 생존율은 전반적으로 높아졌다. 보건복지부가 2023년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암 환자 5년 상대 생존율은 72.1%로, 10년 새 6.6% 올랐다. 심지어 갑상선암은 100.1%로 암에 걸린 사람의 상대생존율이 더 높기도 하다.
#3. 어린 시절 "연속극"을 보면, 회장님이 와병으로 누워 계시고, 하얀 가운에 청진기를 맨 의사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하는 장면들이 많았다.
"다행히 안정되셨습니다. 너무 무리하지 않게 신경 써주세요."
소위 말하는 왕진이다. 그 시절만 해도, 아니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병의원은 가는 곳이지, 우리를 위해 찾아와주는 곳이 아니었다. 하지만 세상은 변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 통계에 따르면, 2021년을 기준으로 한국의 기대여명은 남자 80.7세이고, 여자 86.7세이다. 전문가들의 예측에 따르면 한국 여성은 멀지 않아 인류 최초로 기대여명 90세를 넘길지도 모른다고 한다. 이러다 보니 노인 인구가 증가하고, 다수의 노인이 복합질환을 가지거나, 신체기능 저하를 겪게 된다. 질병 치료와 동시에 씻고, 먹고, 자고, 외출하는 일상적인 기능 또한 유지시켜 드려야 한다. 결국 대상자의 상황, 관계 그리고 공간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지금은 치료의 시대를 벗어나 왕진(재택의료, 방문의료)의 시대로 가고 있다.
#4. 노인 환자분들을 많이 보면서 늘 하는 말이 있다. "이제 옛날처럼 생생한 상태로 돌아가시지는 못해요. 몸도 오래 움직여서 이제 많이 지쳤어요. 조심해서 잘 관리하시는 수밖에 없어요"'
이렇게 말씀드리면 대부분 이해하신다. 그리고 한숨을 내쉬는 분들이 많다. 사실 이미 신체 기능이 떨어졌고, 만성질환으로 인해 합병증이 생기신 분들에게 완치의 개념은 없다. 나빠지는 속도를 낮추고, 유지해 드리고, 불편함을 조금 감소시켜 드리는 것이 전부다.
결국 몸의 기능이 떨어지기 전에, 만성질환의 합병증이 오기 전에, 최대한 잘 관리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노년기 삶의 질도 올라가고, 국가 전체로 보면 의료비 절감도 가능하다.
실제 대한고혈압학회의 2023년도 자료에 따르면 2019~2021년 기준으로 40대 남성 및 여성의 경우 치료를 통해 혈압이 140/90mmHg 이하로 유지되는 비율이 40% 선에서 머무르고 있고, 50대의 경우, 60%가 되지 않는다. 결국 절반 이상의 환자들이 방치되고 있다.
그래서 진료실에서 약을 타고 빠른 속도로 빠져나가는 환자분들의 등에 대고 다음과 같은 잔소리를 끊임없이 반복한다.
"약 꼭 챙겨 드시고, 운동할 시간이 없으시면 식사하시고 10분이라도 걸으세요."
멀지 않아 잔소리의 시대가 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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