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자린고비와 굴비(屈非)

  • 오피니언
  • 여론광장

[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자린고비와 굴비(屈非)

  • 승인 2024-10-04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지난 여름 보리굴비가 택배로 왔다. 입맛을 돋우고 기력회복에 좋다하여 많이 먹는다. 어려서는 평상시 먹지 못하고, 제사 등 특별한 날 먹었던 음식이라 익숙하지 않다. 아마도 고급 음식이었기 때문이리라. 귀하고 맛있는 음식은 임금에게 진상한다는 말이 전하지 않는가. 조기도 그 중 하나이다. 지금은 1년 내내 전문으로 하는 식당도 있어, 구미가 당기면 수시로 먹을 수 있다.

자료를 살피자니, 얽힌 이야기가 아주 풍성하다. 우리말을 한자로 음역한 것이지만, 조기라는 이름자체가 도울 조(助), 기운 기(氣)다. 기운 차리는 것을 돕는다는 의미다. <어식백세>에 의하면 "양질의 단백질과 비타민, 철분, 무기질이 풍부하여 기력회복에 좋고 비타민 A와 D가 많아 야맹증을 예방하기도 한다. 특히 피로로 지친 몸을 회복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고 한다." 참조기·보구치·수조기·부세·흑조기 등의 종류가 있다. 오래 보관하기 위해 말린 참조기가 굴비이다. 보리굴비는 조기를 소금에 절여 보름 넘게 바싹 말린 다음, 통보리 뒤주 속에 넣어 보관하여 보리향이 배게 한 것이다. 아예 물에 불린 보리와 보리굴비를 함께 쪄 먹기도 한다. <소설 동의보감>에 의하면, 보리는 겨울 냉기를 머금고 있어 여름에 먹는 것이 제격이다. 대체로 냉차나 찬물에 만 밥에 구운 보리굴비를 곁들여 먹는다. 풍미와 꼬들꼬들한 식감이 일품이다.

영광 법성포는 참조기로 유명하다. 여행 중 법성포 바닷가 식당에서 딸 가족과 함께 굴비한정식을 먹은 일이 있다. 차림이나 식당에 따라 다르겠지만, 굴비한정식에 올라오는 음식은 상상이상으로 푸짐했다. 솥밥과 기본 반찬에 굴비구이, 보리굴비, 굴비젓갈, 매운탕, 간장게장, 양념게장, 모시송편, 광어회, 소불고기, 바지락장, 홍어무침, 갈치구이, 홍어삼합, 병어찜, 새우튀김, 고추장굴비, 마른참굴비, 낙지볶음, 새우장 등이다. 그림으로 본 중국 청조 서태후 수라상이 부럽지 않았다.

굴비란 이름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음식으로 읽는 한국 생활사>에서는 "생선을 짚으로 엮어 매달면 물고기가 구부러지는데 그 모양이 '굽었다'를 뜻하는 고어, 구비(仇非)에서 굴비라는 말이 나왔다고 보는 설이 유력하다."고 한다. 이자겸(李資謙, 1050?~1126)과 연관, 역경에 굴하지 않겠다는 뜻에서 유래했다고도 한다.

이자겸은 고려중기의 권신이다. 문종에게는 고모 셋이, 선종에게는 사촌누이 세 명이 시집가고 누이는 순종의 후궁인 장경궁주이다. 자신의 딸들도 예종과 인종에게 시집보내 왕실과 외척관계이다. 십팔자위왕(十八子爲王) 참설을 최초로 퍼뜨린 인물이다. 자신이 왕이 된다는 말이다. 군부와 정권을 모두 장악, 무소불위의 권세를 누렸다. 권세가 강하다고 모든 사람이 복종하는 것은 아니다. 불만과 이견 있는 사람 또한 많아진다. 임금도 다르지 않아 인내의 한계점에 이르렀던 모양이다. 이자겸의 난이란 1126년 2월 25일 인종에 의해 일어난 친위 쿠데타이다. 난을 평정한 인종은 이자겸파 사람 하나하나 사형, 수장, 유배, 조롱 하였다. 장인과 처가일족은 차마 극형에 처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이자겸 일가는 경향각지로 유배하였다. 이자겸과 그의 아내, 5남 이지윤(李之允)은 전라남도 영광으로 보냈다.

영광에 도착한 이자겸에게는 광활한 평야와 바다가 무릉도원으로 보였다. 당연히 어촌의 지붕위에 말리는 조기도 만나게 된다. 처음 먹어보는 조기의 맛이 비길 데 없는 일품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임금에게 진상할 생각을 한다. 감면 부탁의 아부로 보일까 두려웠던 모양이다. 아부행위가 아닌 백성의 도리로서 하는 것이라며, 비겁하게 굴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굴비(屈非)라 이름 붙여 임금께 진상하였다고 한다. 이후부터 임금께 진상되는 생선으로 유명해졌다. 뿐만 아니라 중국의 원, 명, 청에도 보내졌다고 한다. 그만큼 맛있는 음식이요, 그를 알리기 위한 것이었겠으나 중국에 보냈다는 것은 조공 아니던가. 굴하지 않겠다는 의미에 반한다.

한 번에 먹기 아까워 굴비를 천정에 매달고 밥 먹게 했다는 자린고비이야기도 유명하다. 밥 한 수저에 반찬으로 천정에 매달린 굴비를 한번 쳐다보라는 것이다. 한 숟갈 먹고 두 번 쳐다보자 너무 짜겠다고 탓한다는 이야기다. 자린은 기름에 절인 종이이고 고비(考?)는 돌아가신 부모를 이른다. 여기서는 지방(紙榜)으로 쓰였다. 자린고비는 제사 지낼 때 마다 지방 쓰는 종이가 아까워, 지방 쓴 종이를 기름에 절여두었다가 매번 재사용하였다는 의미다. 엄청난 구두쇠를 이르는 말이다.

양동길/시인, 수필가

양동길-최종
양동길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허태정-이장우 도시철도 서로 다른 청사진 표심 '촉각'
  2. 출마제한·내란잔당·낙하산… 충남 국회의원 보궐선거 혼전
  3. 대전 죽동중 신설 요구 잇달아… 교육감 후보들 "학교 설립 긍정"
  4. [신간] "고독사는 과연 비극일까"…'슈카쓰' 담은 소설 '행복한 고독사' 출간
  5. 청주 산모 비극, 대전이라면 달랐을까… 응급실 이송사업 전국확대 관심↑
  1. '이장우 vs 허태정' 리턴매치… 대전시장 주도권 다툼 본격화
  2. 파랑·핑크·초록… 대전교육감 '색(色) 마케팅'
  3. 힘 합쳐도 버거운데…野 '정진석 공천여부' 뇌관 부상
  4. 'AI가 돈사 운영' ETRI 제주서 AX 스마트팜 구축… '탄소중립' 축산 실증
  5. [부고] 김귀남 대전 서구청 언론홍보팀장 시모상

헤드라인 뉴스


이제 국회의 시간… 시민사회 "행정수도법 조속 처리하라"

이제 국회의 시간… 시민사회 "행정수도법 조속 처리하라"

행정수도특별법 공청회를 하루 앞두고, 세종지역 시민사회단체 등이 국회의 책임 있는 '결단'을 촉구하고 나섰다. 20년간 이어온 연구와 검토라는 변명의 시간을 종식하고, 행정수도특별법을 조속히 처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특히 수도 이전에 대한 국민 공감대를 바탕으로, 정치권의 특별법 당론 채택을 강하게 요구했다. 42개 세종·전국 시민사회단체(이하 시민단체)는 6일 오전 세종시청 브리핑실에서 '행정수도 특별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의 조속한 입법을 한목소리로 요구했다. 이날 회견에는 지방분권 전국회의 11개 지역단체와 한..

`7천피도 넘겼다` 새 역사 쓴 코스피… 코스닥, 지역 상장사는 소외
'7천피도 넘겼다' 새 역사 쓴 코스피… 코스닥, 지역 상장사는 소외

코스피 지수가 6일 반도체 대형주의 급등세에 힘입어 장중 사상 첫 7000선을 돌파하며 새 역사를 썼다. 그러나 이번 급등세가 소수 종목 및 분야에 편중돼 있다는 점과 코스닥과 지역 상장기업의 동반 상승을 이끌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과제로 남는다. 6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는 이날 전 거래일 대비 447.57포인트(6.45%) 오른 7384.56으로 거래를 마쳤다. 올해 2월 25일 처음으로 6000포인트를 돌파한 뒤 약 두 달 만의 대기록이다. 장 초반에는 코스피200선물지수의 급등세로 인해 올해 7번째 매수 사이드카가 발동..

[민선9기, 문화 숙원 풀릴까] 시립극단은 30년째, 박용래 생가는 주차장…
[민선9기, 문화 숙원 풀릴까] 시립극단은 30년째, 박용래 생가는 주차장…

문화는 특정 도시 경쟁력을 가늠하는 주요 지표 중 하나다.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야 각 후보들이 문화, 예술 공약을 내놓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지난 8년 간 대전시 문화정책에 대한 평가는 결이 다르다. 민선 7기엔 코로나 19 위기 속 예술인 지원과 운영 중심 정책이 두드러졌다. 반면 민선 8기에는 문화시설 확충과 대형 사업을 앞세운 외형적 확장이 눈에 띈다. 중도일보는 이에 따라 지난 8년간 대전시의 문화정책을 되짚어 미래를 위한 제언을 하고자 한다. 앞으로 민선9기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문화정책이 어떤..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유성온천 문화축제 준비 ‘이상무’ 유성온천 문화축제 준비 ‘이상무’

  • ‘공정선거 함께해요’ ‘공정선거 함께해요’

  • 시민 눈높이 설치 불법 현수막 ‘위험천만’ 시민 눈높이 설치 불법 현수막 ‘위험천만’

  • ‘과학과 나무랑 놀자’…유성 어린이 한마당 행사 성료 ‘과학과 나무랑 놀자’…유성 어린이 한마당 행사 성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