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톡] 45년 전 사제지간이 견우직녀로 만나다

  • 오피니언
  • 여론광장

[수필 톡] 45년 전 사제지간이 견우직녀로 만나다

남상선/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전 조정위원

  • 승인 2024-10-24 14:58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덕산고등학교 70년대 중반 졸업생 정민자 제자한테서 전화가 왔다. 고3때 반 친구 그 일당이 대전으로 몰려온다는 전화였다. 며칠 후에 그 동기 한은순 제자가 또 연락을 했다. 오는 친구들이 5명인데 만날 때마다 옛날 담임 얘기를 하다가 보고 싶어서 30일에 온다는 거였다. 직설적인 표현은 아니었지만 그 날 일정은 모두 비워 놓으라는 주문으로 알아들었다.

드디어 기다리던 날짜가 박두했다. 한은순 제자가 운전을 하고, 승용차 한 대에 5명이 타고 온 거였다. 고3때 졸업으로 헤어졌으니 자그마치 45년 이란 세월이 흐른 셈이었다. 강산이 4번씩이나 바뀌고서도 남는 세월이었으니 가히 짧은 시간의 흐름은 아니었으리라.

승용차가 아파트 앞에 도착하여 내리자마자 출석 부르는 기분으로 호명하며, 하나씩 포옹으로 맞이해 주었다. 김미숙, 임정수, 강의식, 정민자, 한은순 호명하며 포옹하는 벅찬 순간이었다. 여고생 때에는 안아 보지 못한 제자들을 할머니가 돼서야 안아 보았다. 마냥 피어나는 꽃봉오리처럼 곱고 예뻤던 그 시절의 모습들은 다 어딜 갔는지 보이질 않았다.

할머니가 다 되어, 고운 티라곤 찾아볼 수 없는 제자들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얼굴엔 잔주름이, 머리엔 희끗희끗 서릿발이, 이제는 같이 늙어가는 동료 아닌 동료가 되고 말았다.

세월의 위력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 년 꽃일 줄만 알았던 여고생들이 가정주부가 되어 가족을 걱정하고, 손주 재롱 보는 낙으로 사는 할머니들이 다 되었다. 그 풋풋하고 청순미 넘치던 시절의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고, 이제는 잔주름 잡힌 얼굴에 희끗희끗 서릿발 머리로 인생무상을 읊조리는 처지가 되었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더니 허튼 말이 아닌 것도 같았다. 요술 같은 세월의 마력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천안 서울 각지에서, 옛날 담임이 보고파서 찾아온 제자들이 너무나 고마웠다. 얼굴은 달라도 마음은 하나, 오로지 보고파서, 그그리워서, 그 마음 하나 달래보려 불원천리 마다하지 않은 거였다. 견우가 보고파서 찾아온 45년 전 제자 직녀들이었다. 제자들은 직녀, 나는 견우가 되어 오작교에서 만났다. 팔자에도 없는 견우직녀 만남이 대전이라는 오작교에서 이루어진 셈이었다.

견우와 직녀는 전설에 나오는 연인 사이다. 사랑하고 그리워하면서도 은하수란 장애물 때문에 만나지 못하는 안타까운 인물들이다. 칠월칠석날이 돼서야 까막까치가 놓아주는 오작교가 그들을 만나게 해 주고 있다.

5명의 제자는 직녀가 되고, 그 옛날 담임은 견우가 되어 만나게 되었다. 오작교는 물론 대전이었다. 만남의 동기는 그리움과 사랑이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그리움과 사랑만큼 심금을 울리는 걸, 어디서 찾아볼 수 있단 말인가!

대전이라는 오작교로 각지에서 모여든 건 오로지 그리움과 사랑의 힘이었다. 얼굴은 달라도 마음은 하나, 그리움이, 보고픔이 직그녀들을 그냥 둘 리 가 없었다. 그러기에 불원천리 달려온 것이었다.

달래보는 그리움과 보고픔만으로는 안 되겠던지 정성과 사랑을 많이도 담아왔다. 옛날 담임의 건강을 걱정해서인지 몸에 좋다는 도라지 청, 누룽지, 연근 무 표고버섯 마늘 혼합분말, 들기름, 열무김치, 바나나. 불가리스, 제주 천혜향, 참외, 바나나 코코낫 과자 등을 종합백화점 차리듯 다양하게도 챙겨왔다.

거실에서 차 한 잔 하고, 드리오리 음식점으로 가 점심을 먹었다. 오찬 마치고 바로 내 근무하는 한국효문화진흥원으로 향했다. 45년 전 옛날 담임은 안내해설자, 제자들은 고객이 되어 전시관 관람을 했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들이 부러움 그 일색이었다. 직녀녀가 되어 찾아온 제자들이 자랑스러웠다.

관람 마치고 뿌리공원 다리 건너서, 족보박물관과 전국 성씨 조형물을 눈요기하며 사진 촬영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희희낙락하는 견우와 직녀들의, 탐이 나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삽상한 바람까지 지원군으로 기분을 좋게 해주었다.

주변에 자지러지게 피어 있는 붉은 철쭉, 흰 철쭉, 영산홍, 이팝나무 꽃이 손님맞이로 반겨주었다.

견우직녀가 작별할 시간이 다 되었다. 견우가 직녀들한테 주는 정표로 마음을 담은, 벌꿀 1병씩에 대전의 명물인 성심당 소보르빵 1곽씩을 들려 보냈다. 제자들이, 옛날 선생님을 생각하는 그 소중한 마음에는 미치지 못한 소품이었지만 그래도 미안함을 조금은 덜어낸 것 같아 가벼운 마음이었다.

45년 전 사제지간이 견우직녀로 만나다.

보고픔, 그리움에 은하수까지 건너온 미숙, 정수, 의식, 민자. 은순 직녀들이여!

흘러간 세월의 비단에 마음까지 수를 놓았어라.

견우직녀의 만남은 칠월칠석날 오작교인데 마음 달래보는 우리의 오작교는 대전이어라.

보듬어서 가져온 사랑 불사조의 혼이 되리라.

얼굴은 달라도 마음은 하나,

그리움에도, 사랑에도, 최대공약수가 있나봐!

덕산의 정기 그대들 마음 천만세까지 빛을 내리라.

남상선/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전 조정위원

남상선
남상선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청주서 국내 최초 고고학 대박… 운천동서 고려 ‘청석탑’ 온전하게 나왔다
  2. 담양군, 전남도 예쁜정원 콘테스트 최우수상·우수상 석권
  3. 대전·세종·충청지방공인회계사회, 제32회 정기총회 개최…'정직한 회계 실현 다짐'
  4. 중징계 의결 사안 놓고 대전교육청·노조 갈등… 16일 면담
  5. 김운장 제주 신신호텔 그룹 회장, 제9대 대학야구연맹 회장 당선
  1. 서산, 123년 전통한옥, 복합문화예술공간 '해미담'으로 재탄생 된다
  2. 대전보훈병원 원내 순환도로·주차장 개통…교통소외 일부 해소
  3. 대전지검도 스마트워크 도입… 검찰 근무 유연화 기대 속 내부 우려도
  4. 교권·AI교육·학생안전 담는다…인수위 공식 출범
  5. 차용일 약학정보원 신임원장 "보건의료정보 접근성 향상"

헤드라인 뉴스


[현장 사람들] 화마 속 진실을 쫓는 대전동부소방서 화재조사관들

[현장 사람들] 화마 속 진실을 쫓는 대전동부소방서 화재조사관들

"화재 원인만 규명하는 것이 아니라 예방 방안을 찾고 알리는 것도 화재조사관의 역할이에요." 지난 4일 대전동부소방서 현장대응단 화재조사3팀 소속 곽맹걸(소방경), 이태규·김재능(소방교) 화재조사관은 "새까맣게 탄 현장에도 불길이 지나간 흔적은 남는다"라며 "정확한 원인 조사가 화재 피해를 예방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검게 그을린 건물, 무너진 구조물, 녹아내린 전선. 대부분 화재 현장은 폐허에 가깝다. 하지만 화재조사관에게는 작은 흔적 하나도 사건의 실마리다. 장시간 고온에 노출되면 검게 그을린 것을 넘어 하얗게 변하는 백화현..

與 충청 시도지사 당선인 8월 全大 앞 친명 친청 윤곽
與 충청 시도지사 당선인 8월 全大 앞 친명 친청 윤곽

김민석 총리와 6·3 지방선거 광역단체장 당선인과의 회동 이후 충청 정치권의 설왕설래가 뜨겁다. 이재명 대통령 최측근으로 8월 전당대회 당권 도전이 유력한 김 총리가 주재한 자리에 참석 여부를 두고 정치적 해석이 달리는 것이다. 16일 정치권에 따르면 김 총리는 전날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시도지사 당선인들을 만났다. 이 자리엔 더불어민주당 9명의 예비 광역단체장들이 참석했다. 충청권에선 허태정 대전시장 당선인, 조상호 세종시장 당선인, 신용한 충북지사 당선인 등 3명이 함께 했다. 하지만, 박수현 충남지사 당선인은 참석하지 않았..

종전 소식에 나프타 수급 원활해지나... 소상공인, 관련 제품 안정화 기대
종전 소식에 나프타 수급 원활해지나... 소상공인, 관련 제품 안정화 기대

미국과 이란 간 종전 합의로 호르무즈 해협 봉쇄 우려가 완화되면서 플라스틱과 비닐, 포장 용기 등을 만들 때 쓰이는 나프타가 안정적인 공급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그간 실생활과 밀접한 관련 제품 수급 불안과 가격 폭등으로 일선 자영업자들의 비명이 계속됐는데, 가격 안정화로 한시름 덜지 관심이 모아진다. 미국과 이란이 19일 종전 양해각서를 체결할 것이란 소식에 대전 소상공인들은 그간 급등한 나프타 관련 포장재 가격 인하에 기대를 걸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나프타 공급량은 6월 들어 공급량이 확대되고 있다. 중동 전쟁 직후인 3~4월..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여름철 풍수해 대비 장비 점검 여름철 풍수해 대비 장비 점검

  • 수족구 예방…‘꼼꼼하게 손 씻어요’ 수족구 예방…‘꼼꼼하게 손 씻어요’

  • 접시꽃에 담긴 여름 접시꽃에 담긴 여름

  • 임직원들이 함께 즐기는 월드컵 임직원들이 함께 즐기는 월드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