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명치료 중에도 성장한 '우리 환이'… 영정그림엔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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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명치료 중에도 성장한 '우리 환이'… 영정그림엔 미소

생후 9개월 친모 학대로 의식불명 환이
21일 봉사자들 배웅 속에 추모공원 안장
그 사이 키도 크고 100일 잔치 후 작별

  • 승인 2024-11-21 17:23
  • 신문게재 2024-11-22 6면
  • 임병안 기자임병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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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9개월째 친모의 학대로 의식불명에 빠진 '환이'를 보내는 수목장 안장식에서 봉사자 앞에 얇은 미소의 영정그림이 놓여 있다. (사진=임병안 기자)
"환이야, 많이 아팠지. 네가 떠나는 금요일, 마침 우리를 만나고서 작별했지. 이별이 헛되지 않게 최선을 다해 노력할게. -환이를 사랑하는 선생님들이"

21일 대전 서구 괴곡동 대전시립 추모공원에 작별의 편지를 읽는 낮은 목소리가 말 없는 무덤을 맴돌았다. 시립묘지 안에 정성스럽게 키운 향나무 아래에 방임과 학대 속에 고통을 겪은 '환이(가명)'는 그렇게 안장됐다. 2022년 11월 친모의 학대로 의식을 잃은 채 구조된 환이는 충남대병원 소아 중환자실에서 24개월을 치료에 응했고, 외롭지 않았다. 간호사와 의사 선생님이 24시간 환이 곁을 지키고, 인공호흡기에 숨이 주입되는 소리를 확인하며 말이 필요 없는 대화를 나눴다. 대전서부 아동보호전문기관 선생님들이 매달 환이를 찾아가 인사 나누고, 생활에 필요한 기저귀와 물티슈를 가져다주었다. 그때마다 환이는 곤히 잠든 아이처럼 두 눈을 감은 채, 가슴을 가냘프게 펄럭이며 살아 있음을 보이려 애썼다. 환이는 병원에서 그동안 미처 못 받은 보살핌을 받으며 부쩍 성장했고, 조촐하지만 100일 잔치도 가졌다. 병원에 처음 도착했을 때 키 71㎝에 몸무게 7.5㎏에서 키도 크고 몸집도 성장한 3살 아이가 되었다. 그러나 사회의 손길이 너무 늦게 닿았던 것인지, 환이는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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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모의 학대로 2년간의 연명치료 끝에 숨을 거둔 환이의 안장식에 봉사자들이 마련한 조화와 간식이 준비되어 있다.  (사진=임병안 기자)
지난 2년간 환이 진료에 필요한 모든 비용을 부담하며 아이가 깨어나기를 고대한 대전지검 범죄피해자지원센터와 무연고자 장례 절차에서도 산골 아닌 수목장을 통해 묘비를 새겨 환이가 세상에 다녀간 흔적을 남기도록 도운 대전지검 사건과 피해자지원팀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 영정사진 대신 병실에서 잠든 환이 모습을 손으로 그린 그림에서 환이는 얇은 미소를 보였다.

부모가 방임하고 학대해 아이에게 큰 상처가 남았을 때, 환이처럼 24개월간 치료에 필요한 모든 도움을 모든 학대 아동들 역시 받을 수 있을까? 너무 깊은 상처로 연명치료가 더는 아이의 삶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의료진이 판단할 때, 친권을 상실한 친부모를 대신해 후견인 자격의 지자체가 결정할 수 있는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과연 방임과 학대받는 아이를 조금 더 일찍 발견해 구조하려면 무엇을 할 것인가 라는 과제는 그대로 남았다.



이날 안장식에 참석한 대전서부 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는 "영정 대신 놓은 그림에 환이가 아픈 표정이 아닌 웃음 띤 모습이라서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라며 "같은 슬픔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이 많아진다"라고 밝혔다.
임병안 기자 victoryl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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