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시국 선언과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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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논단] 시국 선언과 민주주의

이형권 충남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문학평론가

  • 승인 2024-12-29 17:09
  • 신문게재 2024-12-30 18면
  • 송익준 기자송익준 기자
11이형권
이형권 교수
캠퍼스 곳곳에 학생들이 수기로 또박또박 작성한 대자보가 붙어 있다. 어떤 것은 시간이 좀 지난 듯 색깔이 약간 변해 있고, 어떤 것은 곧바로 써 붙인 듯 선명한 색깔을 보여주고 있다. 요즈음 대자보는 예전과 다른 모습이다. 예전에는 대개 전체 학생회나 단과대학 수준에서 붙였으나, 이번에는 학과 단위로도 여기저기 대자보가 자리를 잡고 있다. 주요 내용은 불법적 계엄 혹은 내란을 일으킨 대통령 탄핵을 주장하는 시국 선언이다.

학생들의 대자보를 보면서 지나간 세월을 떠올려본다. 1980년대 초, 대학에 갓 입학했을 때 캠퍼스 곳곳에 나부끼던 대자보가 다시 기억의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때도 대자보가 많았다. 캠퍼스 곳곳에 체루탄 가스 냄새가 진동하고, 학교 출입문 근처에서 전투경찰과 대치하면서 전두환 타도, 계엄 철폐를 외치던 시절이었다. 너나없이 민주주의, 독재 타도를 외치면서 데모를 했다. 시간이 지나 일부는 소위 운동권이 되고, 몇몇은 군대에 끌려가고, 어떤 친구는 도서관이나 고시원으로 사라졌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요즈음 학생들의 시국 선언에서 민주주의의 목소리를 다시 듣는다. 타도 대상만 달라졌을 뿐 반민주적 권력자에 대한 비판과 분노의 목소리는 똑같다. 다시,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본다. 민주주의는 말 그대로 국민이 주권을 갖는 정치 시스템이다. 국민 모두 나라의 주인이 되어 공동체의 안녕과 번영을 가능케 하는 이념이자 제도이자 가치이다.

민주주의는 이제 정치 체제일 뿐만 아니라 굳건한 생활 문화이자 삶의 근본적 가치이다. 민주주의는 이미 우리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곳곳에 살아 숨 쉬고 있고, 우리 삶의 구석구석에서 작동하는 생활 원리이다. 오늘날 우리 누리는 민주주의는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것은 획득하는 과정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희생과 고통이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 이러한 가치를 무너뜨리고자 하는 시도가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이없고 생뚱맞고 분노가 치미는 일이었다.



민주주의는 투표라는 공식적인 절차와 여타의 다양한 방식에 의해 작동한다. 투표는 상대적으로 간접적인 의사 표현의 방식이라면, 시국 성명이나 시위, 태업, 파업 등은 그보다 더 직접적인 의사 표현의 방식이다. 이들은 투표와 함께 모두가 민주주의를 실현해 가는 위한 중요한 방식이다. 최근의 계엄 사태와 관련하여 시국 성명이 잦은 빈도로 발표되고 있다는 것은 민주주의가 살아있다는 증거이다.

시국 선언은 국가적으로 중요한 사안에 관해 개인이나 집단이 공개적으로 의사표명을 하는 행위다. 우리 사회에서는 그동안 안보 문제, 군사정권 퇴진, 민주주의 수호, 부동산 문제, 빈부 격차, 4대강 사업, 예술계 블랙리스트, 대통령 탄핵, 불합리한 경제정책 등과 관련된 시국 선언이 있었다. 최근에는 계엄 사태를 맞이하여 대통령 탄핵과 구속에 대한 시국 선언이 각계각층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필자 역시 여기저기 서명의 붓을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시국 성명은 제2의 투표 행위이자 민주적 의사 표현이다. 사회적 책임감을 바탕으로 한 적극적인 행동이며, 민주주의 사회에서 허용되고 보호받아야 할 표현의 자유에 해당한다. 시국 성명은 단순한 비판의 도구를 넘어, 대중에게 경각심을 일깨우고, 여론 형성을 통해 변화를 촉진하는 강력한 수단이 된다. 다만, 맹목적 비난, 사실 왜곡, 폭력적 언어 등은 그 효과를 반감시킬 수도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제 한 해를 마무리해야 할 시간이다. 2025년, 을사년이 다가오고 있다. 새해에는 120년 전 한반도에 드리웠던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다시 재현되지 않기를 간절히 염원해 본다. 다가오는 을사년은 지혜를 상징하는 뱀의 해라는 사실에 걸맞게, 반민주 세력의 뿌리를 뽑아버리고 민주주의의 새로운 역사를 맞이하는 시간이 오기를 소망해 본다. 캠퍼스 곳곳에 나부끼는 학생들의 시국 선언 대자보에서 긴절한 민주주의의 생명력을 느껴보는 연말이다.

/이형권 충남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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