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디세이] 낡은 것은 새로움을 이기지 못한다

  • 오피니언
  • 시사오디세이

[시사오디세이] 낡은 것은 새로움을 이기지 못한다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 승인 2024-12-30 10:58
  • 심효준 기자심효준 기자
이승선 교수
이승선 교수
2024년 9월 1일. 가을바람이 소소하게 불 때 여야 대표가 모처럼 만났다. 야당 대표는 시민들 사이에 들불처럼 번지던 계엄 의혹이 사실이냐고 공개적으로 질문했다. 여당의 추 아무개 원내대표는 '가짜뉴스 선동'이라고 잡아뗐다. 오히려 그와 같은 질문은 국민을 '바보'로 아는 '거짓 선동이자 야당발 가짜뉴스'라고 몰아쳤다. 용산의 대통령실도 계엄령 의혹에 대해 '상식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며 '정말 말도 안 되는 정치 공세'라고 발끈했다. 9월 2일. 국방부장관 후보자 김용현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열렸다. 계엄령을 선포할지도 모른다는 의혹의 한 가운데 경호처장 출신 국방부장관 후보자 김용현이 있었다. 김민석, 추미애 등 야당 의원들은 대통령과 김용현이 계엄령을 대비한 친정체제를 구축하고 계엄령 빌드업을 시도하고 있지 않느냐고 집중 추궁했다.

입으로 하는 말과 몸으로 하는 말이 다를 때가 있다. 이를 언어적,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 양식이라고도 말한다. 국방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김용현은 "입으로" 공공연하게 말했다. "계엄령 의혹은 '거짓 선동, 정치선동'이다." 그는 또 입으로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계엄은 시대착오적인 것이고, 군대도 이를 따르지 않을 것이며, 어떤 국민도 계엄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청문회 영상을 보면 몸으로 하는 그의 말은 달라 보였다. 계엄령 의혹을 추궁하는 야당 의원들의 질의가 진행되는 동안 그는 무의식적으로 빈번하게 눈을 깜빡거리거나, 고개를 끄덕이거나, 오른손으로 안경이나 코를 만지거나, 계엄 관련 피피티 자료에 대해 눈으로 몰입해 집중적으로 살펴보는 동작을 했다. 계엄은 이미 준비되고 있었다는 것을 그의 몸이 말해주었다.



수사기관의 자료와 언론 보도에 따르면, 김용현은 지난 봄부터 대통령의 계엄 기획을 알고 있었고, 계엄에 대해 대통령과 소통했고, 가을에는 실질적인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4년 12월 3일 밤 10시 23분이 되기 전까지,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이 게엄령을 선포할지 모른다는 국회의원과 언론의 근거 있는 의혹의 제기는 권력자와 주류 언론에 의해 오로지 '거짓 선동', '정치 선동' 혹은 '괴담'이나 '가짜뉴스'라고 치부되었다. 권력자들과 주류 언론은 '가짜뉴스'란 개념을 합리적 의혹의 제기나 비판을 봉쇄하는 정치적 쓰임새로 동원했다.

12.3 비상계엄 포고령 제1호는 '가짜뉴스'를 금지한다고 말했다.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고 말했다.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이나 정치적 집회와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지한다고 말했다. 위반하면 영장 없이 체포, 구금하고 계엄법에 따라 처단한다고도 말했다. 현행 헌법에 명백하게 위반되는 내용이 가득한 포고령이다. 헌법재판소가 최종적인 심판을 내리겠지만, 대한민국의 어떤 헌법학 교과서를 펼치더라도 이번 비상계엄의 선포는 내용과 절차에 있어서 명백한 위헌, 위법 행위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렇지 않게 보이거나 달리 해석된다면 자기 내면의 너무 강한 신념이 헌법학 교과서 바르게 보기를 방해하는 것은 아닌지 자신에게 한번 물어볼 일이다.



한 야당 의원이 응당 해야 할 헌법적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국무총리에게 'X자식'이라며 해서는 안 될 욕을 하자, 여당의 가짜뉴스 대응팀에서 이를 '명백한 가짜뉴스'라고 규정하고 대응에 나섰다. 국무총리 아무개는 '개'가 아니라 '명백한 사람의 자식'이라는 것이다. 웃픈 일이다. 정치권에서 '가짜뉴스'라는 용어가 어떻게 쓰이는지, 권력자들이 반헌법적이고 비정상적인 조치를 함부로 취하며 '가짜뉴스'라는 개념의 칼날을 어떻게 마구 휘두르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서울 광화문 한복판에서 성격이 다른 두 집회가 열리고 있다. 어떤 집회에 가거나 어떤 집회를 심정적으로 지지하더라도, 기회가 되면 한 번쯤 같은 광장에서 열리는 다른 집회에 가서 다른 집회 참석자들의 외침과 행동을 살펴보는 것도 괜찮으리라. 집회와 시위의 방식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무엇을 외치는지, 어떤 집회에는 왜 중장년은 물론 어린 소년 소녀와 20, 30대 청년들이 그토록 많은지, 나이를 먹어서 낡게 되는 것이 아니라 바르게 보지 못해 낡아가는 것은 아닌지 별별 의문이 들 것이다. 그러나 자발적으로 광장을 가득 메우고 거리를 행진하는 어리고 연약해 보이는 듯한 젊은 세대가 사실은 진정 강하다는 것 그리고 젊은 세대가 몸으로 민주주의를 배우고 실천하는 현장에서 대한민국의 미래와 희망을 보게 될지 모른다. 더불어 낡은 것은 결코 새로움을 이기지 못한다는 단순하고 자연스러운 이치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주말 사우나에 쓰러진 60대 시민 심폐소생술 대전경찰관 '화제'
  2. [기획]3.4.5호선 계획으로 대전 교통 미래 대비한다
  3. 충청권 광역철도망 급물살… 대전·세종·충북 하나로 잇는다
  4. [사이언스칼럼] 아쉬움
  5. [라이즈 현안 점검] 거점 라이즈센터 설립부터 불협화음 우려…"초광역화 촘촘한 구상 절실"
  1. "성심당 대기줄 이제 실시간으로 확인해요"
  2. [사설] 이삿짐 싸던 해수부, 장관 사임 '날벼락'
  3. 금강유역환경청, 화학안전 24개 공동체 성과공유 간담회
  4. '금강을 맑고푸르게' 제22회 금강환경대상 수상 4개 기관 '한뜻'
  5. 실패와 편견 딛고 환경보전 실천한 빛나는 얼굴들…"금강환경대상이 큰 원동력"

헤드라인 뉴스


‘도시 혈관’ 교통망 확충 총력… ‘일류도시 대전’ 밑그림

‘도시 혈관’ 교통망 확충 총력… ‘일류도시 대전’ 밑그림

민선 8기 대전시가 도시의 혈관인 교통망 확충에 집중하면서 균형발전과 미래 성장동력 기반 조성에 힘이 실리고 있다. 대전 대중교통의 혁신을 이끌 도시철도 2호선 트램 사업이 전 구간에서 공사를 하는 등 2028년 개통을 위해 순항하고 있다. 이와 함께 충청권 광역철도와 CTX(충청급행철도) 등 메가시티 조성의 기반이 될 광역교통망 구축도 속도를 내고 있다. 대전의 30여년 숙원 사업인 도시철도 2호선은 지난해 연말 착공식을 갖고, 올해부터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가 현재 본선 전구간(14개 공구)에서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도시철도 2..

`금강을 맑고푸르게` 제22회 금강환경대상 수상 4개 기관 `한뜻`
'금강을 맑고푸르게' 제22회 금강환경대상 수상 4개 기관 '한뜻'

금강을 맑고 푸르게 지키는 일에 앞장선 시민과 단체, 기관을 찾아 시상하는 제22회 금강환경대상에서 환경과 시민안전을 새롭게 접목한 지자체부터 저온 플라즈마를 활용한 대청호 녹조 제거 신기술을 선보인 공공기관이 수상 기관에 이름을 올렸다. 기후에너지환경부 금강유역환경청과 중도일보가 공동주최한 '제22회 금강환경대상' 시상식이 11일 오후 2시 중도일보 4층 대회의실에서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유영돈 중도일보 사장과 신동인 금강유역환경청 유역관리국장, 정용래 유성구청장, 이명렬 천안시 농업환경국장 등 수상 기관 임직원이 참석한 가운..

[기획]2028년 교통 혁신 도시철도2호선 트램 완성으로
[기획]2028년 교통 혁신 도시철도2호선 트램 완성으로

2028년이면 대전은 도시철도 2호선 트램 완공과 함께 교통 혁신을 통해 세계적으로 지속 가능한 미래 도시로 성장할 전망이다. 11일 대전시에 따르면 대전 도시철도 2호선 트램 사업은 지난해 12월 착공식을 개최하고, 현재 본선 전구간(14개 공구)에서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2027년까지 주요 구조물(지하차도, 교량 등) 및 도상콘크리트 시공을 완료하고, 2028년 상반기 중 궤도 부설 및 시스템(전기·신호·통신) 공사를 하고, 하반기에 철도종합시험 운행을 통해 개통한다는 계획이다. 최근에는 내년 대전시 정부 예산안에 공사비로 1..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트램 2호선 공사현장 방문한 이장우 대전시장 트램 2호선 공사현장 방문한 이장우 대전시장

  • ‘자전거 안장 젖지 않게’ ‘자전거 안장 젖지 않게’

  • ‘병오년(丙午年) 달력이랍니다’ ‘병오년(丙午年) 달력이랍니다’

  • 풍성한 연말 공연 풍성한 연말 공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