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일의 세상 읽기]스네이크 센스와 아보하와 무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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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일의 세상 읽기]스네이크 센스와 아보하와 무해력

한성일(편집위원/국장)

  • 승인 2025-01-22 17:13
  • 신문게재 2025-01-23 18면
  • 한성일 기자한성일 기자
반명함
2025년 푸른 뱀의 해를 맞아 트렌드코리아 2025가 정한 올해의 영문키워드 두운이 바로 ‘스네이크 센스(SNAKE SENSE)’다. 결코 녹록치 않은 2025년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뱀처럼 섬세한 감각이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탄생한 단어다. 뱀은 환경 적응력이 뛰어나 자기 몸이 커지면 허물을 벗고, 날이 추워지면 동면을 한다. 구태를 미련 없이 버리고 떠나는 뱀의 특성은 환경 변화가 상수가 된 현대 사회를 살아야 하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트렌드가 격변하는 시대에 죽지 않고 살아남으려면 환경적응과 자기 혁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껍질을 벗는 고통을 감수하고서라도 늘 성장해 가야 되고, 추우면 추운대로, 더우면 더운대로 환경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며 살아야 되는 우리이기에, 가능한 감각기관을 총동원해 환경변화를 감지하고 먹이를 찾는 뱀의 비범함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리라.

소비트렌드분석센터에서 발표한 단어 중에 ‘아보하’란 단어가 눈에 띈다. ‘Nothing Out of the Ordinary:Very Ordinary Day’, 즉 매우 일상적이고 평범한 날을 뜻하는 말이다.

한국 사회의 행복 담론이 바뀌고 있다고 한다. ‘행복해야 한다’라는 믿음에서 한 걸음 비켜서서 너무 행복하지도, 너무 불행하지도 않은 일상, 그저 ‘무난하고 무탈하고 안온한 삶’을 가치 있게 여기는 태도를 ‘아주 보통의 하루’, 줄여서 ‘아보하’라고 한다.

‘아보하’는 행복의 과시로 변질된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에 대한 피로이자 반발에서 나온 단어라고 한다. 작더라도 확실하게 행복을 추구하고, 또 그것을 과시해야 한다는 강박이 오히려 행복을 방해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되었다는 분석에서 파생된 단어다.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계층 간의 격차가 더 견고해지고, 자랑으로 가득한 소셜미디어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현실 속에서 보통의 오늘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개념일 것이다.

여기에 더해 또 한가지 눈여겨볼 단어는 ‘무해력’이다. ‘Embracing Harmlessness’, 즉 무해한 것을 포용하고 받아들이는 능력이다.

작거나 귀엽거나 서툴지만 순수한 것들이 사랑받는 세상이다. 이처럼 작고 귀엽고 순수한 것들의 공통점은 해롭지 않고, 그래서 나에게 자극이나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며, 굳이 반대하거나 비판할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러한 특성을 ‘무해함’으로 범주화하고, 이렇게 무해한 사물들의 준거력(refernt power)이 강해지는 현상을 ‘무해력’이라 부르고 있다. 전 국민의 사랑을 받은 푸바오와 쌍둥이 자매 동생 루이바오, 후이바오 같은 귀여운 동물들, 세상 모든 것을 작디 작게 만드는 미니어처 열풍, 서툰 말씨와 대충 그린 이모티콘이 더 사랑받는 현상에는 이런 ‘무해력’이 자리한다는 것이다.

무해력이 주목받는 이유는 단지 귀엽거나 예뻐서가 아니라, 정치 불안과 경제 불황, 예측할 수 없는 미래, 날로 심해지는 정치·사회적 갈등, 코로나 블루에 이은 코로나 레드(분노)에 지친 젊은이들이 스스로를 ‘긁힌 세대’라고 부르며 자조하는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이러한 암울함의 반작용으로 귀엽고 순수하고 단순한, 해가 없는 대상을 찾게 된다는 것이다. 무해력은 이제 어지럽고 혼탁한 세상에서 한 줌의 희망을 느낄 수 있는 생존의 비결이 됐다고 평가받고 있다. 반려견, 반려묘가 우리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더 커지는 점도 여기에서 연유할 것이다.

필자만 해도 자이언트 판다 가족인 러바오, 아이바오, 푸바오, 루이바오, 후이바오 가족과 우리집 다섯살배기 반려견 토이푸들 송이에게서 얼마나 큰 위안과 위로를 받고 마음의 평안과 안식과 기쁨을 얻게 되는지 모른다. 세상이 혼탁해지고 어렵고 고통스러워질수록 천사의 마음으로 돌아오게 해주는 귀여운 힐링의 존재들이 있어 그나마 살아가는 힘을 주는 것 같다.

스네이크 센스를 갖되 아보하와 무해력의 행복을 누리는 한해가 되시길 바란다.

한성일(편집위원/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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