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홍철 칼럼] 115. 시와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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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홍철 칼럼] 115. 시와 정치

염홍철 국립한밭대 명예총장

  • 승인 2025-04-10 12:00
  • 현옥란 기자현옥란 기자
염홍철칼럼
염홍철 국립한밭대 명예총장
제가 기억하기로는 우리나라 역대 국회의원 중 시인은 도종환 시인과 김춘수 시인으로 알고 있습니다. 자료를 찾아보니까 김광진이라는 시인이 있었더군요. 혹시 더 있을지도 모르지만 국회의원 중에 시인은 매우 드뭅니다. 대체로 정치 언어와 시의 언어가 다르다고 합니다. 정치 언어는 명확하고 설득력이 있어야 하고 사람을 움직이기 위한 언어이기 때문에 논리, 주장, 사실이 확실해야 합니다. 반면 시의 언어는 모호하고 상징적이거나 감성적이어서 해석의 여지를 남겨놓고 있습니다. 즉 시는 여백을 남기고 정치는 메시지를 못 박아야 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둘의 언어 감각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전혀 다르게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저는 오래전에 어느 문학단체에서 <시정(市政)과 시정(詩情) 사이>라는 강의를 요청받은 바 있습니다. 그때 시정(市政)과 시정(詩情)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고 얘기했고 글을 쓴 적도 있습니다. 시정(市政)이나 국정(國政)의 목표와 키워드는 섬김, 소통, 공감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라의 주인으로서 시민을 섬겨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또한 시민의 뜻을 정치나 행정에 반영하기 위해서는 원활한 소통을 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어려운 계층을 위한 배려의 정책이 필수적입니다. 섬김의 정치는 공직자의 겸허함과 국민 존중이어야 하고 소통은 공감을 전제로 해야 하며 배려는 낮은 사람의 삶에 대한 연민입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정신이 시가 추구하는 정신과 동일하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김사인 시인은 <시를 어루만지다>라는 책에서 시에 임하는 자세를 세 가지로 설명했는데, 첫째는 겸허와 공경이었습니다. 대상에 대한 존중과 정성스러움을 말하는 것이지요. 둘째는 공감과 일치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아름다움을 매개로 정서적 공감과 일치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마지막으로 김사인 시인은 시를 일으켜 세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삶과 세계의 산 모습을, 놀라운 발견과 아름다운 세계를 우리에게 열어 보이자는 것이지요.

따라서 시정(市政)이나 국정에서 얘기하는 세 가지 목표 즉 섬김, 소통, 배려는 바로 김사인 시인의 시에 임하는 자세로도 그대로 나타납니다. 겸허와 공경, 공감과 일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들이 바로 그것입니다.



시의 역사는 고대 그리스와 중국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그리스의 최초, 최고의 서사시는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인데 당시 신화 속 여신이나 영웅의 불멸의 명성을 위해 시인이 필요했고, 시인도 자신의 야망을 위해 영웅과의 결합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중국에서도 전국시대 이래 '시의 나라'라고 불릴 만큼 걸출한 시인들이 많았습니다. 도연명, 두보, 이백, 왕유 등이 그들이지요. 그리고 가장 오래되고 가장 많이 읽은 시집인 <시경(詩經)>을 보유한 나라입니다. <시경> 305편을 달달 외운 사람은 공자였는데, 공자의 시론을 요약하면 시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회, 사람과 자연의 소통이라는 것입니다. 한나라 이후에도 시와 음악의 중요성을 인정하여 악부(樂府)라는 관청을 만들어 관리했지요. 당시 시와 정치가 긴밀했음을 나타내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낙엽 하나에도 고단한 삶을 위로받는 따뜻한 시선은 바로 시정(市政)과 시정(詩情) 사이를 관통하는 정서적 공감이 아닐까요? 정치인이나 공직자가 들꽃 하나라도 정성스럽게 관찰하여 거기에서 아름다움과 생명의 위대함을 확인할 수 있고, 고목에 달랑 걸려 있는 낙엽 하나를 보고도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그런 정서가 필요한 것입니다. 시인의 가슴과 눈으로 정치나 행정을 하면 성공하지 않을까요?

염홍철 국립한밭대 명예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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