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내일] 오표시 무해의 원칙과 가정

  • 오피니언
  • 오늘과내일

[오늘과내일] 오표시 무해의 원칙과 가정

신동철 법무법인 유앤아이 변호사

  • 승인 2025-05-18 16:45
  • 수정 2025-05-19 09:49
  • 신문게재 2025-05-19 19면
  • 송익준 기자송익준 기자
111신동철
신동철 변호사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는 속담이 있다. 비록 온전치 않은 의미를 전달하고 표현이 어색할지라도 듣는 사람이 그 의도를 정확히 이해하는 경우에 쓰이는 말이다. 이러한 의미가 통하는 법률 원칙으로, 로마법 이래로 인정되어 오는 '오표시 무해의 원칙' (Falsa demontstraio no nocet)이 있다. 이는 설사 표시가 잘못 되었더라도, 의사표시를 한 사람이 실제로 원한 의사를 상대방이 올바르게 인식했다면 표시와 관계없이 양 당사자가 인식한 대로 의사표시가 합치된다는 것을 말한다.

오표시 무해의 원칙을 설명하면서 민법 교과서에 자주 소개되는 100여 년 전 사례이다. A가 B로부터 고래고기를 사기로 하면서 'Haakjoringskod(Haakjöringsköd)'라고 기재하였다. 그런데 A가 막상 받은 물건은 고래고기가 아니라 상어고기였다. 그러자 A가 B에게 매매계약의 이행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독일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였다. 해당 단어가 노르웨이어로는 상어고기를 의미하였으나 독일어로는 고래고기를 의미했고, 무엇보다 고래고기의 가격이 상어고기보다 1,000배나 비쌌다고 한다. 독일 법원은 고래고기의 가격이 상어고기의 가격보다 월등하게 고가로 거래되는 거래 현실과 매수인 A가 고래고기 전문요리점에 요리재료를 공급하는 상인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A, B가 계약 목적물로 삼은 것은 고래고기로 이해함이 합당하므로 B가 A에게 공급해야할 것은 상어고기가 아니라 고래고기라고 판결하였다. 설령 'Haakjoringskod(Haakjöringsköd)'가 잘못된 표시였더라도 당사자가 의도한 것이 '고래고기'라고 판단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사례는 우리 법원 판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대법원은 "부동산의 매매계약에 있어 쌍방 당사자가 모두 특정의 甲 토지를 계약의 목적물로 삼았으나 그 목적물의 지번 등에 관하여 착오를 일으켜 계약을 체결함에 있어서는 계약서상 그 목적물을 甲 토지와는 별개인 乙 토지로 표시하였다 하여도 甲 토지에 관하여 이를 매매의 목적물로 한다는 쌍방 당사자의 의사합치가 있은 이상 위 매매계약은 甲 토지에 관하여 성립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고 乙 토지에 관하여 매매계약이 체결된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될 것이며, 만일 乙 토지에 관하여 위 매매계약을 원인으로 하여 매수인 명의로 소유권이전등기가 경료되었다면 이는 원인이 없이 경료된 것으로서 무효라고 할 것이다"라고 판결하여 오표시 무해의 원칙을 받아들이고 있다. 즉, 표시된 내용이 있다고 해도 당사자의 진정한 의사를 확인할 수 있는 다른 정황들로 볼 때, 그 의도를 확인할 수 있다면 그 잘못된 표시에 구애되지 않고 표시된 바와 다르게 당사자의 의사의 합치에 따른 효과를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양당사자 사이의 의사표시에 대한 이견 때문에 소송까지 진행된 경우 그 의사표시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양쪽 당사자의 유불리가 갈리기 때문에 그 표시의 내용, 표시된 동기와 경위, 그에 의하여 달성하려는 목적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제반 증거들과 상황들에 의하여 종합적으로 판단되게 된다.



이와 같은 의사와 표시의 불일치 문제가 오늘날 우리 가정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가족 간에 워낙 같이 보내는 시간이 짧기도 하고 마주 보고 대화하기 보다는 전화나 문자메시지로 대체하다 보니 표시된 말에 대해 서로 다른 이해를 하기도 하고, 오해가 쌓이고 결국 그것이 다툼의 빌미가 된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것을 기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사이에 깊은 이해와 공감이 배경에 있어야 한다. 말하는 사람이 '나는 알려줬다'는 것만 강조하기보다 듣는 사람이 그 말을 얼마나 잘 이해하는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의사소통은 단순히 말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 먼저 상대방을 서로 대화하며 존중감을 잃지 않는 것과 서로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필요하다. 가정의 달을 맞아 오표시 무해의 원칙이 통용되고 서로의 말을 찰떡같이 알아듣는 가정들이 늘어나면 좋겠다고 소망해 본다.

/신동철 법무법인 유앤아이 변호사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충남 통합논의"…金총리-與 충청권 의원 전격회동
  2. 대전역 철도입체화, 국가계획 문턱 넘을까
  3. '물리적 충돌·노노갈등까지' 대전교육청 공무직 파업 장기화… 교육감 책임론
  4. 대전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간담회 열려
  5. [대전, 일류 문화도시의 현주소] 국립시설 '0개'·문화지표 최하위…민선8기 3년의 성적표
  1. 대전충남 행정통합 발걸음이 빨라진다
  2. 이대통령의 우주청 분리구조 언급에 대전 연구중심 역할 커질까
  3. 대전 동구, '어린이 눈썰매장'… 24일 본격 개장
  4. [기고] 한화이글스 불꽃쇼와 무기산업의 도시 대전
  5. 대전연구원 신임 원장에 최진혁 충남대 명예교수

헤드라인 뉴스


10·15부동산 대책 2개월째 지방은 여전히 침체… "지방 위한 정책 마련 필요" 목소리

10·15부동산 대책 2개월째 지방은 여전히 침체… "지방 위한 정책 마련 필요" 목소리

정부 10·15 정책이 발표된 지 두 달이 지난 가운데, 지방을 위한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 3단계가 내년 상반기까지 유예되는 등 긍정적 신호가 나오고 있지만, 지방 부동산 시장 침체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어서다. 15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누적 매매가격 변동률(12월 8일 기준)을 보면, 수도권은 2.91% 오른 반면, 지방은 1.21% 하락했다. 서울의 경우 8.06%로 꾸준히 상승곡선을 그린 반면, 대전은 2.15% 하락했다. 가장 하락세가 큰 곳은 대구(-3...

[대전, 일류 문화도시의 현주소] 제2문화예술복합단지대·국현 대전관… 대형 문화시설 `엇갈린 진척도`
[대전, 일류 문화도시의 현주소] 제2문화예술복합단지대·국현 대전관… 대형 문화시설 '엇갈린 진척도'

대전시는 오랜 기간 문화 인프라의 절대적 부족과 국립 시설 공백 속에서 '문화의 변방'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민선 8기 이장우 호(號)는 이 격차를 메우기 위해 대형 시설과 클러스터 조성 등 다양한 확충 사업을 펼쳤지만, 대부분은 장기 과제로 남아 있다. 이 때문에 민선 8기 종착점을 6개월 앞두고 문화분야 현안 사업의 점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대전시가 내세운 '일류 문화도시' 목표를 실질적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단순한 인프라 확충보다는 향후 운영 구조와 사업화 방안을 어떻게 마련할는지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중도일..

내란특검, 윤석열·정진석·박종준·김성훈·문상호… 충청 대거 기소
내란특검, 윤석열·정진석·박종준·김성훈·문상호… 충청 대거 기소

12·3 비상계엄 사태에 적극 가담하거나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충청 출신 인사들이 대거 법원의 심판을 받게 됐다. 12·3 비상계엄 관련 내란·외환 의혹을 수사한 내란 특별검사팀(특별검사 조은석)은 180일간의 활동을 종료하면서 15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에 의한 내란·외환 행위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정진석·박종준·김성훈·문상호·노상원 등 충청 인사 기소=6월 18일 출범한 특검팀은 그동안 모두 249건의 사건을 접수해 215건을 처분하고 남은 34건을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국수본)에 넘겼다. 우선 윤석..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의 밤은 낮보다 화려하다’ ‘대전의 밤은 낮보다 화려하다’

  • ‘헌혈이 필요해’ ‘헌혈이 필요해’

  • 까치밥 먹는 직박구리 까치밥 먹는 직박구리

  • ‘겨울엔 실내가 최고’…대전 곤충생태관 인기 ‘겨울엔 실내가 최고’…대전 곤충생태관 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