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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철 변호사 |
오표시 무해의 원칙을 설명하면서 민법 교과서에 자주 소개되는 100여 년 전 사례이다. A가 B로부터 고래고기를 사기로 하면서 'Haakjoringskod(Haakjöringsköd)'라고 기재하였다. 그런데 A가 막상 받은 물건은 고래고기가 아니라 상어고기였다. 그러자 A가 B에게 매매계약의 이행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독일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였다. 해당 단어가 노르웨이어로는 상어고기를 의미하였으나 독일어로는 고래고기를 의미했고, 무엇보다 고래고기의 가격이 상어고기보다 1,000배나 비쌌다고 한다. 독일 법원은 고래고기의 가격이 상어고기의 가격보다 월등하게 고가로 거래되는 거래 현실과 매수인 A가 고래고기 전문요리점에 요리재료를 공급하는 상인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A, B가 계약 목적물로 삼은 것은 고래고기로 이해함이 합당하므로 B가 A에게 공급해야할 것은 상어고기가 아니라 고래고기라고 판결하였다. 설령 'Haakjoringskod(Haakjöringsköd)'가 잘못된 표시였더라도 당사자가 의도한 것이 '고래고기'라고 판단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사례는 우리 법원 판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대법원은 "부동산의 매매계약에 있어 쌍방 당사자가 모두 특정의 甲 토지를 계약의 목적물로 삼았으나 그 목적물의 지번 등에 관하여 착오를 일으켜 계약을 체결함에 있어서는 계약서상 그 목적물을 甲 토지와는 별개인 乙 토지로 표시하였다 하여도 甲 토지에 관하여 이를 매매의 목적물로 한다는 쌍방 당사자의 의사합치가 있은 이상 위 매매계약은 甲 토지에 관하여 성립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고 乙 토지에 관하여 매매계약이 체결된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될 것이며, 만일 乙 토지에 관하여 위 매매계약을 원인으로 하여 매수인 명의로 소유권이전등기가 경료되었다면 이는 원인이 없이 경료된 것으로서 무효라고 할 것이다"라고 판결하여 오표시 무해의 원칙을 받아들이고 있다. 즉, 표시된 내용이 있다고 해도 당사자의 진정한 의사를 확인할 수 있는 다른 정황들로 볼 때, 그 의도를 확인할 수 있다면 그 잘못된 표시에 구애되지 않고 표시된 바와 다르게 당사자의 의사의 합치에 따른 효과를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양당사자 사이의 의사표시에 대한 이견 때문에 소송까지 진행된 경우 그 의사표시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양쪽 당사자의 유불리가 갈리기 때문에 그 표시의 내용, 표시된 동기와 경위, 그에 의하여 달성하려는 목적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제반 증거들과 상황들에 의하여 종합적으로 판단되게 된다.
이와 같은 의사와 표시의 불일치 문제가 오늘날 우리 가정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가족 간에 워낙 같이 보내는 시간이 짧기도 하고 마주 보고 대화하기 보다는 전화나 문자메시지로 대체하다 보니 표시된 말에 대해 서로 다른 이해를 하기도 하고, 오해가 쌓이고 결국 그것이 다툼의 빌미가 된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것을 기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사이에 깊은 이해와 공감이 배경에 있어야 한다. 말하는 사람이 '나는 알려줬다'는 것만 강조하기보다 듣는 사람이 그 말을 얼마나 잘 이해하는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의사소통은 단순히 말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 먼저 상대방을 서로 대화하며 존중감을 잃지 않는 것과 서로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필요하다. 가정의 달을 맞아 오표시 무해의 원칙이 통용되고 서로의 말을 찰떡같이 알아듣는 가정들이 늘어나면 좋겠다고 소망해 본다.
/신동철 법무법인 유앤아이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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