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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홍철 국립한밭대 명예총장 |
'찔레꽃 아카시아꽃 탱자꽃 안개꽃이
모두 흰빛으로 향기로운 5월,
푸른 숲의 뻐꾹새 소리가 시혼(詩魂)을
흔들어 깨우는 5월
나는 누구에게도 방해를 받지 않고
신록의 숲으로 들어가
그동안 잃어버렸던 나를 만나고 싶다
살아서 누릴 수 있는 생명의 축제를
우선은 나 홀로 지낸 다음
사랑하는 이웃을 그 자리에 초대하고 싶다'
이렇게 5월은 '생명의 축제'를 구가하고, 계절의 여왕이라는 칭송을 받고 있지만 저에게 5월은 흰빛 향기보다는, 또는 모란이 피는 찬란한 봄이라기보다는 보람마저 서운케 무너지는 그런 달이라는 기억이 있습니다. 어느 해 5월, 저는 증오의 타깃이 되었고 칼바람 휘몰아쳐 감성이 춤추는 판이 벌어진 그런 달이었습니다. 광풍이 지난 후 서로가 허망하여 마음 놓고 위로의 인사도 건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때의 슬픈 눈망울은 아직도 제 눈에 밟히고 있지요. 그것은 바로 '대전은 요'로 시작되는 그해 5월의 선거였습니다. 올해 5월도 큰 선거를 앞두고 '칼바람이 휘몰아쳐 감성이 춤추고' 있지요. 그러나 '집단지성'의 힘으로 성숙하게 마무리될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이렇게 5월의 기억이 아름답지만은 않지만, 구약성경 시편에 나오는 구절을 읽으며 위안을 받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뿐만 아니라 제가 기억하는 그 5월은 저의 착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편해집니다. 제가 기억하는 것은 이미 취사선택을 하고 감정을 덧붙인 형태로 저장된 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런 '기억'과 관련하여 최근에 좋은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기억에 대한 25년간 연구에 매진한 신경과학자 겸 임상심리학자인 차란 란가니스 교수가 '기억한다는 착각'이라는 저서를 출판하였습니다. 저자에 의하면 기억은 사진이 아니라 그림에 더 가깝다고 하였습니다. 그림은 "완전한 사실이라기보다 화가의 시각이 반영된 해석과 추측이 어느 정도 섞여 있다"라는 것이지요.
저자는 기억은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고도 말합니다. 현재와 미래의 문제라는 것이지요. 이에 대해 '과학책 읽기'를 쓰고 있는 김명남은 "기억은 한번 습득한 정보를 잘 간직했다가 그것을 바탕으로 현재 더 빠르게 환경을 파악하고 미래에 더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한 기술이지 옛 추억에 잠기라는 기능은 아니다"라고 하였습니다. ('한겨레 신문' 2025년 5월 24일자 참조) 그렇습니다. 저도 어느 5월의 기억이 '보람마저 서운케 무너지는 그런 달'이 아니라 미래에 더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한 단련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더욱 5월이 '가정의 달'이기 때문에 그런 슬픈 기억은 뒤로 하고 가까운 모든 사람을 사랑하며 활기차게 보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서 금언처럼 간직하고 있는 말, '추억은 과거에 대한 기억이 아니라 현재의 해석이다'라고 생각하며, 올해의 5월을 마감하고자 합니다.
염홍철 국립한밭대 명예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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