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믄화人 칼럼] 그림 속 국수, 삶을 누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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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믄화人 칼럼] 그림 속 국수, 삶을 누르다

최정민 미술평론가

  • 승인 2025-07-16 17:07
  • 신문게재 2025-07-17 19면
  • 김지윤 기자김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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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민 평론가.
무더운 여름이 오면 사람들은 자연스레 시원한 냉면이나 메밀국수를 떠올린다. 국수는 언제부턴가 축하의 자리에 빠지지 않는 음식이 되었다. 누군가 결혼을 앞두고 있다 하면 우리는 습관처럼 말한다. "국수 먹여줘야지." 이 말엔 단순한 농담을 넘어선 축원의 감정과 오랜 관습이 담겨 있다. 축복받을 일에는 면발처럼 길고 부드러운 인연이 함께해야 한다는 믿음. 이 믿음은 오래된 의례와 공동체의 식탁에서 비롯되었다.

조선 후기 홍석모는 『동국세시기』에 '혼례 뒤 친척과 이웃이 국수를 나눴다'고 적었다. 이 한 문장은 국수가 조선 사회에서 단순한 한 끼 식사가 아니라, 인연을 잇는 음식이자 의례의 일부였음을 보여준다. 낯선 두 집안이 하나의 식탁에 모여 국수를 나눈다는 것은, 정과 인사를 공유하는 행위였다. 끓는 물에 데쳐 낸 면발을 함께 먹는 그 자리는 말보다 앞선 환대였고, 긴 인연을 부드럽게 이어가려는 염원이 담긴 장면이었다.

'국수 먹으러 가자'는 말이 오늘날까지 혼례의 은유로 남아 있는 것도, 그 오래된 감각이 여전히 일상 깊숙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국수는 고려시대부터 존재했고, 조선시대에는 다양한 조리법과 도구가 등장하며 노동과 기술이 축적된 음식으로 발전했다. 특히 국수를 힘으로 뽑아내는 '국수틀'은 조선 중기 이후 본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이 풍경은 19세기 말 직업화가 김준근의 풍속화 <국수 누르는 모양>에 생생히 담겨 있다.

그림 속에는 국수를 만들기 위한 세 인물이 등장한다. 한 남성은 사다리 위에 거꾸로 올라타 천장에 묶인 끈을 잡고 몸을 당기며 지렛대를 눌러 국수틀을 작동시킨다. 틀 아래의 솥에서는 면발이 압착되어 끓는 물 속으로 곧장 흘러든다. 다른 남성은 긴 막대로 면이 엉키지 않도록 솥 안을 저으며, 끓는 흐름을 감각으로 제어하고 있다. 방 안에는 이 장면을 바라보는 한 여성이 등장한다. 일에는 직접 참여하지 않지만, 삶아진 국수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화면에 배치된다. 기다림, 노동, 환대. 그 모두가 하나의 장면에 녹아 있다.

김준근은 이 익숙한 노동을 낯설게 드러내며, 국수 한 그릇이 만들어지기까지 사람들이 나누는 역할과 손의 기술을 그려냈다. 힘을 실어야 하는 사람, 국수를 젓는 사람, 그리고 그것을 기다리는 사람. 각기 다른 역할을 수행하는 이들 모두가 하나의 장면을 이루는 공동체의 몸짓이다. 단순한 선묘로 그려진 인물들은 오히려 행위의 무게를 강조한다.

국수는 단순한 식사가 아니었다. 몸과 시간, 질서가 얽혀 있는 하나의 사회적 풍경이었다. 우리가 분식집에서 가볍게 먹는 국수와 달리, 조선시대의 국수는 아무 날에나 오르지 않는 음식이었다. 안동 지방 양반가에서는 혼례, 회갑, 귀한 손님 방문처럼 특별한 날에만 국수를 내놓았다. 그 시절의 국수는, 뽑아내고 건지는 정성이 담긴, 마음의 음식이었다.

1930년대에 이르러 기계식 제면기가 도입되며 손으로 면을 짜내던 방식은 점차 자취를 감추었다. 지금은 대부분 공장에서 만들어진 국수를 손쉽게 끓여 먹지만, 여전히 여름날 우리는 면발을 찾는다.

국수는 '시원한 음식'이기 이전에, 계절을 이겨내려는 인간의 기술과 감각의 산물이었다. 뜨거운 솥 앞에서 온몸으로 면을 뽑아내던 시간, 축복의 자리에 조심스레 건네던 한 그릇의 정성. 그 모든 장면이 쌓여 지금의 국수가 되었다. 오늘 우리가 무심코 넘기는 그 면발에는, 여름을 견디고 관계를 잇고자 했던 사람들의 노동과 질서가 얽혀 있다. 조선시대 국수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몸을 움직이고 도구를 작동시키며 공동체의 질서를 재현하는 행위였다. 그 한 그릇의 풍경은, 의례와 기술, 노동과 환대가 교차한 생활의 역사적 단면으로 남는다.

최정민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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