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칼럼] 우주에서 만나는 두 가지 혁신: 디스럽션을 넘어 확장으로

  • 오피니언
  • 사이언스칼럼

[사이언스칼럼] 우주에서 만나는 두 가지 혁신: 디스럽션을 넘어 확장으로

박정호 한국항공우주연구원 기술사업화실장

  • 승인 2025-08-28 17:05
  • 신문게재 2025-08-29 18면
  • 임효인 기자임효인 기자
clip20250828094638
박정호 한국항공우주연구원 기술사업화실장
혁신을 말할 때 우리는 종종 "무너뜨리고 다시 세운다"는 장면을 떠올린다. 경제학자 슘페터는 자본주의가 스스로를 새롭게 만들 때, 익숙한 방식과 산업이 주기적으로 자리를 내어주는 현상을 핵심 동력으로 보았다. 오래된 기술과 조직이 옮겨 앉는 빈자리에 새로운 제품과 기업이 나타나고, 그 과정이 성장의 엔진이 된다는 창조적 파괴 이론이다. 이 설명은 오늘의 우주산업을 이해하는 데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혁신이 기존의 기술이나 산업을 무너뜨려야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김위찬과 르네 마보안은 '비욘드 디스럽션'(Beyond Disruption)에서 기존의 산업이나 경제를 무너뜨리는 대신 새로운 쓰임새와 고객 가치를 스스로 만들어 성장하는 비파괴적 창조를 강조한다. 이미 경쟁이 치열한 영역을 정면 돌파하기보다, 아직 정의되지 않은 수요를 찾아 사회 전체의 효용을 늘리는 방식이다. 이 접근은 승자와 패자를 갈라놓지 않고, 제도와 일자리의 충격을 줄인다는 점에서 현실적이다. 중요한 것은 두 관점이 서로를 배제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급진적 변화가 필요한 곳에서는 기존 패러다임을 재구성하는 힘이 필요하고, 공공성이 큰 영역이나 점진적 혁신이 필요한 분야에서는 기존 생태계를 보완하며 외연을 넓히는 방식이 더 적합하다.

우주 분야는 이 두 방식이 함께 작동하기 좋은 무대다. 최근 재사용 발사체 기술의 성숙으로 발사 비용과 주기가 크게 개선됐고, 초대형 저궤도 군집위성의 보급은 통신과 지구관측 산업의 지형을 바꾸고 있다. 이런 변화는 산업의 경제성에 대한 가정을 새로 쓰게 만드는 전형적인 패러다임 전환이다. 우주에 대한 접근이 쉬워지면 기업들은 과거에 시도하기 어려웠던 서비스를 더 쉽게 공급할 수 있다. 하지만 충격도 뒤따른다. 단발성 또는 소량 생산을 전제로 한 공급망과 규제, 인력 구조는 재정비가 필요하고 과도기의 비용과 혼란은 사회가 함께 감당해야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 우주는 기존 산업을 해치지 않고 가치를 보태는 길이 넓다. 위성으로 수집한 정보를 가공해 농업·재난·해양·도시 관리 등에 쓰도록 돕는 서비스는 기존 서비스의 대체재라기보다 의사결정의 질을 끌어올리는 보완재에 가깝다. 작황과 가뭄, 산불 위험을 예측하여 농업 투입을 줄이고 수확을 높이는 일, 항만과 항로의 혼잡을 예측해 물류를 매끄럽게 만드는 일, 메탄 배출과 산림 변화를 추적해 지속가능성을 돕는 일은 모두 그 예다. 또한 보험 분야에서는 위성 정보를 이용해 재해 손실 규모를 실시간 파악해 신속하게 지급 여부를 판단하는 지수형 상품이 나타나고, 교육과 문화 영역에서는 큐브샛 제작, 시민 참여 관측, 과학관·가상현실 체험 같은 프로그램이 미래 인력과 수요를 키울 수 있다. 우주상황인식, 충돌 경보, 궤도상 수명 연장·우주 쓰레기 제거 같은 서비스는 경제 전체의 파이를 성장시키는 비파과적 창조의 전형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우주에서의 비파괴적 창조는 새로운 경험과 더 좋은 판단을 상품으로 만드는 일에 가깝다. 반면 재사용 발사체나 대규모 군집위성 같은 기술은 비용·성능 등에 있어서 급진 혁신을 통해서 기존 패러다임을 바꾸면서 시장을 빠르게 변혁시킨다. 즉 하나는 속도를, 다른 하나는 안정과 수용성을 보탠다. 실제 전략은 둘을 나란히 두는 데서 힘을 얻는다. 발사체·위성·탑재체와 같은 핵심 업스트림 영역에서는 과감한 도전으로 기술의 경계를 넓히고, 데이터·소프트웨어·교육·관광·안전 같은 다운스트림 영역에서는 충돌을 최소화하며 다양한 파생시장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한편, 파괴적 혁신이 빠르게 확산하려면 발사 인프라 조성, 주파수 및 관련 표준 정비, 인증제도, 우주교통 관리 규정 등도 선제적으로 준비할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테스트베드 사업과 공공조달 등을 통해 초기 수요를 견인한다면 새로운 혁신 기술과 서비스가 더 안전하게 뿌리내릴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비파괴적 창조가 활발해지려면 공개 데이터의 품질과 접근성을 높이고, 민간이 공공 목적의 데이터를 활용해 다양한 문제를 풀 수 있도록 절차와 책임을 명확히 해줄 필요가 있다. 결국 질문은 "파괴냐 비파괴냐"가 아니다. 어디에서 패러다임 전환의 속도를 높이고, 어디에서 사회적 마찰을 낮출 것인가의 문제다. 우주경제는 복잡한 발사체 및 위성 등의 시스템과 그 산물인 정교한 데이터의 활용이 서로의 성장을 견인하는 선순환이 작동하는 영역이다. 속도를 내야 할 때는 과감하게, 충격을 흡수해야 할 때는 섬세하게 두 가지 방법을 함께 설계할 때, 우리는 더 멀리 그리고 더 오래 갈 수 있다. 이것이 오늘의 우주산업이 선택해야 할 균형이며 내일의 성장을 위한 현실적인 길이 될 것이다. 박정호 한국항공우주연구원 기술사업화실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의료원 ‘어떻게 지을까’… 시공사 공고 앞두고 주민·의료계 의견 듣는다
  2. 대전 여야, 2차 중앙행정기관 세종 이전 놓고 '공방전'
  3. 대전교도소·대전의사회 협력, 수용자 대면진료 ‘메디컬센터’ 전국 첫 개설
  4. 32사단, 대둔산에서 6·25 전사자 유해발굴 착수
  5. 90년 역사 품은 테미오래, 시민과 함께하는 문화예술공간으로
  1. 대전 서구 '구청장 직통문자' 100일…민원 999건 접수
  2. 김현태 제13대 충남테크노파크 원장, 임명장 수여
  3. 탈석탄 충남, 신재생 전환 이익 절반은 역외로
  4. [세상보기] 각자도생의 시대
  5. 대전 금연구역 5만여 곳에 지도원 35명… 단속 한계에 정책 실효성 의문

헤드라인 뉴스


대전교도소 수용자 대면진료 ‘메디컬센터’ 전국 첫 개설

대전교도소 수용자 대면진료 ‘메디컬센터’ 전국 첫 개설

대전교도소가 전국 교정시설 중 처음으로 스마트 메디컬센터를 구축하고 대전시의사회와 협력해 수용자에게 가장 필요한 안과와 이비인후과 그리고 신경과에 대한 시설 내 전문진료를 시작한다. 2005년 교정시설의 원격진료가 허용된 이후 수용자 의료처우 개선을 위한 가장 혁신적인 도전으로 여겨져 주목받고 있다. 법무부는 22일 유성구에 위치한 대전교도소에서 스마트 메디컬센터 개소식을 갖고 새롭게 조성하고 확보한 시설과 장비를 소개했다. 이날 법무부 교정본부 권창모 의료과장과 이동철 의료 교정관이 참석하고, 김재술 대전교도소장 주관으로 임정혁..

세종 `장애인 학대사건` 무혐의 뒤집혀… 시설 직원 구속 송치
세종 '장애인 학대사건' 무혐의 뒤집혀… 시설 직원 구속 송치

세종시 장애인 거주시설 학대사건의 가해자로 지목된 시설 직원이 구속 송치됐다. 경찰이 초기 수사 과정의 미흡함을 인정하며 재수사 돌입한 지 5개월 만이다. 세종경찰청 강력마약범죄수사대는 시설 직원 A(30대) 씨를 장애인복지법 위반 혐의로 지난 13일 대전지방공소청에 구속 송치했다고 23일 밝혔다. 사건 발생 1년여 만인 지난 5월 재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시설 내 목격자 진술과 A 씨의 근무 시간 등을 토대로 혐의를 입증할 만한 정황을 확보하고 지난 7일 구속영장을 발부받았다. 앞서 경찰은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A 씨에게 무혐의 처분..

고교 이주배경학생 급증하는데…대전·세종 한국어학급 `0`
고교 이주배경학생 급증하는데…대전·세종 한국어학급 '0'

대전과 세종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이주배경학생이 797명에 달하지만, 이들을 위한 한국어학급은 한 곳도 운영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충남과 충북이 각각 한국어학급을 운영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대전·세종은 고교 단계의 한국어 교육 기반이 부족해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2일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한병도 의원이 교육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6년 기준 대전지역 고교 이주배경학생은 655명, 세종은 142명으로 집계됐다. 두 지역의 학생 수를 합하면 797명이지만, 고등학교 한국어학급은 모두 운영되..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수험생들의 꿈을 향한 섬세한 붓 터치 수험생들의 꿈을 향한 섬세한 붓 터치

  • 2026 대전 장애인 취·창업박람회 성료 2026 대전 장애인 취·창업박람회 성료

  • 대전 3대 하천 가을 꽃단지 ‘인기’ 대전 3대 하천 가을 꽃단지 ‘인기’

  • 대전경찰청, 제81주년 경찰의 날 기념식 개최 대전경찰청, 제81주년 경찰의 날 기념식 개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