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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균 소장 |
중국 고전 『안자춘추』에 '날씨 춘운 줄 모른다.'는 의미의 '부지천한(不知天寒)'이란 말이 있다. 한겨울 엄동설한에 북풍이 몰아치고 함박눈이 며칠 동안이나 계속 내리면서 그칠 줄 몰랐다. 제나라 경공 때의 일이다. 백성들은 추위와 굶주림에 울부짖으며 여기저기서 얼어 죽고 굶어 죽은 시체가 나뒹굴었다. 그럼에도 경공은 가볍고 포근한 여우털 옷을 두르고 따뜻한 누각에 앉아 춤과 노래를 즐기는 일에 빠져 있었다. 연회 차림 상에는 온갖 산해진미와 향기로운 술이 가득했다. 마침 온 몸에 흰 눈을 뒤집어쓰고 들어오는 안영을 보고는 경공이 말했다. "올해는 참으로 이상하도다. 큰 눈이 며칠씩이나 계속 내리는데도 조금도 추운 줄 모르겠노라." 그러자 안영은 한숨을 크게 내쉬며 말했다. "옛날에 어진 왕들은 배가 부르면 백성이 주릴까 생각하고, 따뜻한 옷을 입으면 백성이 추울까 생각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경공의 호의호식을 은근히 빗댄 말이다.
전하는 말에 "내가 배부르면 종이 배고픈 줄 모른다."는 말이 있다. 환경이 다르고 신분과 처지가 다르면 상대방의 고충을 모른다는 뜻이다. 기득권을 누리는 사람들은 서민들의 고충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사회적 불안정은 차이에 기인하지만, 서로의 고충을 모를 때 갈등의 골은 더 깊어진다. 그래서 예로부터 지도자는 춥고 굶주린 백성들 가까이로 다가가서 그들과 고락을 함께 했다.
어느 해 제나라에 심한 가뭄이 들었다. 논바닥은 거북등처럼 갈라지고 우물은 마르고 풀과 나무가 말라 죽어갔다. 보다 못한 경공이 산신령께 기우제를 지내려 하자 안영이 기우제로 비를 오게 할 수 있다면 벌써 비가 왔을 것이라며 반대했다. 푸석푸석 말라가는 산 속에 사는 산신령도 물이 필요했을 텐데 기우제를 지낸다고 비가 오겠냐는 합리적 판단이다.
실망한 경공이 이번엔 용왕에게 제사를 지내려 하자 또 안영이 말렸다. 용왕은 강에 살고 강도 말랐는데, 그에게 제사해서 비가 오겠냐는 것이다. 대신 백성과 고락을 같이 하는 것이야말로 어려움을 극복하는 해결책이라고 건의했다. 경공은 안영의 말대로 궁궐 밖으로 나가 백성과 고락을 같이했다. 그러자 며칠 뒤 비가 내렸다.
사회 안정의 비결이 무엇인가를 알려주는 고사다. 기우제는 흉흉한 민심을 달래고자하는 일종의 몸부림에 지나지 않다. 신비주의에 문제를 맡기는 것은 부질없는 허황된 생각으로 참된 문제 해결방식은 아니다. 오히려 함께 고통을 나누며 뜻을 같이 한다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교훈적 이야기다. 민심 안정의 방법은 함께 뜻과 행동을 같이하는데 있다. 한쪽에선 굶주리고 목말라 하는데, 한쪽에선 배불리 먹고 마신다면 문제는 커진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 함께 아파하고 나누는 것, 거기에 화해와 안정이 있다.
세계제국 로마와 원나라가 망한 것은 국력이 약해서가 아니다. A.토인비는 '역사의 연구'에서 이 문제를 다뤘다. 제국이 무너질 때 그들의 군사력은 여전히 최고를 자랑했다. 망국의 원인은 불평등, 양극화가 심화된 탓이다. 중간 계층은 사라지고 특권 귀족과 빈민 노예층만 남았다. 중간의 완충지대가 사라지자 양자의 갈등은 증폭됐다. 결국 제국은 외부의 적에 의한 충격보다 내부 분란에 의한 충격이 심했다. 분란을 감내하지 못하고 나라가 망한 것이다.
오늘날 한국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완충지대에 해당하는 경제적 중산층과 정치 사회적 중도층의 목소리가 묻히는데 있다. 사회 경제적 양극화의 심화는 우리 사회의 앞날을 어둡게 한다. 중간지대를 유지할 중산층, 사회적 균형을 갖춘 중도 층의 소리가 절실히 필요한 때다.
/김덕균 중국산동사범대학 한국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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