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스러지는 그들

  • 오피니언
  • 편집국에서

[편집국에서] 스러지는 그들

김지윤 정치행정부 기자

  • 승인 2025-08-31 16:20
  • 신문게재 2025-09-01 22면
  • 김지윤 기자김지윤 기자
쥬니
김지윤 기자.
지난주 볼일을 보기 위해 동네 행정센터를 찾은 뒤부터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금요일 오후 개인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연차를 쓴 직장인이 몰리며 행정센터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폐기물 스티커 발급을 위해 방문한 나는 평소보다 2~3배 많은 시간 내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던 중이다.



이곳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 한 어르신이 보기에도 잔뜩 화난 얼굴을 하곤 민원인을 상대하는 한 공무원에게 다가갔다.

자신의 차례가 아님에도 응대받고 있던 민원인을 밀치며 자신의 업무를 먼저 봐달라는 항의를 위해서다.



"나는 다리도 아프고 바쁜 사람이야. 서류 하나만 떼면 되니까 나부터 해줘"라며 몽니를 부리는 어르신의 모습은 주변인들의 미간을 찌푸리게 했다.

담당 공무원은 메뉴얼 대로 행동했을 뿐이다. "선생님, 차례를 기다리셔야 해요. 혹시 뒤에 있는 기계에서 뽑을 수 있는 서류라면 기계를 통해 해보시는 건 어떠세요?"라고 입을 열자 내가 있던 곳은 고성과 욕설로 가득 찼다.

자신을 무시한다며 서슴없이 내뱉는 비하 발언과 공무원을 향한 삿대질은 3분이 넘게 이어졌다. 결국, 내부에 있던 남성 직원들이 어르신을 말리고 나서야 진정되는 듯했다.

나는 잊지 못한다. 해탈한 듯한 공무원의 표정을.

어느 한 구청 비서실에서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인터뷰를 위해 비서실에서 대기 중이던 어느 날 한 비서 책상에 놓인 사내 전화기가 울렸다.

전화를 건 상대의 목소리가 얼마나 큰지 떨어져 앉은 나에게도 들릴 정도였다. 무엇에 분노한 것인지 다짜고짜 욕설을 퍼붓기 시작한 상대방의 태도에 여자 비서는 손을 덜덜 떨었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남성 직원이 전화를 대신 받아 "녹음되고 있어요. 계속 욕하시면 큰일 납니다"라고 하자 전화가 뚝 끊겼다.

그러나 상대방은 '녹음'이라는 말에 기분이 나빴는지 내가 대기 중이던 10분 동안 7차례나 계속 항의 전화를 했다.

내가 본 상황들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공무원들을 향한 악성 민원은 도를 넘고 있다.

이로 인해 이미 수많은 안타까운 죽음이 되풀이되고 있지만, 악성 민원인들에게는 다른 세상 이야기인 듯 공무원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지 않고 있다.

악성 민원으로부터 정부는 대응책을 내놓기도 했다.

지난해 악성 민원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한 공무원의 사연이 전해지자 행정안전부는 악성 민원 방지 및 민원공무원 보호 강화 대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대전을 포함한 일부 지자체들도 공무원들을 지키고자 홈페이지 내 이름을 지우는 등 대책에 나섰다.

그러나 무엇이 문제일까. 여전히 악성 민원은 끊이지 않고 있고 공무원들의 고통을 가중돼고 있다.

쏟아지는 민원에 공무원들은 우울증 등 정신질환에 시달리고 있다. 업무상 우울·적응 장애 등 정신질환을 인정받은 공무원 수는 274명(2022년 기준)이다. 업무상 이유에 따른 공무원 자살 순직 신청(2022년 기준)도 49건(승인 22건)으로, 2021년 26건(승인 10건)과 견줘 약 2배 증가했다.

악성 민원에 공무원은 스러지고 있다. 이제는 더는 손 놓지 않아야 한다. 정부는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실태를 파악, 민원처리 담당자의 보호를 강화해야 한다. 가해자가 돼 버린 민원인들을 향한 과태료 조항 명시도 필요한 시점이다. 김지윤 정치행정부 기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진보교육감 단일화기구 시민회의 "맹수석·정상신 단일화 방해 즉각 중단하라"
  2. “예술 감수성에 AI를 입히다” 목원대 ‘실감형 콘텐츠 혁신 허브’로 뛴다
  3. 충남대병원장 임용후보 조강희·복수경 교수 추천…재활의학과 강세
  4. 봄철 화재 늘어나는 시기… 소방 특사경·경찰 수사 범위 논의 필요성
  5. 베스트셀러 윤준호 작가, 북콘서트 개최…대전서 '성황'
  1. 여상수 목원대 AISW융합대학장 “AI 시대엔 기술 이해하는 예술가 필요”
  2. 충남도, AI기반 연구 인프라 구축 청신호
  3. [르포] 창립 50주년 기계연, 일상 작업 학습한 AI 로봇이 심부름·분리수거 척척
  4. 대전 선화동 어린이보호구역서 음주운전 도주 피의자, 검찰 송치
  5. [내방] 오재덕 대전지방보훈청장

헤드라인 뉴스


이 대통령 “충남·북, 대전 통합 경제권·행정체계 고민해봐야”

이 대통령 “충남·북, 대전 통합 경제권·행정체계 고민해봐야”

이재명 대통령은 13일 “충남·북, 대전까지 통합해서 하나의 거대한 경제권, 행정체계를 만들어볼 거냐는 한번 고민해보셔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후 충북 청주 오스코에서 ‘첨단·바이오 산업으로 도약하는 대한민국의 중심, 충북’이라는 주제로 열린 ‘충북의 마음을 듣다’에서 충남과 대전의 행정통합이 “급정거를 한 상태”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 대통령은 “도시들이 경쟁력을 올리려면 광역화가 시대적 추세가 됐다”며 “충청도 지금 대전, 세종, 충남·북으로 많이 나누어져 있는데, 지역 중심의 경쟁력을 강화하려면 지역연합..

`세종지방법원` 건립 박차, 2031년 정상 개원
'세종지방법원' 건립 박차, 2031년 정상 개원

세종지방법원 건립 사업이 사업계획 적정성 검토 단계를 거치면서, 2031년 3월 정상 개원 궤도에 진입한다. 더불어민주당 강준현 국회의원(세종시을·국회 정무위원회 간사)은 세종지방법원 건립을 위한 사업계획 적정성 검토가 마무리되고, 최종 사업 규모와 사업비 확정 소식을 전해왔다. 향후 설계와 공사 등 후속 절차가 순차적으로 추진될 예정이란 점도 설명했다. 지방법원 건립 사업은 오는 5월 설계공모 공고를 시작으로 2026년 9월 기본설계 및 실시설계 착수, 2028년 하반기 공사, 2030년 하반기 준공 로드맵으로 나아간다. 이후 준..

지난해 대전 고교생 한 명당 월평균 사교육비 76만 원 썼다
지난해 대전 고교생 한 명당 월평균 사교육비 76만 원 썼다

지난해 대전 지역 초중고 학생 사교육비를 조사한 결과, 학원 수강 등 사교육에 참여하는 고교생 한 명당 월평균 76만 원을 지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종은 중학생 사교육비가 전국 평균보다 높았으며, 사교육 참여율도 서울권 다음으로 가장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전국적으로 사교육 참여율은 전년보다 감소했으나, 참여 학생들의 지출 비용은 증가해 사교육비 부담만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12일 교육부와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2025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충청권 4개 시도 사교육 참여 학생 1인당 월평균 지출비용은 대..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석유 최고가격제 시행에 떨어진 기름값 석유 최고가격제 시행에 떨어진 기름값

  • 반갑다 야구야! 반갑다 야구야!

  • 내가 최강소방관 내가 최강소방관

  • ‘저희 동아리가 만든 자동차랍니다’ ‘저희 동아리가 만든 자동차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