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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윤 기자. |
금요일 오후 개인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연차를 쓴 직장인이 몰리며 행정센터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폐기물 스티커 발급을 위해 방문한 나는 평소보다 2~3배 많은 시간 내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던 중이다.
이곳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 한 어르신이 보기에도 잔뜩 화난 얼굴을 하곤 민원인을 상대하는 한 공무원에게 다가갔다.
자신의 차례가 아님에도 응대받고 있던 민원인을 밀치며 자신의 업무를 먼저 봐달라는 항의를 위해서다.
"나는 다리도 아프고 바쁜 사람이야. 서류 하나만 떼면 되니까 나부터 해줘"라며 몽니를 부리는 어르신의 모습은 주변인들의 미간을 찌푸리게 했다.
담당 공무원은 메뉴얼 대로 행동했을 뿐이다. "선생님, 차례를 기다리셔야 해요. 혹시 뒤에 있는 기계에서 뽑을 수 있는 서류라면 기계를 통해 해보시는 건 어떠세요?"라고 입을 열자 내가 있던 곳은 고성과 욕설로 가득 찼다.
자신을 무시한다며 서슴없이 내뱉는 비하 발언과 공무원을 향한 삿대질은 3분이 넘게 이어졌다. 결국, 내부에 있던 남성 직원들이 어르신을 말리고 나서야 진정되는 듯했다.
나는 잊지 못한다. 해탈한 듯한 공무원의 표정을.
어느 한 구청 비서실에서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인터뷰를 위해 비서실에서 대기 중이던 어느 날 한 비서 책상에 놓인 사내 전화기가 울렸다.
전화를 건 상대의 목소리가 얼마나 큰지 떨어져 앉은 나에게도 들릴 정도였다. 무엇에 분노한 것인지 다짜고짜 욕설을 퍼붓기 시작한 상대방의 태도에 여자 비서는 손을 덜덜 떨었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남성 직원이 전화를 대신 받아 "녹음되고 있어요. 계속 욕하시면 큰일 납니다"라고 하자 전화가 뚝 끊겼다.
그러나 상대방은 '녹음'이라는 말에 기분이 나빴는지 내가 대기 중이던 10분 동안 7차례나 계속 항의 전화를 했다.
내가 본 상황들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공무원들을 향한 악성 민원은 도를 넘고 있다.
이로 인해 이미 수많은 안타까운 죽음이 되풀이되고 있지만, 악성 민원인들에게는 다른 세상 이야기인 듯 공무원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지 않고 있다.
악성 민원으로부터 정부는 대응책을 내놓기도 했다.
지난해 악성 민원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한 공무원의 사연이 전해지자 행정안전부는 악성 민원 방지 및 민원공무원 보호 강화 대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대전을 포함한 일부 지자체들도 공무원들을 지키고자 홈페이지 내 이름을 지우는 등 대책에 나섰다.
그러나 무엇이 문제일까. 여전히 악성 민원은 끊이지 않고 있고 공무원들의 고통을 가중돼고 있다.
쏟아지는 민원에 공무원들은 우울증 등 정신질환에 시달리고 있다. 업무상 우울·적응 장애 등 정신질환을 인정받은 공무원 수는 274명(2022년 기준)이다. 업무상 이유에 따른 공무원 자살 순직 신청(2022년 기준)도 49건(승인 22건)으로, 2021년 26건(승인 10건)과 견줘 약 2배 증가했다.
악성 민원에 공무원은 스러지고 있다. 이제는 더는 손 놓지 않아야 한다. 정부는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실태를 파악, 민원처리 담당자의 보호를 강화해야 한다. 가해자가 돼 버린 민원인들을 향한 과태료 조항 명시도 필요한 시점이다. 김지윤 정치행정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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