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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현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책임연구원 |
단순히 경제적 문제나 정책적 이견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는 뉴욕대학교의 오이서먼(Oyserman) 교수가 제시한 '정체성 기반 동기 이론'에서 사회 갈등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이론은 사람들이 자신이 속한 집단(예: 지역, 정치적 성향, 성별, 직업)의 정체성을 내면화하고, 그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행동하려는 강력한 동기를 갖는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자신이 '환경 운동가'라는 정체성을 가진 사람은 환경 보호와 관련된 행동을 할 때 더 큰 만족감과 동기를 느끼는 식이다. 이처럼 정체성은 단순한 소속감을 넘어 우리의 행동과 선택을 결정하는 강력한 동인으로 작용한다.
문제는 이 집단 정체성이 다른 집단과의 관계에서 '경쟁'의 양상을 띠기 시작하면서부터 발생한다. 집단 정체성은 개인의 자기 존중감과 깊이 연결되어 있어, 자신이 속한 집단이 비판받거나 위협받는다고 느낄 때 사람들은 이를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고 방어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이는 자연스럽게 자신이 속한 집단, 즉 '내집단'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그 구성원들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향으로 이어지는 반면, 자신과 다른 집단, 즉 '외집단'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적대감을 드러내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정치적 영역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진영 간의 대립이 격화될수록, 상대방을 '우리와 다른' 외집단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화된다. 상대 진영의 정책이나 인물에 대한 비판은 단순히 정책적 검토를 넘어, 상대방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혐오와 공격으로 변질되곤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내집단 내의 응집력은 더욱 강화되지만, 동시에 외집단에 대한 적대감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된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나는 ~가 아니다'라는 부정적 정체성의 확산이다. 이는 특정 집단에 대한 반감과 배타성을 기반으로 형성되는 정체성으로, 쉽게 혐오라는 감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 혐오의 대상이 되는 집단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조장하며, 이는 물리적 충돌이나 폭력적인 혐오 범죄로 이어질 위험이 매우 크다. 이러한 부정적 정체성은 사회를 분열시키고, 건강한 논의의 장을 폐쇄하며, 결국 민주주의 자체를 위협하는 독소가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깊어진 갈등의 늪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정체성 기반 동기 이론'은 갈등 해소를 위한 몇 가지 중요한 통찰을 제시한다.
첫째, 공통의 상위 정체성을 활성화하는 방법이다. 지역, 정치적 성향과 같이 사람들을 나누는 낮은 차원의 정체성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더 높은 차원의 정체성을 강조하고 공유함으로써 갈등을 이겨내는 방식이다.
둘째, 외집단과의 긍정적 소통 및 경험 공유이다. 갈등이 깊은 집단들이 서로에게 마음의 벽을 쌓는 이유는 직접적인 교류와 긍정적인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정치적 성향을 지닌 시민들이 함께 모여 지역 환경 개선이나 문화유산 보존과 같은 공통의 의제를 논의하고 실천하는 '시민 커뮤니티 프로젝트'를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것은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상대방을 더는 '적'이 아닌,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동반자'로 인식하게 될 것이다.
셋째, 상대방의 정체성을 존중하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우리의 정체성은 단순히 이성적 판단과 면밀한 분석을 통해 형성되는 경우가 의외로 적다. 종종 우리가 사는 지역, 가까운 주변 사람들과의 동질성 차원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곤 한다. 따라서 상대방의 정체성을 단지 틀린 것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그들이 그러한 정체성을 갖게 된 배경과 그 의미를 이해하려는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서로에게 경청하고, 다름을 인정하는 자세야말로 갈등을 해결하는 근본적인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김성현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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