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사회적 갈등

  • 오피니언
  • 프리즘

[프리즘] 사회적 갈등

김성현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책임연구원

  • 승인 2025-09-09 15:47
  • 신문게재 2025-09-10 19면
  • 방원기 기자방원기 기자
김성현 프리즘
김성현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책임연구원
오늘날 대한민국은 전례 없는 정치적 양극화와 사회적 갈등에 직면해 있다. 지난 2024년 12월 3일, 대통령의 계엄 선포 사태는 이러한 갈등이 얼마나 극단적인 형태로 표출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비록 현재는 종료되었지만,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그리고 사회적 상처 치유라는 험난한 과정에서 또 다른 갈등의 불씨를 남기고 있다. 과연 우리 사회의 이 깊고 오래된 갈등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단순히 경제적 문제나 정책적 이견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는 뉴욕대학교의 오이서먼(Oyserman) 교수가 제시한 '정체성 기반 동기 이론'에서 사회 갈등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이론은 사람들이 자신이 속한 집단(예: 지역, 정치적 성향, 성별, 직업)의 정체성을 내면화하고, 그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행동하려는 강력한 동기를 갖는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자신이 '환경 운동가'라는 정체성을 가진 사람은 환경 보호와 관련된 행동을 할 때 더 큰 만족감과 동기를 느끼는 식이다. 이처럼 정체성은 단순한 소속감을 넘어 우리의 행동과 선택을 결정하는 강력한 동인으로 작용한다.

문제는 이 집단 정체성이 다른 집단과의 관계에서 '경쟁'의 양상을 띠기 시작하면서부터 발생한다. 집단 정체성은 개인의 자기 존중감과 깊이 연결되어 있어, 자신이 속한 집단이 비판받거나 위협받는다고 느낄 때 사람들은 이를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고 방어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이는 자연스럽게 자신이 속한 집단, 즉 '내집단'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그 구성원들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향으로 이어지는 반면, 자신과 다른 집단, 즉 '외집단'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적대감을 드러내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정치적 영역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진영 간의 대립이 격화될수록, 상대방을 '우리와 다른' 외집단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화된다. 상대 진영의 정책이나 인물에 대한 비판은 단순히 정책적 검토를 넘어, 상대방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혐오와 공격으로 변질되곤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내집단 내의 응집력은 더욱 강화되지만, 동시에 외집단에 대한 적대감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된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나는 ~가 아니다'라는 부정적 정체성의 확산이다. 이는 특정 집단에 대한 반감과 배타성을 기반으로 형성되는 정체성으로, 쉽게 혐오라는 감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 혐오의 대상이 되는 집단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조장하며, 이는 물리적 충돌이나 폭력적인 혐오 범죄로 이어질 위험이 매우 크다. 이러한 부정적 정체성은 사회를 분열시키고, 건강한 논의의 장을 폐쇄하며, 결국 민주주의 자체를 위협하는 독소가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깊어진 갈등의 늪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정체성 기반 동기 이론'은 갈등 해소를 위한 몇 가지 중요한 통찰을 제시한다.

첫째, 공통의 상위 정체성을 활성화하는 방법이다. 지역, 정치적 성향과 같이 사람들을 나누는 낮은 차원의 정체성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더 높은 차원의 정체성을 강조하고 공유함으로써 갈등을 이겨내는 방식이다.

둘째, 외집단과의 긍정적 소통 및 경험 공유이다. 갈등이 깊은 집단들이 서로에게 마음의 벽을 쌓는 이유는 직접적인 교류와 긍정적인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정치적 성향을 지닌 시민들이 함께 모여 지역 환경 개선이나 문화유산 보존과 같은 공통의 의제를 논의하고 실천하는 '시민 커뮤니티 프로젝트'를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것은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상대방을 더는 '적'이 아닌,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동반자'로 인식하게 될 것이다.

셋째, 상대방의 정체성을 존중하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우리의 정체성은 단순히 이성적 판단과 면밀한 분석을 통해 형성되는 경우가 의외로 적다. 종종 우리가 사는 지역, 가까운 주변 사람들과의 동질성 차원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곤 한다. 따라서 상대방의 정체성을 단지 틀린 것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그들이 그러한 정체성을 갖게 된 배경과 그 의미를 이해하려는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서로에게 경청하고, 다름을 인정하는 자세야말로 갈등을 해결하는 근본적인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김성현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책임연구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1기 신도시 재건축 '판 깔렸지만'…못 웃는 지방 노후계획도시
  2. K-water 안전기동점검반 임명식...‘안전을 심다’
  3. 밀알복지관 가족힐링캠프 '함께라서 행보캠'
  4. 축산업의 미래, 가축분뇨 문제 해결에 달렸다
  5. 교정시설에서 동료 수형자 폭행 '실형'…기절시켜 깨우는 행위 반복
  1. 대전행복나눔무지개푸드마켓 1호점 공식 카카오톡 채널 개설
  2. 농산 부산물, 부가가치 창출...환경과 경제 살리는 동력
  3. 어촌서 재충전, '쉬어(漁)가요' 프로그램 참가자 모집
  4. 챗봇 '해수호봇', 해양안전 디지털 혁신 이끈다
  5. 정부 부동산 대책 지방 위한 추가대안 마련 시급

헤드라인 뉴스


정청래 국회연설 "내란청산은 정치보복이 아니다"

정청래 국회연설 "내란청산은 정치보복이 아니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9일 “남북이 다시 손잡는 핵심은 경제협력이고, 우리는 경제통일에 민생통일을 추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통일부가 2026년 남북협력기금으로 1조 25억원을 편성했다. 주목할 것은 경제협력사업 예산으로, 606억원에서 1789억원으로 세 배가량 증가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러면서 “개성공단과 같은 경제협력 사업의 재개를 위해 필요한 도로와 폐수 시설 같은 복구와 구축 사업 예산”이라며 “남북이 힘을 합치면 경제 규모도 커지고 일자리도 늘어나고, 동..

국내 증시 조정에도…충청권 상장사는 `선방`
국내 증시 조정에도…충청권 상장사는 '선방'

새 정부 출범 이후 가파른 상승세를 타던 국내 증시가 최근 조정 국면을 맞고 있지만, 충청권 상장사들은 비교적 선방하고 있다. 전체적인 시장의 침체 분위기 속 8월 한 달 간 충청권 상장법인의 시가총액 합계는 전월 대비 0.3%(4074억 원) 증가한 152조 3402억 원에 도달했다. 한국거래소 대전혁신성장센터가 9일 발표한 대전·충청지역 상장사 증시 동향에 따르면 8월 충청권 상장법인의 시가총액은 152조 3402억 원으로 전월(151조 9328억 원) 대비 0.3% 증가했다. 8월 한 달 동안 대전·세종·충남 지역의 시총은 근..

대전 공기업 임원 교체 `바람` 불까…대전관광공사 임원 교체 가닥
대전 공기업 임원 교체 '바람' 불까…대전관광공사 임원 교체 가닥

민선 8기 대전시 출범 이후 임명된 시 산하 공기업 임원이 속속 임기를 마치면서 연임과 교체의 '갈림길'에 놓였다. 이장우 시장의 임기가 1년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물갈이를 통한 조직 변화를 꾀할지, 연장으로 막바지 조직 안정화를 선택할지에 대한 관심이 쏠린다. 9일 대전시에 따르면 시 출자·출연 기관장은 시장과 임기를 같이 하기로 조례로 정했지만, 시 산하 공기업은 지방공기업법을 적용받아 이와 무관하다. 이에 민선 8기 출범 이후 임명된 시 산하 공기업 임원들의 3년 임기가 순차적으로 끝나고 있다. 대전관광공사는 임원 교체 분위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올바른 손씻기로 식중독 예방해요’ ‘올바른 손씻기로 식중독 예방해요’

  • 전통시장 화재안전 집중조사 전통시장 화재안전 집중조사

  • ‘한국의 情을 고향에 전하세요’ ‘한국의 情을 고향에 전하세요’

  • K-water 안전기동점검반 임명식...‘안전을 심다’ K-water 안전기동점검반 임명식...‘안전을 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