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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섭 교수 |
우리 지역 대학들은 오랫동안 수도권 중심의 구조 속에서 경쟁과 생존을 감내해왔다. 학생 수 감소, 재정 압박, 지역 산업과의 단절은 이제 익숙한 현실이 되었다. 그동안 교육부의 수많은 제도적 지원이 있었지만, 이름만 달랐을 뿐 본질은 '제도 중심의 혁신'이었다. 보고서와 지표는 쌓였지만, 정작 그 안에서 성장한 것은 행정의 효율이지 교육의 본질이 아니었다. 대학의 혁신은 제도를 만드는 데 있지 않다. 대학은 정책을 수행하는 기관이 아니라, 학생과 교수, 직원이 함께 성장하는 공동체여야 한다.
이번 글로컬대학 선정은 이러한 제도 중심의 혁신을 넘어, 고등교육이 진정으로 사람 중심의 변화를 향해 나아가는 첫 시점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단순히 또 하나의 정부사업이 아니라, 고등교육의 철학적 방향을 새롭게 세우는 출발점이다. 이는 정부가 제시한 '서울대 10개 만들기' 구상과도 맞닿아 있다. 서울대 수준의 대학을 10개 육성한다는 비전은 단순히 시설이나 재정 지원의 확충을 뜻하지 않는다. 각 지역의 대학이 자생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구성원의 변화와 열정이 지역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생태계를 만드는 것, 그것이 진정한 목표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글로컬대학 선정은 우리 지역이 그 거대한 변화의 축으로 서는 역사적 전환점이다.
충남대와 공주대는 서로 다른 전통과 강점을 지닌 국립대학이다. 충남대는 인문·사회·경상·법학·자연·공학·의학·약학·수의·간호·농업생명과학·생활과학·예술 등 다양한 학문이 균형 있게 공존하는 종합대학으로, 공주대는 교원양성과 실용학문, 현장 중심의 교육에서 깊은 뿌리를 갖고 있다. 두 대학의 만남은 단순한 규모의 결합이 아니라, 서로의 강점을 나누고 지역의 미래를 함께 설계하겠다는 상생의 약속이다. 더 나아가 이 통합은 두 대학만의 과제가 아니다. 지역의 다른 대학들이 함께 참여하고 협력하며, 교육·연구·문화의 영역에서 서로의 역량을 공유할 때 진정한 지역대학 혁신이 완성된다. 충남대와 공주대가 지역의 중심이 되어, 인근 대학들과 손을 맞잡고 함께 성장하며 가는 길이야말로 진정한 글로컬대학의 정신이다.
진정한 통합은 제도의 결합이 아니라 철학의 결합에서 시작된다. 교수 간의 신뢰, 직원 간의 존중, 학생 간의 연대가 만들어내는 공감의 힘이 있을 때 통합은 공동체의 재탄생으로 이어진다. 충남대와 공주대를 비롯한 지역의 대학, 연구기관, 기업, 지자체가 하나의 교육 생태계로 협력할 때, 대전·세종·충남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균형발전형 고등교육 모델로 성장할 것이다.
지역대학의 경쟁력은 단순한 취업률이나 지표에서 나오지 않는다. 교육의 경험이 학생의 자신감으로 이어지고, 배움이 개인의 내면을 단단히 세울 때 진정한 경쟁력이 생긴다. 수도권 대학의 강점은 지식의 질보다도 풍부한 문화적 자산과 사회적 네트워크가 학생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준다는 데 있다. 우리는 비록 그런 기반이 약하지만, 대신 지역의 문화와 예술, 산업과 공동체를 새롭게 엮어낼 여지가 더 크다. 대학이 지역의 문화공간을 개방하고, 예술·과학·기술이 어우러진 융합 프로그램을 확대하며, 학생들이 지역 안에서 세계를 경험할 수 있도록 제도적·문화적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러한 지원 속에서 비로소 잠자고 있던 '자신감의 DNA'가 깨어나고, 지역은 청년의 성장으로 다시 활력을 얻는다.
충남대-공주대의 통합 기반 글로컬대학 선정은 우리 지역이 다시 한 번 도약할 수 있는 기회이자 시험대다. 제도보다 사람, 경쟁보다 협력, 성과보다 철학이 앞서야 한다. 교수의 연구와 교육이 학생과 지역의 꿈을 향하고, 학생의 도전이 지역의 미래로 이어질 때, 대학은 지역사회의 신뢰를 얻게 된다.
이제 충남대와 공주대를 중심으로 지역의 모든 대학과 기관, 시민이 함께 참여하는 열린 교육 생태계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럴 때 이번 통합은 특정 대학의 성과가 아닌 지역 전체의 자부심으로 확장될 것이다. 이러한 철학과 공감이 담길 때, 그래야 진정으로 지역이 환영하는 미래이자,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새로운 대학의 시작으로 기억될 것이다.
임현섭 /충남대학교 응용생물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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