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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현섭 교수 |
하지만 지역사회가 불안해하는 이유는 통합 그 자체보다, 통합대학의 비전과 목표가 충분히 제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학이 어디로, 어떻게 발전할 것인가에 대한 철학과 그림이 보이지 않으니, 변화가 곧 상실로, 발전이 아닌 흡수로 비춰지는 것이다. 이제 통합은 행정 절차의 문제가 아니라 방향과 가치의 문제이며, 대학과 지역이 어떤 미래를 함께 설계하느냐에 따라 이번 시도의 의미가 달라질 것이다.
세계 곳곳에는 대학이 지역과 함께 성장하며 도시의 품격을 높인 사례가 많다. 대표적으로 미국 위스콘신대 매디슨(University of Wisconsin-Madison) 과 텍사스 A&M대학 컬리지스테이션(Texas A&M University, College Station) 은 대학이 지역사회를 성장시킨 모범적 모델로 손꼽힌다. 인구 10만 명 남짓의 작은 도시가 대학을 중심으로 산업·예술·문화·창업이 어우러지는 '지식과 혁신의 도시'로 발전했다. 대학의 연구와 문화가 지역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지역의 자원이 다시 대학의 성장을 뒷받침하는 선순환이 자리 잡은 것이다. 대학이 지역을 키운 것이 아니라, 서로의 강점을 살려 함께 성장하며, 더 큰 공동의 가치를 만들어 낸 사례다.
이들 대학은 지역의 역사와 문화, 산업을 조화롭게 엮어 하나의 교육문화권(Educational?Cultural Zone) 을 형성하였고, 그 결과 전 세계의 수많은 학생이 각 대학이 가진 고유한 교육 철학과 문화를 배우기 위해 찾아오고, 다시 세계 곳곳에서 인재로 성장해왔다. 이것이 바로 지역의 특성을 기반으로 한 차별화된 교육문화가 만들어내는 선순환 구조이다. 우리 역시 이러한 차별화된 '우리만의 교육문화 벨트'를 구축할 때, 젊은 인재들을 자연스럽게 끌어들이고 정주할 수 있는 새로운 교육 생태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대학은 교육 공급자의 관점이 아니라, 전국과 전 세계의 학생이라는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교육상품으로서의 경쟁력을 갖추어야 한다. 미래의 학생들은 더 이상 지역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이 성장할 수 있는 교육을 '상품'처럼 비교하며, 철학·경험·문화의 차이를 기준으로 대학을 선택한다. 따라서 우리 대학이 만들어가야 할 길은 단순한 표준화가 아니라, '우리 지역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차별화된 교육'이다. 지역의 역사, 문화, 과학기술, 예술, 그리고 시민의 삶이 어우러진 통합적 교육 경험이 곧 충남·세종·대전권 대학의 브랜드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철학이 구현될 때, 충남대학교와 공주대학교의 통합은 단순한 행정 조정이 아닌 대전·세종·충남을 아우르는 새로운 교육문화권의 창조로 나아갈 수 있다. 이 교육문화권은 어디서나 받을 수 있는 일률적이고 일반적인 교육이 아닌, 지역의 문화와 산업, 예술과 생활이 연결된 살아 있는 교육의 장이 되어야 한다. 학생들은 강의실을 벗어나 산업 현장에서 배우고, 예술가와 협업하며, 과학과 인문이 교차하는 현장에서 새로운 지식을 창조해야 한다.
특히 인문학적 깊이와 함께 현장 중심의 과학기술 교육이 결합될 때, 대학은 사고력과 실천력을 함께 키우는 새로운 교육 모델을 제시할 수 있다. 대전·세종·충남은 이미 풍부한 문화유산과 예술적 자산, 그리고 과학기술 인프라를 품고 있다. 이러한 기반 위에 융복합 교육이 더해질 때, 우리 지역은 기술과 산업뿐 아니라 문화와 철학이 공존하는 진정한 창의문화도시로 거듭날 것이다. 결국 인문학적 깊이와 과학기술의 현장성을 함께 갖춘 차별화된 교육문화권이 완성된다면, 우리 지역은 더 이상 '지방의 대학도시'가 아니라, 대한민국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창의문화 생태계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지역의 성장을 동반시켜, 지역의 소멸이 아닌 지역의 확장을 이끄는 새로운 계기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희망과 비전을 가진 대학만이 지역을 성장으로 이끌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것이다. 미국의 많은 대학들이 그랬듯, 대학이 지역의 미래를 설계하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때, 지역은 대학과 함께 더 크게 성장했다. 세계의 대학이 도시의 품격을 바꾸고 지역의 자부심을 키웠듯, 대학의 철학과 비전은 도시의 방향이 되고, 교육의 혁신은 지역의 도약이 된다.
충남대학교와 공주대학교도 마찬가지다. 이제 대학은 지역에 머무는 존재가 아니라, 지역을 더 크게 만드는 희망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지역민에게 미래를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함께 나아갈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줄 때, 지역은 대학의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비전을 가진 대학만이 지역의 신뢰를 얻고, 그 신뢰가 다시 대학을 성장시키는 선순환을 만든다. 그때 비로소 이번 통합은 행정의 결과가 아닌, 지역과 대학이 함께 꿈꾸는 희망의 시작으로 완성될 것이다.
임현섭/충남대학교 응용생물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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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