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생의 시네레터] '어쩔수가없다' - 그릇된 남성 판타지와 심층 구조의 평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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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생의 시네레터] '어쩔수가없다' - 그릇된 남성 판타지와 심층 구조의 평면화

  • 승인 2025-11-12 17:05
  • 신문게재 2025-11-13 18면
  • 최화진 기자최화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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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어쩔수가없다' 포스터.
이 영화는 <콘크리트 유토피아>(2023)나 <기생충>(2019)을 생각하게 합니다. 위태로운 가족 혹은 가정을 둘러싼 남성 가장의 문제와 관련되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근대적 남성 판타지를 보게 합니다. 험한 세상에서 경쟁해서 이겨야만 살아남을 수 있고, 가족 혹은 가정을 지키거나 원상태로 복원할 수 있다는 폐쇄적이고 확증 편향적인 판타지입니다. 실상 남자 혼자서 가정을 지키지 못하고, 꼭 경쟁해서 원상태로 돌아가야만 가족이 행복한 것은 아님을 이 영화는 곳곳에서 암시합니다. 이러한 주인공 만수의 판타지는 밝은 면으로는 스위트홈 콤플렉스라 할 수 있고, 어둡게는 자신이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한다는 강박증과 그것을 위해서는 제목처럼 살인마저도 어쩔 수가 없다고 하는 꽉 막히거나 닫힌 생각과 삶의 태도를 보여줍니다.

이에 비해 만수의 아내 미리(손예진)의 경우는 확실히 다릅니다. 물론 가정을 지키려 하고 자식을 위해서 비도덕적인 일을 감행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테니스를 그만두고, 가족의 소비를 줄이며 자신도 치위생사로 복귀합니다. 남편을 격려하고, 가족들을 돌봅니다. 이웃들과 소통하기도 하고, 때로 도발적이지만 용맹하기도 합니다. 혼자 다 하려 하고, 센 척하지만 실은 매우 위태롭고, 외롭고, 위험한 짐승 같기도 한 만수와 다릅니다.



영화는 한국영화사의 명작 <오발탄>(1961)을 인용합니다. 주인공 철호의 치통을 만수에게서 보게 합니다. 그러나 철호의 치통이 한국전쟁 후 전망 없는 사회 속 위태로운 남성의 실존적 고민인 데 비해 만수의 경우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고집스럽고 폐쇄적인 남성 판타지를 보게 합니다. 과연 그러한가, 어쩔 수 없는 일인가를 성찰하게 합니다.

이 작품은 만수의 해고와 관련한 노사 갈등 등 사회 문제, 만수와 아내, 자녀 등 가족들의 문제, 만수와 범모, 시조, 선출 등 어쩌면 동일 인물의 전후사와도 같은 중년 남성 캐릭터의 문제 등 세 층위가 심층적으로 구조화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관객들이 쉽사리 이들 심층적 구조에 접근하기 어렵다는 데 있습니다. 유명 배우들이 저마다 열연을 펼치면서 모든 장면이 공히 두드러져 보이는 전경화의 효과가 나타납니다. 또한 거의 모든 장면에 배경 음악이 깔려 서사와 심층 구조 안으로의 진입을 방해합니다. 그러므로 영화의 입체성과 함께 그 안에 숨은 구조적 의미망이 드러나지 못합니다. 영화제에서의 명성과 사회적 이슈화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장면들과 배우들의 연기, 조용필의 노래 등이 각기 따로 부유합니다. 안타깝습니다.



그간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공동경비구역 JSA>(2000), <올드보이>(2003), <싸이보그지만 괜찮아>(2006), <박쥐>(2009), <아가씨>(2016), <헤어질 결심>(2022) 등에서 보여준 것처럼 일반적 상황에서 만나기 어려운 사랑을 다뤘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위해 특별한 공간을 공들여 만들었습니다. 관객들은 그들의 사랑을 통해 자신들의 상식과 통념을 성찰하고, 타자들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깨뜨릴 기회를 얻게 되고, 또한 영화가 만들어내는 특별한 공간의 정취와 분위기 안으로의 몰입을 경험했습니다. 블랙코미디 장르에 대한 새로운 시도는 물론 귀하지만 이번 작품은 박찬욱 감독이 일관되게 이어온 영화적 성취와 잘 어울리지 않습니다.

김대중(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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