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공론] 운동회 같은 모교 체육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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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공론] 운동회 같은 모교 체육대회

임준수/천리포수목원 감사, 광천상고 제5회 졸업생

  • 승인 2026-05-20 10:39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임순수 강사-수정
임준수 천리포수목원 감사
시골 모교의 교정에서 때 아닌 운동회의 풍악이 울려퍼졌다. 만국기가 창공을 수놓고 호각 소리와 응원의 함성이 요란한 초등학교 운동회가 아니다. 그 낭만의 가을 운동회는 점점 자취를 감추고 이제는 학창을 떠난 어른들의 체육대회가 운동회와 유사한 시골 풍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까마득한 기억 속에 남아있는 옛 학우를 만나는 반가움 때문에 나는 해마다 열리는 중고교 총동창회 기별 대항 체육대회에 즐겨 참석한다. 용산역을 출발하는 전세 열차안(장항선 열차)에서 낯선 출향(出鄕) 동문들(후배들)과 어울려 김밥 안주에 소주를 즐기는 재미가 그 첫째 이유다.

목적지 광천역에 내리면 재향(在鄕)동문들의 환대를 받으며 농악대를 앞세워 교정까지 행진하는 것도 특별한 즐거움이었다. 경찰차의 콘보이(convoy, 호위)를 받으며 소싯적 거리를 걷는 기분은 의장대 사열을 받는 대통령의 득의감과 다를 것이 없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이 무색할 정도로 무더운 날씨였지만 최고령 기수(期數)인 우리 일행은 '원로석'의 상석을 개막식 끝까지 지켰다. 그런데 난데 없는 신사 차림 부대가 와서 허리를 90도 급히며 명함을 돌린다. 2주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의 출마자와 그 선거 운동원들이었다. 운동회 날짜를 가을이 아닌 선거일 직전으로 잡은 추최측이 좀 약삭빨라 보였으나 푸짐한 기념품과 수북한 경품을 보니 상당한 성과를 올린 택일인 것 같다.

결론적으로 올해의 '홈커밍 데이'는 즐거움보다 서글픔이 앞선 잔치였다. 열차편으로 내려온 출향(出鄕)동기생은 물론, 고향을 지키는 재향(在鄕) 동문들의 참석 숫자가 급격히 줄어든 것이다. 특히 가장 만나고 싶은 동창생-- 흰 버선에 검은 고무신을 신고 20리(8km) 길을 등교하여 3년 개근상은 받았던 이 아무개는 올해도 나타나지 않아 안타깝다. 낙농업으로 자수성가한 그는 전화를 안받는 기벽이 있어 연락도 어렵단다.

임-경찰차-1
경찰차의 콘보이(convoy, 호위)를 받으며
임-소시적-1
학창 시절 걷던 거리를 거닐며 추억에 잠겨봤다.
내년 운동회에서는 그리운 얼굴들을 얼마나 볼 수 있을까. 부쩍 늘어난 원로석의 지팡이족들을 보고 있으려니 세월의 무상함이 새삼 떠오른다. 그래도 두칸의 전세 객차에서 벌어진 귀로의 이산(離散)파티는 모든 서글픔을 잊게 했다. 주흥으로 망각의 늪에 빠진 것이다. 후배들의 집중적인 술잔 공세가 좀 버거웠으나 깍듯한 원로 대접이 싫지 않았다. 시골 학교를 나오지 않았으면 어떻게 이런 호사를 누려 보겠는가.

임-농악-1
광천 드론고등학교 학생들의 농악대 농악놀이
임준수/천리포수목원 감사, 광천상고 제5회 졸업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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