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칼럼]일 잘하는 기계, 일 시킬 줄 모르는 사람

  • 오피니언
  • 사이언스칼럼

[사이언스칼럼]일 잘하는 기계, 일 시킬 줄 모르는 사람

조재완 선임연구원(한국원자력연구원 경제성분석실)

  • 승인 2026-07-23 17:53
  • 신문게재 2026-07-24 18면
  • 임병안 기자임병안 기자
조재완 프로필 사진(2026년)
조재완 한국원자력연구원 선임연구원
여름 휴가철이 다가온다. 챗GPT에게 이번 여름 갈 만한 여행지를 물으면, 뜨는 여행지와 동선 곳곳의 맛집, 교통편과 숙소까지 그럴싸한 계획이 돌아온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항공권 검색도, 숙소 가격 비교도, 일정표 정리도 결국 내가 밤늦게 앉아서 한다. 답은 기계가 주지만, 일은 여전히 사람이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에게 인공지능이 아직 궁금한 것에 답해 주는 챗봇 이상이 되지 못하는 이유다. 그런데 올해, 이 관계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에이전트'라는 말을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본래 '대리인', 나 대신 움직이는 존재라는 뜻이다. 에이전트 모드는 말 그대로 인공지능에게 답하는 능력을 넘어 일하는 능력을 부여한 기능이다. 이 스위치를 켜면 여행은 계획에서 끝나지 않는다. 항공편과 숙소를 직접 검색해 비교하고, 예약 화면의 빈칸까지 채워 놓은 뒤 마지막 결제 승인만 내게 넘긴다. 일정표와 예산은 내 컴퓨터에 표로 만들어 저장해 준다. '답변'이 아니라 '수행한 일의 보고'를 하는 것이다. 이제 기계에게 일을 맡길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일을 맡길 수 있게 되면, 다음 수순은 나눠 맡기는 것이다. 여행이라면 항공편, 숙소, 맛집 담당을 따로 두고, 마지막에 한 명이 취합하게 한다. 인공지능의 그럴듯한 거짓말에 속아 본 적이 있다면, 검토하는 에이전트를 붙여 결과를 확인하게 할 수도 있다. 잘못된 정보가 눈에 띄게 줄어든다. 때로는 여러 에이전트에게 서로 반박하며 토론하게 하고, 그 공방을 지켜본 뒤에 판단을 내릴 수도 있다. 나는 '직장 상사 에이전트'도 요긴하게 쓴다. 실제 상사에게 받은 피드백을 쌓아 두면 반복되는 지적 패턴을 분석해 주고, 다음 보고서는 제출 전에 그 눈으로 미리 검토를 받는다. 그러면 같은 실수를 두 번 하지 않게 된다. 실제로 올해 나온 연구를 보면, 에이전트 여럿을 동시에 부리는 개발자가 빠르게 늘었고, 이들이 끝내는 일도 눈에 띄게 늘었다. 이 모든 팀을 꾸리는 데 필요한 것은 채용 공고가 아니라 월정액 구독료다. 여러 명의 손발을 한꺼번에 부리는 일은 그동안 왕과 장군, 대기업 임원의 특권이었다. 그 특권이 지금 구독권으로 대중에게 팔리고 있다.

그런데 막상 해 보면, 에이전트 부하를 거느린 팀장 노릇이 생각보다 어렵다. 핵심은 정확한 지시다. 지시가 모호하면 엉뚱한 결과가 돌아오고, 일을 잘못 나누면 열 명이 같은 일을 열 번 한다. 정확한 지시는 시키는 쪽과 받는 쪽의 이해가 같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일을 맡기기 전, 모호한 것이 남아 있으면 시작하지 말고 모든 의문이 풀릴 때까지 되묻게 한다. 그 질문에 답하다 보면 십 분 이상 훌쩍 가는 일이 다반사다. 하지만 그렇게 지시가 명확해졌을 때만 원하는 결과물이 한 번에 나온다. 나무꾼들 사이에 전해져 오는 말이 있다. "나무를 베는 데 여섯 시간이 주어진다면, 네 시간은 도끼를 가는 데 쓰라." 일을 대충 시키고 여러 번 고치느니, 제대로 지시해 한 번에 끝내는 편이 낫다. 그리고 아무리 검토하는 에이전트를 겹겹이 세워도, 마지막 확인은 언제나 사람의 몫으로 남는다.

일을 '하는' 능력보다 일을 '시키고 검증하는' 능력이 중요해진 시대다. 갓 입사한 신입사원도 일을 시킬 줄 알아야 한다. 기계가 일하는 시대에 사람의 몫은 문제를 정의하고, 업무를 지시하고, 결과에 책임지는 일이다. 관리는 더 이상 승진의 보상이 아니라 입사 첫날부터, 어쩌면 학교에서부터 배워야 할 기술이 된다. 신입사원이든 대학생이든, 이 기술을 먼저 익히는 사람이 앞서게 된다. 일을 맡기는 법, 일을 나누는 법, 그리고 돌아온 결과를 의심하고 확인하는 법. 이것이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문해력이다. 원하든 원치 않든, 2026년 우리는 모두 승진했다. 남은 질문은 하나다. 좋은 팀장이 될 준비가 되었는가.

이 칼럼 역시 여러 에이전트의 손을 거쳤다. 그리고 그 어떤 문장도, 까다로운 팀장 한 명의 눈을 피해 지면에 닿지는 못했다. 당신의 다음 휴가 계획은, 밤새 검색창 앞에서가 아니라 팀장의 자리에서 시작될지도 모른다. /조재완 한국원자력연구원 선임연구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포항서 방화 추정 불… "경찰 수사 절실"
  2. 충남대 상용직 노사갈등 160여일 만에 마침표…학내 신뢰 회복 과제
  3. 대전 갑천 엑스포다리 불꽃쇼 취소… 인파 밀집·안전사고 우려
  4. 2030년 완성기 맞는 세종시… 읍면동 활력 도모 방안은
  5. 대전 미분양 아파트 늘었는데…내년 주택시장 괜찮을까
  1. 단양수중보 녹조, 수공·환경청은 알고 단양군·충북도는 몰랐다
  2. 사람 몰리는 오월드, 적자는 눈덩이… 도시공사 새 사장, 해법 나올까
  3. 허태정 슈퍼위크…정부지원 촉구 시도지사 연대강화
  4. 제3회 서포 김만중 문학기행 성료…한글 문학의 발자취를 따라서
  5. 대전시 민선 9기 공약 77개 확정… 8조 3244억 투입

헤드라인 뉴스


[2026 국감] 병무청 국감, 예체능 병역특례 제도 등 쟁점

[2026 국감] 병무청 국감, 예체능 병역특례 제도 등 쟁점

12일 대전정부청사에서 진행된 국회 국방위원회의 병무청 국정감사에선 예술·체육 분야 병역특례 제도 개선을 촉구하는 여야 의원들의 질타가 이어졌다. 이번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일부 선수들의 부적절한 언행과 함께 대중문화 분야와의 공정성 문제 등이 지적됐는데 홍소영 병무청장은 "국민 의견을 고려해 합리적인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병무청 국정감사는 예술·체육 분야 병역특례 제도가 쟁점으로, 여야 의원들이 한목소리로 제도 개선을 주문하고 나섰다. 앞서 국방부와 문화체육관광위원회를 상대로 열린 국감에서도 병역특례 제도에 대한..

이번엔 대동교… 트램 공사로 15일부터 왕복 2차로 축소
이번엔 대동교… 트램 공사로 15일부터 왕복 2차로 축소

대전 도시철도 2호선 트램 건설공사에 따라 오는 15일부터 동구 대동교 일대 차량 통행이 일부 제한된다. 60년 넘은 노후 교량을 철거하고 새 교량을 건설하는 공사로 2028년 6월까지 약 21개월간 기존 왕복 4차로가 2차로로 축소된다. 특히 19일부터 유성구 대덕대교, 11월에는 충남대학교 앞 온천교 개축공사까지 예정돼 있어 트램 공사에 따른 교통 불편이 대전 주요 도로 곳곳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12일 대전시에 따르면 도시철도 2호선 13공구에 포함된 대동교 개축공사로 10월 15일부터 대동오거리~베스티안병원네거리 구간의 차량..

대전역 쪽방촌 공공주택사업 손실 메꾸려 임대주택 분양 전환
대전역 쪽방촌 공공주택사업 손실 메꾸려 임대주택 분양 전환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대전역 쪽방촌 공공주택사업 장기간 지연으로 손실액이 증가하자 공공임대주택을 줄이고 분양주택을 늘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미뤄진 사업 기간, 주민에게 이주비와 주거비 등은 한 푼도 지원하지 않았고, 화재와 폭염 등에 따른 건강 피해조사는 물론 준공 때까지 거주할 이주대책도 제대로 마련하지 않았다는 문제도 나왔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더불어민주당 장종태 의원(대전 서구갑)이 국토교통부와 LH가 제출한 대전역 쪽방촌 공공주택사업을 분석해 12일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이 사업은 2022년 6월 착공해 2026년..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덕구의회 파행에 뿔난 주민과 단식 돌입한 김찬술 구청장 대덕구의회 파행에 뿔난 주민과 단식 돌입한 김찬술 구청장

  • 코로나19 무료 예방접종 오늘부터 시작 코로나19 무료 예방접종 오늘부터 시작

  • 대전 주말 축제 ‘북적북적’ 대전 주말 축제 ‘북적북적’

  • 모래판 위에서 펼쳐진 한판 승부 모래판 위에서 펼쳐진 한판 승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