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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윤 대전대 명예교수 |
교수와 학생들의 조합(유니언, Universitas)으로 모여 집적된 유럽의 대학은 도심 속에 함께하던 건물이 중심이 된 '도시형 대학'으로 출발하였다. 반면, 신 지형으로 새출발한 미국은 많은 대학들이 넓은 자연 속에 풍족한 부지를 갖춘 '전원의 자급형 소도시'로 발전했다. 캠퍼스라 부르기 시작한 원조는 미국의 프린스턴 대학으로 알려져 있다. 어원에서 Campus(캠퍼스)와 Campo(캄포)는 모두 '들판'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파생된 형제 단어이다. 언어적 진화에 따라 하나는 보다 큰 광장의 집합적 의미로 발전했고 또 다른 하나는 아주 다른 '지식의 도시'란 독립된 공간적 의미가 되었다. 이탈리아 시에나의 일 캄포(IL Campo)광장은 경계 없는 도시 일상의 중심 공간으로 오랜 역사를 지닌 도시의 숨통이랄 수 있다. 이 캄포에 비해 캠퍼스는 울타리를 가진 폐쇄적이면서도 자기 완결적인 공동체 공간으로 모양새는 서로 다르나 이들은 아주 큰 공통점을 지닌다. 캠퍼스가 폐쇄적임에 비해 캄포는 지극히 비결정적이며 얼마든지 변화가 가능한 불확정적 무한공간으로 확장된다. 캠퍼스가 자신의 모습을 높게 간직하려는 몰입형이라면, 광장으로 진화한 캄포는 자연스럽게 도시와 친화하며 융합의 의미로 도시를 상징하는 장소성을 갖는다.
이러한 융합의 성격과 도시 상징의 의미를 잘 살펴보면 미래의 대학이 자신들이 지닌 지식 공간을 어찌 변모시켜야 할지 답이 있지 않을까. 바로 이점이 지식의 도시 대학이 변하고자 하는 원동력의 근원일 수도 있다. 이는 캄포가 지닌 확장성의 공간적 진화로 대학의 미래를 변하게 할 새 판이 가능케 되는 것이다. 고대로부터 도시의 원동력은 시장이었고 들판에서 시작한 캄포는 만남의 장소이자 확장의 장소로 유동하는 생명체였다. 바로 이점을 달리한 캠퍼스는 독립적으로 자기 완결적인 결정체로 굳어졌고, 점차 교환과 대화를 축소한다. 가장 빈번하게 토론하고 가장 빈번하게 도시와 손을 잡아야 할 대학은 굳게 울타리를 닫고 도시에 높은 문을 세웠다.
대학의 안에서 본 시각이지만, 그동안 국가의 프로그램들은 늘 대학의 존재를 상호작용으로 끌어가기보다는 당근과 채찍으로 길들이듯 다루어 가지 않았나 싶다. 재정 지원 프로그램들은 국가의 지원을 받는 상위대학들의 전유물이 되었고, 지역 사립대학들은 마치 입시의 농어촌 특별전형과도 같이 나눔의 변방에서 늘 힘들고 애태우는 모습이다.
국가 지원 프로그램이 지역과 대학이 상생하는 새로운 방향타로 변화를 유도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고 어렵다. 이 문턱을 스스로 넘고자 대학은 인문학으로 재무장하고 국가는 지역 기술로 인재를 확보하는 계획이 진행 중이다. 그러나 이 공동의 구도는 단지 프로그램만으로는 그 목적을 달성하기에 충분치 않다. 이를 확장하기 위해선 우선 각기 활동하는 무대를 살펴봐야 한다. 고대 제국처럼 시민의 관심 유도에 몰두하는 사업들이 지역 성장이란 화두와 인재를 수용하는 방식에서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한마디로 '대학이 살아야 지역이 산다.'라는 사고에 집중해야 한다. 중앙의 시각을 단숨에 얻기는 힘들지만 인문학의 재정착으로 영역을 넓히고자 하는 대학은 오직 학문의 틀에만 매달린 고정된 틀을 벗고 확장된 교육체계의 변화에 몰두한다. 평생의 여정을 향한 교육 체질 변화의 바탕 위에 캄포(Campo)의 도시 융합 개념을 추가한다면 대학 교육장의 전반에 달라진 공간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인생의 가장 긴 시간을 바로 대학에서 보낼 수 있는, '캠퍼스가 지역사회로' 이어지는 도시와의 접점을 이루는 공간적인 변화(Outside in, Inside out)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고 지역에 이런 변화를 스스로 터득하고 이를 지향하고 있는 대학이 있어 다행스럽다.
김병윤 대전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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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