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崇禮門)이 소실된 지 어느덧 2주년이 지났고, 얼마 전에는 복원을 위한 착공식이 거행되었다 한다. 좀 더 완벽한 모습으로 복원할 계획이라 하니 웅장한 남문(南門) 위에 ‘숭례문’이라는 큼직한 글자를 쓴 현판이 걸려 있을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 숭례문이 소실되었을 때 당시의 사람들은 마치 국상을 당한 것처럼 경악했고, 또한 슬픔을 그치지 않았다. 건물이 무너져 내리고 부서진 '숭례문' 현판을 보면서 이 나라의 예가 무너지는 듯한 절망감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나라의 예가 무너졌기 때문에 숭례문이 스스로 분신한 것이라며 한탄하는 사람도 있었다.
예는 치국의 요도(要道)이므로 예가 무너짐은 망국(亡國)을 의미한다. 따라서 조선이 건국하면서 도읍의 남문(南門)을 '숭례'라 현액한 것이다. 그런데 남쪽에 숭례의 문구를 둔 이유가 있다. 남쪽은 화(火)의 밝은 곳이요 시절로는 여름을 상징한다. 숭례의 '예'는 질서를 의미하는데, 초목이 무성한 곳에는 질서가 있어야 하니 질서가 없으면 난립하는 오합지졸에 불과하다. 초목도 질서를 이뤄야 아름다운 모습을 갖추듯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더욱 더하다.
공자는 질서를 이룬 사회를 '가회(嘉會)'라 표현하였다. 선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 예가 충만한 사회! 이는 우리사회가 지향하는 이상사회다. 따라서 일국의 군왕이 세상을 이끌고 가야할 덕목이다. 치국의 주체는 인군이므로 이는 또한 인군이 몸소 실천해야하는 경구이기도 하다. 맹자는 군자의 덕은 바람[風]이요 소인의 덕은 풀[草]과 같다 하였다. 바람 부는 방향대로 풀은 뉘어지기 때문에 예로부터 치란(治亂)의 관건(關鍵)은 인군에게 매어 있다고 본 것이다. 본래 경복궁을 지을 때 남향으로 지으려 한 것도 인군으로 하여금 남면(南面)케 하기 위한 것이다.
주역의 글에 '성인(聖人)은 남면해서 천하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南面而聽天下]'했다. 남면하라는 것은 밝음을 향하라는 뜻이다. 밝음을 향해서 천하의 소리를 들으라는 것이다. 인군이 남면해서 몸소 예를 행하면 세상은 자연히 질서가 잡히고 화락한 기운이 동반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통치의 수단으로 예를 강조한 것이고, 치국의 주체로서 인군에게 숭례의 실천을 명시한 것이다. 그런데 도성의 사대문 중에서 남문의 현판에 유독 세로의 글씨를 썼다.
혹자는 남쪽의 관악산이 화기가 치성하므로 방지를 위한 뜻이라 하지만 단지 비보차원에서였겠는가? 본래 숭례는 주역 계사전의 '지식은 (덕을) 높이는 것이고 예는 자신을 낮추는 것이다[知崇禮卑]'는 글에서 따온 것이다. '안으로 덕을 쌓고 밖으로 업을 넓히는 것이(崇德廣業) 성인의 역도(易道)인데 '숭덕'은 지식으로써 가능하고, '광업'은 예로써 이룰 수 있기 때문에 이 같이 표현한 것이요 위로 솟는 불의 성질을 취해서 세로로 쓴 것이다. 불은 염상(炎上)하므로 숭(崇)자를 올려 쓴 것이고, 예는 자신을 낮추는 속에서 행할 수 있으므로 아래의 글자로 둔 것이다. 불의 성질을 그대로 두면 세상을 불태우지만 잘 다스리면 유용하므로 공자는 화덕(火德)으로 '예'의 글자를 취한 것이다. 밝음을 향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예가 되므로 예를 갖춘 사회를 문명사회라 하는 것이고, 예를 갖춘 사람을 문화인이라 말하는 것이다.
신명(神明)이 무심할까? 지난 번 소실되었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신명이 떠났다 말했지만 이제 복원한다면 신명이 다시 또 깃들까? 예를 무시하는 이 사회에서 숭례문이 복원된 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마는 그릇을 만들면 모양에 맞게 물은 채워지는 법! 머지않아 남문이 위용을 드러내고 숭례문 현판이 걸리게 된다면 신명은 자연히 깃들 것이고, 언젠가는 이 나라가 다시 예를 숭상할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임을 감히 확신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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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국 주역학자·원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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