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천(先天)과 후천(後天)은 『주역』에서 나오는 용어다. '하늘보다 앞서고 뒤따른다'는 뜻이니 선천은 아직 때가 오지 않았는데 먼저 아는 것이요, 후천은 때가 이미 왔으니 내가 천시(天時)를 따르고 받드는 것이다. 즉 길흉의 이치를 아는 것이 선천의 의미라면 흉(凶)을 피하고 길(吉)로 나가려고 노력하는 것이 후천의 의미다. 이 외에도 다양한 의미로 선후천의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대개는 시간적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다.
복희팔괘에서 건괘(乾卦)가 있는 자리는 하루로 비유하면 정오가 되고, 일년으로는 하지가 되며, 크게는 12만9600년의 일원(一元) 중에 오회(午會) 중천(中天)시기로 정할 수 있다. 12만9600년은 우주가 사계절처럼 한 바퀴 도는 기간으로 소강절 선생의 『황극경세서』에 근거한 것이다. 건괘를 중심으로 이전을 오전, 이후를 오후라 하니, 오전은 선천, 오후는 후천이되고, 일년으로 봄과 여름은 선천, 가을과 겨울은 후천이 된다.
일원(一元)도 이와 똑같다. 결국 선천은 양, 후천은 음이 주장함을 표현한 것인데, 선천에는 양이 위로 올라가고 후천에는 음이 위로 올라가는 때다. 『주역』에 천지비괘(否卦 )와 지천태괘(泰卦 )로 설명할 수 있다. 비괘는 하늘을 상징하는 건괘(乾卦)가 위에 있고 땅인 곤괘(坤卦)가 아래에 있다. 양은 위로 오르고 음은 아래로 내려가는데 양인 건괘가 위에 있고 음인 곤괘가 아래에 있으니 두 괘가 사귀지를 못하고 있다. 그야말로 비색(否塞)한 모습이니 선천으로 비유했고, 태괘(泰卦)는 반대가 되니 음이 위에 있고 양이 아래에 있어서 서로 형통하니 후천시대를 비유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바야흐로 선천시대를 지나고 후천시대 속에서 살고 있다. 어찌 아는가? 천시(天時)와 인사(人事)는 맞물려 돌아가는 법이다. 인사를 통해서 천시를 알 수 있으니 지금은 음이 생하는 시기다. 음도가 위로 올라가는 시기다. 과거 역학자인 야산(也山)선생은 후천의 기원을 대한민국정부가 들어선 1948년으로 잡고 있다.
물론 선후천의 분기점을 이 시기로 잡은 데는 학술적인 여러 가지 근거가 있지만, 생각건대 이전의 시대는 '전제군주제'였으므로 비괘의 상이 되며, 대한민국 정부가 들어선 그 이후는 그야말로 국민이 주인이 되는 '민주제'이니 태괘의 상과 부합한다. 뿐만 아니라 후천시대를 상징하는 여러 가지 모습들이 나타나고 있다. 과거에 숭상받던 사람들이 지금은 천대받는 반면에 과거에 멸시당했던 직업들이 지금은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여성상위가 또한 후천시대의 필연적 현상이다. '나라에 도(道)가 있고 없고'를 언로(言路)를 기준해서 비태(否泰)를 말하기도 한다. 언로(言路)가 통한 시대를 태괘로 보고 언로가 막힌 시대를 비괘로 본다. 이를 기준으로 선천은 비색하고 후천을 태평한 시대로 보고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옛날부터 후천세상이 어서 오기를 노래하며 갈망했다. 후천시대는 반상의 귀천이 없는, 만인이 평등한 사회, 그야말로 선경(仙境)의 세상일 것으로 동경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후천시대는 마냥 좋은 세상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음양을 정신과 물질로도 나누니, 선천이 정신을 숭상했다면 후천은 물질을 숭상하는 시대다. 선천의 정신적 추구가 철학으로 나타나고 후천의 물질적 욕심이 과학으로 귀결되고 있다.
정신·철학과 물질·과학 중에서 무엇이 더 소중한가는 논외로 하고, 다만 이 두 가지는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한 그루의 나무가 거목이 되기 위해서는 나무의 높이만큼 뿌리가 깊어야 하는 것이니 지엽이 물질이요 과학이라면 뿌리는 정신이요 철학이라 할 수 있다. 어느 한 쪽만의 발전은 필경 고사(枯死)할 것이니 후천시대의 물질적 풍요의 극대화는 반드시 정신적 토대 위에서 이루어질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주역학자·홍역사상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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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국 주역학자·원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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