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여행] 전남 구례 산수유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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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여행] 전남 구례 산수유마을

붉은 열매대신 어리게 피어나는 노란 꽃, 소풍가는 아이들을 닮았네

  • 승인 2016-03-24 20:10
  • 신문게재 2016-03-25 9면
  • 박새롬 기자박새롬 기자
중학생 시절 교과서에는 김종길의 '성탄제'라는 시가 있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 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어느새 나도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서러운 서른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눈 속에 따 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어린 시절 산수유가 뭔지도 모르면서, 아픈 아들을 위해 아버지가 따왔다는 그 붉은 열매 참 곱겠구나 싶었다. 읽는 심장에서 붉은 피가 퍼져나와 온 몸을 덥힌 적이 있었다. 이건 겨울의 이야기다.

햇살의 속삭임이 길어질 무렵, 아직 찬바람을 손에 얹은 나무 위에 노란 꽃들이 맺힌다. 이건 봄의 이야기다. 잎보다 먼저 고개를 쏙 내민 꽃은 20~30개의 작은 꽃이 한 개의 꽃에 붙어 한 송이를 이룬다. 완숙한 5월도, 절정의 4월도 아닌 3월에 피는 산수유 꽃은 똑같은 노란 옷을 입고 소풍가는 유치원 아이들을 닮았다. 엄마 따라 가는 아기오리나 병아리인가 싶기도 하다. 산수유는 그렇게 어리게 태어나 햇살에 활짝 팔 벌리며 웃다가, 바람에 스쳐 상처입고, 비에 젖어 눈물짓기도 하다 청춘을 보내고 붉은 열매로 무르익는다. 어렸던 아들이 서러운 서른 살을 지나 아버지가 되는 것처럼.

산수유꽃의 꽃말은 불변의 사랑이다. 해마다 이맘때면 전남 구례 산수유 마을에는 전국에서 사람들이 모여드는 불변의 풍경도 그려진다. 벚꽃이나 매화처럼 흩날리는 꽃비대신, 어린 꽃들이 모여 재잘대는 노란 봄 속으로 파고 든다. 구례군 산동면 일대는 산수유 군락지만 7곳 가량 되는 만큼 전국 산수유의 70%를 생산하며 산수유 나무를 처음 심은 시목지도 있는 고장. 산수유 열매는 신장과 간에 좋지만 씨에는 독성이 있어 제거해야 한다. 옛날엔 산동면 여인들이 입에 산수유 열매를 넣고 앞니로 직접 분리했는데, 평생에 걸쳐 하다보니 앞니가 많이 닳아있어 다른 지역에서도 산수유 마을에 사는 지 알아볼 정도였다고 한다. 몸에 좋은 산수유를 늘 입에 달고 산 여인이라 건강할 거라는 믿음도 있어, 산수유 마을 처녀들은 인근 남원이나 순천에서 며느리감으로 인기였다. 젊은 사람들은 사랑의 맹세로 산수유꽃과 열매를 주고 받기도 했다. 산수유가 품은 건강으로, 아파서 헤어질 일 없는 불변의 행복을 바란 게 아닐까. 꽃보러 온 인파에는 유난히 단둘이 온 이들이 많았다.

봄은 1분에 23.3m, 아기 걸음마 속도로 올라온다. 어린 봄을 마중하러 내가 내려간 것인지, 봄이 산수유 나뭇가지에 앉아 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느새 산수유꽃은 대전에서도 살금살금 고개를 내밀고 있다. 대전의 산수유가 홀로 또는 삼삼오오 모여 애처롭다면, 구례는 노란 물감을 손에 볼에 묻혀가며 노는 천진난만함이 있다. 갓 태어난 어린 것들이 한데 모여 피어난 풍경. 솜사탕처럼 달콤한 이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건, 우리가 어쩌면 영원히 어린아이처럼 노닐고 싶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산수유꽃축제 27일까지=19일에 개막한 제17회 구례산수유꽃축제는 27일까지 이어진다. 산수유 케이크, 비누와 초콜릿을 만들어 볼 수 있고 나뭇가지에 소원을 적은 하트 종이도 걸어 놓을 수 있다. 전통민속놀이체험과 페이스페인팅은 여느 축제들과 비슷하겠지만 야생화 압화체험이나 지리산온천 족욕체험은 특별하겠다. 산수유 차를 마시고 달이고 떡도 메쳐보자. 공연으로는 7080 통기타와 포크 콘서트, 난타 등이 준비돼 있다. KBS 전국노래자랑 예선이 27일, 녹화가 29일 예정이다.


▲가는길=대전에서 승용차로 호남고속도로와 순천완주고속도로를 이용하면 2시간 반 정도 걸린다. 버스는 구례 터미널에서 중동 가는 버스를 타고 21개 정류장을 지나 중동 정류장에 내리면 된다.

글·사진=박새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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