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솔숲은 향을 품는다…안면도 자연휴양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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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솔숲은 향을 품는다…안면도 자연휴양림

코 끝을 스치는 냉기를 뚫고 선비의 기품처럼 그윽한 솔향기 풍파 견디며 자란 나무의 역사, 위대한 자연의 섭리 앞에 어찌 오만해 질 수 있는가

  • 승인 2017-01-05 14:21
  • 신문게재 2017-01-06 9면
  • 우난순 교열팀장우난순 교열팀장
[주말여행] 안면도 자연휴양림


내집 거실 한켠엔 치자나무 한 그루가 있다. 푸르스름한 도자기 화분에 심어져 있는 치자나무는 주인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는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해 여름 생일선물이라며 치자나무 화분을 안고 들어와 내게 불쑥 안긴 언니의 정성을 생각해서라도 소홀히 하면 안되는 거다. 오래 전 한여름에 목포의 어느 거리를 거닐다 달콤한 향에 이끌려 갔다가 순백의 꽃을 발견했다. 그땐 그 꽃이 치자꽃인 줄 몰랐다. 향이 어찌나 강렬한 지 심장이 벌렁벌렁할 정도였다. 그 향에 취해서 나른한 낮잠이라도 자고 싶었다. 지금도 목포를 생각하면 숨막힐 듯 달달한 치자향이 떠오른다. 올 여름엔 나의 집도 치자향으로 물들 것이다. 그 감당할 수 없는 대단한 치자향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설렌다.

나는 겨울을 좋아하지 않는다. 워낙 추위를 많이 타고 또 방심했다 하면 발에 동상이 걸리는 탓이다. 오직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몽환적인 눈의 세계 '설국'에서 위안을 받는다. 그것 뿐이다. 겨울에 들어서면서부터 '언제 봄이 오나'를 되뇌이며 설레발을 친다. 봄이 오면 또 여름을 마냥 기다린다. 늘 이런 식이다. 현실에 안주하는 법이 없다. 나는 타고난 비관주의자인가. 춥다. 춥고 쓸쓸하고 심사가 베베 꼬이기만 한다. 대통령을 잘 못 둔 나라 탓이기도 하고 내 탓이기도 하다. 부지할 곳 없고 숨쉴 공기가 모자라 갑갑증만 쌓여 머리털이 곤두설 지경이다. 의지할 만한 그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

안면도는 소나무로 둘러싸인 섬이다. 어느 산을 가도 눈에 띄는 게 소나무라지만 안면송이라 이름 붙여진 안면도 소나무는 특별하다. 해풍을 맞고 자란 해변가의 해송은 늠름한 장군같지만, 섬의 안쪽 나지막한 산 골짜기마다 장승처럼 곧게 뻗은 안면송은 선비의 기품이 느껴지는 멋이 있다. 안면도 자연휴양림은 솔향기가 그윽했다. 코끝을 스치는 냉기 앞에서, 헐벗은 산과 들의 생명의 소멸 앞에서 움츠러드는데 그곳은 남루하지 않았다. 순수한 피의 혈통좋은 오래된 소나무들은 정확히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를 알고 있는 듯이 높고 푸른 빛을 발한다. 민중은 나무와 같다. 나무는 숲을 이뤄 거대한 의식의 바다를 이룬다. 바다는 잔잔한 물결위에 제 갈 길 가는 배를 밀어주지만, 탐욕으로 무장한 무지몽매한 배는 성난 파도를 일으켜 집어 삼킨다.

어리석고 무능한 권력자들을 언제까지 봐줘야 하나. 한치의 반성도 모르는 그들 앞에서 부끄러움은 국민들의 몫인가. 부도덕하고 비굴함을 동원해 움켜쥔 자리에서 권력에의 욕망을 단발마적으로 내뿜는 그들에게 민중은 분노의 시선을 보낸다. 문드러지고 마모된 그들의 최후 앞에 일말의 자존심은 온데간데 없고 악취만이 진동한다. 지상의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결국 이렇게 수평의 존재가 되는 것을, 나는 소나무 앞에서 깨닫는다. 잔설이 듬성듬성 남아 있는 음지는 을씨년스런 겨울의 그림자가 짙게 배어 있다. 한낮이 되어서야 목도리를 풀고 따사로운 햇살을 맞는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무성한 소나무잎들이 싱싱함을 발한다. 어찌하여 소나무들은 이리도 길고 곧을까.

배병우의 사진작품으로 유명한 경주 남산의 소나무들은 한반도의 굴곡진 역사성을 드러낸다. 세계와의 불화로 단단하면서 구렁이처럼 꿈틀거리는 소나무는 천년 신라의 애환이 서려 있다. 손을 대면 뜨거운 피가 흐르고 거친 숨소리가 들릴 것 같아 움찔하게 하는 마력이 느껴진다. 아! 그때도 겨울이었지. 안개 자욱한 선덕여왕릉 주변을 서성이며 숲의 정령, 소나무들과의 조우를 잊을 수 없다. 겨울의 소나무숲은 써늘하고 담백하다. 그 숲에서, 공기와 햇볕은 소란스럽지 않다. 푹신한 솔가루를 밟으며 고통의 외마디는 잦아들고 땀흘린 노동의 대가를 애써 구해선 안된다는 걸 실감한다. 그래서 키 큰 안면송은 잔가지도 없이 고고하게 홀로 존재하나 보다.

안면송은 봄의 벚꽃처럼 화려하지도 않고 여름의 느티나무처럼 무성하지도 않다. 문득, 산다는 것은 생을 다하는 날까지 상처로 범벅된 진창을 걷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자연의 섭리는 그렇게 인간에게 관용을 베풀지 않는 것. 어느 바람결에 실려온 씨앗 하나가 오랜 시간 풍파를 견뎌내며 장대한 소나무로 자란 역사 앞에서 어찌 오만해질 수 있는가. 안면송은 고려시대부터 국가에서 특별관리한 나무였다. 궁궐을 짓고 배를 건조하는데 쓰인 좋은 소나무 안면송은 화재로 전소된 숭례문 복원에도 사용된 나무다. 타고 남은 재가 기름이 되고, 한 알의 밀알이 썩어 싹이 트고 열매를 맺듯이 자연은 겸허하다. 인간은 선의 의지인가, 악의 의지인가. 나는 모른다. 다만, 편안히(安) 누일(眠) 수 있는 이 섬(島)에서 오늘밤 안식을 구하노니….

▲가는길=승용차는 대전~당진 고속도로를 타면 안면도까지 2시간 소요, 공주, 청양, 홍성을 거치면 3시간 20분 정도 걸린다. 버스는 대전복합터미널서 첫차가 7시 40분으로 대전~당진 고속도로로 가면 안면도가지 2시간 40분 정도 걸린다.

▲먹거리=서해바다는 사시사철 먹거리가 풍부하다. 겨울의 안면도는 꽃게 철이다. 탕과 찜과 게장이 있고 빼놓을 수 없는 것은 향토음식 게국지가 있다. 게국지 식당이 어딜가나 즐비하다.

글·사진=우난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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