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좋은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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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좋은 공부

유낙준 대한성공회 대전교구장

  • 승인 2018-12-23 09:28
  • 박병주 기자박병주 기자
유낙준 주교
유낙준 주교
한 달에 한 번 만나는 모임이 있는데 각자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하면서 시작합니다. 매달 새로운 것이 있겠나 싶지만, 항상 새로운 이야기가 나와 이 시간을 기다리는 게 제 모습이었습니다. 지난 모임에서 한 기자가 자신의 그간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내년이면 은퇴하는데 그동안 할 일을 하지 못했던 거 같습니다. 그동안 바쁘게 지내느라 인사도 제대로 못 하고 얼굴만 아는 분들에게 미안해 이들에 점심과 저녁 시간에 밥 사고 있습니다. 얼굴만 보고 말도 나누지 못한 직장 내 동료와 선·후배들과 밥을 먹었습니다. 특히 사무실 청소하는 여성들과 밥을 먹을 때가 기뻤습니다. 제가 일을 잘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기 위해 보이지 않는 시간에 일하신 것에 감사의 마음을 전할 수 있어서 복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모임에 참여한 사람들은 이 말을 듣는 그 짧은 시간 내내 그분의 선한 힘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듯했습니다. 참으로 이 자리가 복된 자리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선한 힘을 받는 자리는 우리를 생명으로 살게 하는 자리입니다. 내가 주도적으로 생명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으로 살게 영향력을 받는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생명은 내가 주도적일 때 선택하는 가치가 아닙니다. 생명은 외부에서 내게 부여되는 것이기에 영향력을 받는 자리에서 태어나는 것입니다. 자기 주도성을 강조하는 경쟁력을 최고로 삼는 시대에서 생명은 자랄 수 없습니다. 자기 주도적인 사회의 결과물인 냉소주의에 익숙한 사람과 엇나간 사람, 연약한 사람들에게 생명을 부여하는 일은 참으로 값진 행위일 것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공동체와 나 자신의 이기적인 탐욕의 삶과 엇박자가 날 때 가장 우선적으로 선택할 것은 생명을 받아들이는 생명수용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게 생명은 외부에서 내면으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생명을 가져다주는 사람을 만날 때 인간은 복 있는 얼굴을 하게 됩니다. 얼굴에 핏기가 돌게 되기 때문입니다.

은퇴할 시간에 다른 사람들에게 밥을 사주는 것으로 그 시간을 채우는 사람은 참으로 복 받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정해진 시간 안에 숙제를 푸는 것을 우리는 공부에서 배웠습니다. 인생이라는 제한된 시간에 빚진 사람들에게 밥을 사는 것으로 채우는 것 또한 인생과제를 푸는 좋은 공부라 여깁니다.

만물의 생명을 왜곡시키고 위험에 빠뜨리게 하는 우리의 탐욕을 내려놓는 바로 그 자리가 생명의 선한 힘을 부여받는 자리로 복 있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한 아기의 탄생인 성탄절을 맞이하는 그 자리가 분명 선한 영향력을 받는 생명의 자리일 것입니다.

아기가 태어나는 그 정지된 자리에 머무는 시간을 잠깐이라도 가지심이 생명에 대해 조금은 덜 미안한 마음을 갖게 할 것입니다. 성탄의 시간에 우리의 자리를 내어주는 것은 우리 인간이 물질적인 존재이지만 영적인 존재임을 알게 되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생명은 영적인 존재를 인식할 때 생명의 활동이 왕성하게 됩니다. 그러한 생명의 나라인 한반도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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