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결국은 모성

  • 오피니언
  • 세상읽기

[세상읽기] 결국은 모성

  • 승인 2019-03-06 09:00
  • 현옥란 기자현옥란 기자
111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 중 한 장면.
주먹만 믿고 살아온 한물간 전직 복서 형. 엄마만 믿고 살아온 서번트증후군을 앓는 동생. 난생처음 만난 두 형제의 유쾌한 케미스트리. 최성현 감독의 '그것만이 내 세상' 영화 이야기다.

건강상 요양을 핑계로 '엄마' 역할을 단기파업하고 찾아간 친정언니 집에서 TV로 우연히 보게 된 영화였다.



극 중 형인 '조하'는 어린 시절 술에 취해 가정폭력을 일삼는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가 집을 나가면서 험한 세상에 홀로 내던져졌다. 중학생 때부터 만화방을 전전하며 숙식을 떼우던 그는 동양 챔피언에 오르며 유망 복싱선수로 '쨍하고 해 뜰 날'이 온 듯 했으나 한순간의 실수로 다시 길거리를 전전하는 밑바닥 인생으로 전락한다. 이후 도장의 스파링 상대와 전단지를 돌리는 일을 하며 만화방에서 쪽잠을 자는 생활을 하던 중 우연히 어릴 적 집 나갔던 엄마와 재회하고, 숙식 해결을 위해 그녀를 따라간 집에서 전혀 알지 못했던 배다른 동생이자 자폐증을 앓는 동생과 함께 지내게 된다.

자장라면을 좋아하고 게임을 아주 잘하지만 무엇보다도 피아노에 천재적인 재능을 보이는 서번트증후군을 앓는 동생 '진태'. 서번트증후군은 특정 분야에서 일반인들이 따라갈 수 었는 두뇌의 천재적인 능력을 가지게 되는 자폐 증상 중 하나다. 좌뇌가 손상되거나 좌뇌와 우뇌의 연결이 끊어져 우뇌가 스스로의 보상 작용으로 보통의 인간으로는 지질 수 었는 뛰어난 뇌 능력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영화 '레인맨'에서 컴퓨터를 능가하는 계산능력과 암기력을 지녔던 더스틴 호프만이, 드라마 '굿닥터'에서 천재 소아외과 의사인 주원이 같은 케이스다.



입만 열면 "네~"라는 대답만 하고, 밤에는 때 아닌 괴성으로 잠을 깨우고, 급할 땐 아파트 단지 한복판에서도 볼일을 보는 동생의 모자람에 조하는 한숨만 나오지만, 캐나다로 가기 위한 경비를 마련하기 전까지 꾹 참기로 결심한다.

세상과 융화되지 못하고 각자의 세상을 지닌 두 사람을 품은 것은 어머니 '인숙'의 모성이었다.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다 도망쳐 자살하기 위해 달려간 다리 위에서 낯선 한 남자에게 구해진다. 아들 조하에게는 혼자 그곳에 남기고 왔다는 죄책감을 평생 가슴에 안고 살아가는 엄마로, 남과 다르게 태어난 동생 진태에게는 책임감을 간직한 인숙은 두 아들에게 아낌없이 관심과 사랑을 내어준다.

그녀의 이런 모성은 세상과도 서로 간에도 물과 기름 같았던 두 형제를 변하게 하는 모티브가 된다. 돌덩이 같이 차가웠던 조하의 마음도, 자기만의 세계에 갇힌 진태의 마음도 서서히 녹이고 버무려 성장시킨다. 시종일관 동생을 짐으로 여기며 폭력까지 휘두른 조하, 그리고 그런 형을 두려워하며 헬멧을 뒤집어 쓴 진태는 결국 '진짜 형제'가 된다. 진태는 자신의 재능인 피아노 연주 실력으로 세상에 당당히 인정받고, 조하는 동생이 동경하던 피아니스트 한가율과 이어주는 등 동생의 조력자가 되기를 자처한다. 이 과정에서 불의의 사고 후 칩거한 한가율도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다.

'결국은 모성이었다'라는 뻔한 신파였지만, 이병헌, 박정민, 조여정 등 쟁쟁한 배우들의 연기에 푹 빠져서 볼 수 있는 영화였다.

'폭력 남편'에게서 도망친 인숙의 모성은 비난받아야 할까. 평생에 걸쳐 죄책감을 안은 채 살아가야 하는 그녀를 당연시하는 게 맞는 것일까. 모성도 지치고 상처받고, 다치면 아프다.

가족에게 아낌없이 베풀고, 사랑하고, 감싸주는 '건강한 모성'은 엄마만 나홀로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가정 구성원들 모두와 사회의 관심과 배려와 노력이 있어야 가능할 것이다.

현옥란 편집부장

명함사진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기획]3.4.5호선 계획으로 대전 교통 미래 대비한다
  2. 충청권 광역철도망 급물살… 대전·세종·충북 하나로 잇는다
  3. [사이언스칼럼] 아쉬움
  4. [라이즈 현안 점검] 거점 라이즈센터 설립부터 불협화음 우려…"초광역화 촘촘한 구상 절실"
  5. "성심당 대기줄 이제 실시간으로 확인해요"
  1. [사설] 이삿짐 싸던 해수부, 장관 사임 '날벼락'
  2. 금강유역환경청, 화학안전 24개 공동체 성과공유 간담회
  3. '금강을 맑고푸르게' 제22회 금강환경대상 수상 4개 기관 '한뜻'
  4. 실패와 편견 딛고 환경보전 실천한 빛나는 얼굴들…"금강환경대상이 큰 원동력"
  5. 대전 복합문화예술공간 헤레디움 '어린이 기후 이야기' 2회차 참가자 모집

헤드라인 뉴스


[아이 키우기 좋은 충남]`충남형 풀케어`가 만든 출산·육아 친화 생태계

[아이 키우기 좋은 충남]'충남형 풀케어'가 만든 출산·육아 친화 생태계

충남도가 추진 중인 '힘쎈충남 풀케어' 정책이 지역의 출산·육아 친화 환경을 빠르게 확장시키고 있다. 단편적인 복지 지원을 넘어 도민의 생애주기 전반을 뒷받침하는 전방위 돌봄체계를 구축하고 이를 기업의 근무문화 혁신과 결합하면서 실질적 성과를 만들고 있다는 평가다. 정책과 현장이 서로 호응하며 조성한 '출산·육아 친화 생태계'가 지역사회의 지속가능한 미래 가능성을 보여준다. '힘쎈충남 풀케어'는 충남도가 저출생 위기 해결을 핵심 도정 목표로 삼은 이후 마련한 통합 돌봄 모델이다. 임신·출산·돌봄·교육·주거·근로환경 등 도민의 일생을..

세종시의원 2명 확대...본격 논의 단계 오르나
세종시의원 2명 확대...본격 논의 단계 오르나

'지역구 18명+비례 2명'인 세종특별자치시 의원정수는 적정한가. 2026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19+3' 안으로 확대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인구수 증가와 행정수도 위상을 갖춰가고 있으나 의원정수는 2022년 지방선거 기준을 유지하고 있어서다. 2018년 지방선거 당시에는 '16+2'로 적용했다. 이는 세종시특별법 제19조에 적용돼 있고, 정수 확대는 법안 개정을 통해 가능하다. 12일 세종시의회를 통해 받은 자료를 보면, 명분은 의원 1인당 인구수 등에서 찾을 수 있다. 인구수는 2018년 29만 4309명, 2022년..

`금강을 맑고푸르게` 제22회 금강환경대상 수상 4개 기관 `한뜻`
'금강을 맑고푸르게' 제22회 금강환경대상 수상 4개 기관 '한뜻'

금강을 맑고 푸르게 지키는 일에 앞장선 시민과 단체, 기관을 찾아 시상하는 제22회 금강환경대상에서 환경과 시민안전을 새롭게 접목한 지자체부터 저온 플라즈마를 활용한 대청호 녹조 제거 신기술을 선보인 공공기관이 수상 기관에 이름을 올렸다. 기후에너지환경부 금강유역환경청과 중도일보가 공동주최한 '제22회 금강환경대상' 시상식이 11일 오후 2시 중도일보 4층 대회의실에서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유영돈 중도일보 사장과 신동인 금강유역환경청 유역관리국장, 정용래 유성구청장, 이명렬 천안시 농업환경국장 등 수상 기관 임직원이 참석한 가운..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병원도 크리스마스 분위기 병원도 크리스마스 분위기

  • 트램 2호선 공사현장 방문한 이장우 대전시장 트램 2호선 공사현장 방문한 이장우 대전시장

  • ‘자전거 안장 젖지 않게’ ‘자전거 안장 젖지 않게’

  • ‘병오년(丙午年) 달력이랍니다’ ‘병오년(丙午年) 달력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