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블랙코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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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블랙코미디

양동길 / 시인, 수필가

  • 승인 2020-02-21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못생겨서 죄송합니다.', '일단 한번 보시라니깐요', '뭔가 보여드리겠다니깐요' 등 많은 유행어를 창출한 코미디계의 황제 이주일(본명 鄭周逸, 1940.10.24. ~ 2002.08.27. 코미디언)을 30대 이상 세대는 아직 기억할 것이다. 자신의 약점을 활용한 사회 풍자와 해학으로 대중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1977년 이리역 폭발사고가 있었다. 다이너마이트 22톤, 초산암모니아 5톤, 초안폭약 2톤, 뇌관 1톤 등 다량의 폭발물이 호송원 부주의로 일시에 폭발되었다. 1,402명의 사상자와 엄청난 재산 피해를 낸 열차 폭발사고이다. 당시 인근 극장에서 공연 중이던 가수 하춘화를 업고 나와 일약 스타덤에 오른 이력도 특이하다. 그 이전에는 작은 극단의 사회자에 불과했다.

2001년 폐암 진단 이후, 금연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그 공로로 국민훈장 모란장이 추서되었으며, 금연공로상(세계보건기구), 스타선행대상 등 사후에 많은 상을 받은 특별한 이력을 갖고 있기도 하다. 생전에 『뭔가 말 되네요』, 『이주일 평전, 삐딱한 광대』 등을 저술했으며, 『인생은 코미디가 아닙니다』란 회고록이 사후에 출간되기도 했다.

그런 그가 국회의원이 되었을 때 세간의 커다란 화젯거리가 되었다. 남을 웃기는 희극 배우였기 때문이었으리라. 배우가 선량이 된 경우는 많다. 이상할 것도 없다. 전문직업인이 의회에 진출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로 치부되기도 한다. 유명인이다 보니 오히려 선출직에 유리한 측면이 있다. 1992년 14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4년여 의정활동을 했다. 임기를 마치며 "코미디 공부 많이 하고 나온다"고 해 또다시 세상을 웃겼다. 명언으로 각인 되기도 했다.

요즈음 정계를 보면 코미디가 따로 없다. 문득, 코미디언 이주일이 떠오르는 이유다. 사실은 그냥 웃어넘길 일이 아니다. 정치가 코미디여서야 되겠는가? 안타깝게도 정부 수립 이후 변함이 없어 보인다. 그야말로 블랙코미디다. 기상천외하게 법을 초월하니 상식이 대수랴?



희극은 슬랩스틱(slapstick), 마임(mime)과 같이 몸짓이나 표정 등 행위 위주로 하기도 하나, 대부분 말이 주가 된다. 말의 성찬이다 보니 따로 떼어 만담, 재담이라고 하는 장르가 있기도 하다. 어느 경우든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다. 생활 전체를 거의 모두 투자한다. 그렇게 쥐어짠 아이디어도 관객의 공감을 사기란 쉽지 않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도 호응 얻기가 어렵다. 그런데 정치인은 곧잘 국민을 웃긴다. 코미디언보다 한 수 위다. 웃기기 위해 노력하는 것일까? 의정활동 하랬더니 코믹아이디어 회의하나?

노자(老子, 생몰미상, BC 6세기 중국 제자백가 가운데 하나)가 "높은 선비는 도를 들으면 힘써 행하고, 중간은 들은 둥 만 둥 한다. 낮은 사람은 도를 들으면 크게 웃는다. 크게 웃지 않으면 도가 아니다.(上士聞道, 勤能行於其中. 中士聞道, 若聞若無. 下士聞道, 大笑之, 弗大笑, 不足以爲道矣. - 老子 道德經 第四十五章" 했다. 웃음이 절로 나오는 필자가 수준 이하인 탓일까? 그들만의 도가 따로 있는 것일까? 자괴감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사언행일치(思言行一致)가 얼마나 중요한 덕목인지 모를 리 없다. 말 한마디가 인생을 바꾼다. 인생뿐인가, 세상을 바꾼다. 불분명하면 침묵하자. 침묵은 금 아닌가?

SNS 덕에 말의 확산범위나 속도가 엄청나다. 한편, 사이버공간에도 놀이터가 따로 있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유유상종한다. 그들만의 재치에 환호한다. 그 재미에 빠지다 보면 기어코 사고를 친다. 과거, 음담패설조차 정치입문의 중요 요건 중 하나라는 설도 있었다. 때문인지 재치있는 언행으로 스타가 된 정치인도 꽤 있다. 손꼽아 보라. 대부분 말로가 좋지 않다. 그야말로 말로 흥하는 자 말로 망한다. 정치인을 통하여 그 전형(典型)을 본다. 씁쓸하기만 하다. 글쓰기나 말하기를 업으로 삼는 사람은 특히 경계해야 할 일이다.

많이 운운 되는 여타 관점은 빼자. 우리 정치, 날 선 비난과 적대감 표출이 아니면 불가한 것일까? 비평은 없고 비난만 있다. 저주에 가깝다. 강고한 흑백논리만 존재한다. 경직화되어 있다. 사생결단이다. 그야말로 이전투구(泥田鬪狗)이다. 정치는 상생의 길을 찾는 것 아닌가? 아무리 봐도 정치가 아니다. 게다가 블랙코미디만 난무한다. 한심하지 않은가?

코미디는 코미디언에게 맡기자. 아이디어가 있으면 전문 배우에게 넘겨주자. 혹여 스스로 웃기기 위해 노력한다면, 긍정적 역사 쓰기에 그 열정을 쏟아붓기 바란다.

양동길 / 시인, 수필가

양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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