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와비사비(わびさび)

  • 정치/행정
  • 충남/내포

[편집국에서] 와비사비(わびさび)

  • 승인 2020-05-10 10:25
  • 신문게재 2020-05-10 22면
  • 이은지 기자이은지 기자
이은지 증명
완전하고 완성도 높은, 흠결 없는 물건을 흠모했다. 누구나 다 그러하듯 공장에서 찍어내고 손수 빚어내는 모든 물건들은 완성도 100%를 목표로 세상에 나온다. 우리는 그 물건의 고된 탄생의 여정을 보상하기라도 하듯 쓸고 닦고 아껴준다. 갖고 싶은 물건을 소유하게 됐을 때 그 물건을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지 않던가?

새 차도 마찬가지다. 행여나 긁진 않을지, 주차 중 누군가 '문콕'이라도 하진 않을지…. 내가 주인인지 차가 주인인지 헷갈릴 정도로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차를 아끼는 마음 탓에, 내 감정과 주의력의 몇할을 기꺼이 빼앗기는 것에 불편한 감정마저 들었다. 하지만 나는 얼마 안가 비로소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됐다. 차를 뽑은지 갓 한달을 넘긴 어느 날 세워놓았던 내 차를 누군가 박아 범퍼를 통으로 교체하게 된 것이 아이러니하게도 계기가 됐다. 정비소에서 잘 고쳐 나온 차는 육안으론 크게 변한 것이 없었지만 행여나 흠집이라도 날까 초조해하던 내 마음은 조금 가벼워졌다. 나는 알았다. 차를 소중히 여기던 그 마음이 오히려 나를 옥죄었던 것을…. 어차피 완벽하지 않는 차, 설령 또 흠집이 나더라도 처음처럼 마음 아프지 않다.



완벽에 대한 강박은 비단 사물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신체적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 또는 나와 다른 사람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 또한 이것에 기인한다. 적당한 나이에 결혼해 먹고 살만한 부를 축적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것. 보통의 사람들이 선택하는 사회통념적인 경로에서 이탈하는 이들을 우리 사회는 얼마나 포용하고 있는가.

때로는 스스로 완벽하지 않아서 또는 완벽할 수 없어서 패배감을 느끼기도 한다. 불완전의 연속인 인생에서 완전함을 좇고자 잃는 것이 더 많다면 그 자체로 불완전하다. 모든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열등은 더 이상 열등이 아니다.



훌륭한 상태에 대한 열등한 상태를 뜻하는 말인 와비사비(わびさび)는 불완전함의 미학을 나타내는 일본의 문화적 전통 미의식 또는 미적 관념의 하나다. 덜 완벽하고 단순하며 본질적인 것을 뜻하는 '와비'와, 오래되고 낡은 것을 뜻하는 '사비'가 합해진 단어로, 부족하지만 그 내면의 깊이가 충만함을 의미한다.

와비사비가 물질적 풍요보다는 부족하지만 남들에게 비쳐지는 삶이 아닌 자신의 본질적인 삶을 추구하는 새로운 트렌드로 주목 받고 있다는 건 현대사회의 획일적인 완전함에 대한 통쾌한 반란이기도 하다.

채울 수 있음에 열정 가득한 삶이다. 향기 없는 조화보다 흠결 있는 생화가 아름답듯, 반짝반짝한 새 가구보다 손 때 묻은 오래된 가구가 더 정겹지 않은가. 욕심내지 말고 느긋하게 관조하자. 실수투성이인 스스로를 쓰다듬어 주자. 여기저기 상처 나고 부족하면 어떠한가. 우리 모두는 완벽하지 않아도 아름답다.

이은지 편집2국 기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물리적 충돌·노노갈등까지' 대전교육청 공무직 파업 장기화… 교육감 책임론
  2. 충남경찰 인력난에 승진자도 저조… 치안공백 현실화
  3. 대전시와 5개구, '시민체감.소상공인 활성화' 위해 머리 맞대
  4. 세종시 '학교급식' 잔반 처리 한계...대안 없나
  5. [한성일이 만난 사람]여현덕 KAIST 기술경영전문대학원 인공지능(AI) 경영자과정 주임교수. KAIST-NYU 석좌교수
  1. 세종시 재정 역차별 악순환...보통교부세 개선 촉구
  2. 세종시 도담동 '구청 부지' 미래는 어디로?
  3. 더이상 세종시 '체육 인재' 유출 NO...특단의 대책은
  4. 세종시 교통신호제어 시스템 방치, 시민 안전 위협
  5. ‘대전의 밤은 낮보다 화려하다’

헤드라인 뉴스


전기 마련된 대전충남행정통합에 이재명 대통령 힘 실어줄까

전기 마련된 대전충남행정통합에 이재명 대통령 힘 실어줄까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으로 대전·충남 행정통합이 새로운 전기를 맞은 가운데 17일 행정안전부 업무보고에서 다시 한번 메시지가 나올지 관심이 높다. 관련 발언이 나온다면 좀 더 진일보된 내용이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역대 정부 최초로 전 국민에 실시간 생중계되고 있는 이재명 대통령의 2주 차 부처 업무보고가 16일 시작된 가운데 18일에는 행정안전부 업무보고가 진행된다. 대전과 충남은 이날 업무보고에서 이 대통령이 대전·충남 행정통합에 대한 추가 발언을 할지 관심을 두고 있다. 내년 6월 지방선거 이전에 대전·충남 행정통합을 하기 위해..

[기획시리즈] 2. 세종시 신도시의 마지막 퍼즐 `5·6생활권` 2026년은?
[기획시리즈] 2. 세종시 신도시의 마지막 퍼즐 '5·6생활권' 2026년은?

2026년 세종시 행복도시 신도시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할 수 있을까.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이하 행복청)이 지난 12일 대통령 업무보고를 거치며, 내년 청사진을 그려냈다. 이에 본지는 시리즈 기사를 통해 앞으로 펼쳐질 변화를 각 생활권별로 담아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1. 행정수도 진원지 'S생활권', 2026년 지각변동 오나 2. 신도시 건설의 마지막 퍼즐 '5~6생활권' 변화 요소는 3. 정부세종청사 품은 '1~2생활권', 내년 무엇이 달라지나 4. 자족성장의 거점 '3~4생활권', 2026년 던져진 숙제..

‘의료 격차 해소·필수의료 확충’ 위한 지역의사제 국무회의 의결
‘의료 격차 해소·필수의료 확충’ 위한 지역의사제 국무회의 의결

의사가 부족한 지역에서 10년간 의무적으로 복무하는 소위, ‘지역의사제’ 시행을 위한 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출산과 보육비 비과세 한도 월 20만원에서 자녀 1인당 20만원으로 확대하고, 전자담배도 담배 범위에 포함해 규제하는 법안도 마찬가지다.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1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제54회 국무회의에서는 법률공포안 35건과 법률안 4건, 대통령령안 24건, 일반안건 3건, 보고안건 1건을 심의·의결했다. 우선 지역 격차 해소와 필수의료 확충, 공공의료 강화를 위한 ‘지역의사의 양성 및 지원 등에 관한 법률공포안’..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딸기의 계절 딸기의 계절

  • 보관시한 끝난 문서 파쇄 보관시한 끝난 문서 파쇄

  • `족보, 세계유산으로서의 첫 걸음` '족보, 세계유산으로서의 첫 걸음'

  • ‘대전의 밤은 낮보다 화려하다’ ‘대전의 밤은 낮보다 화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