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밖]소 잡기 또는 농민 잡기

  • 오피니언
  • 문화칼럼

[안과밖]소 잡기 또는 농민 잡기

  • 승인 2008-04-23 00:00
  • 신문게재 2008-04-24 21면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소를 해체하는 모습을 보고 입을 쩍 벌리는 문혜군에게 포정은 강의한다. 능숙한 백정이 매년 한 번씩 칼을 바꾸는 것은 뼈를 ‘자르기’ 때문이라고, 보통 백정이 매달 한 번씩 칼을 바꾸는 것은 뼈를 ‘쪼개기’ 때문이라고. 포정의 칼은 19년 동안 수천 마리의 소를 잡고도 숫돌에서 막 새로 갈아낸 듯 날이 번쩍인다.


“정말 짱이다!” 문혜군이 감탄하며 말한다. “나는 포정의 말을 듣고, 양생(養生)에 대해 터득하였노라!” 참으로, 세 치 혀에 미국산 쇠고기를 전면 개방한 것은 소를 처음 잡아 온통 소밖에 안 보이는 초보 백정의 눈높이다. 명색은 축산농가 전체의 명운이 걸린 일인데 소 잡는 기술은커녕 소 한 마리 잡는 정성만 못하다.

개방은 그렇다 치고, 미국 쇠고기가 싸고 맛있다고 홍보해주는 대통령이 과연 우리 대통령 맞느냐며 농민들은 생경해한다. 광우병 쇠고기를 강변하기를 “복어 독을 제거하면 걱정 없이 먹는 것과 같은 이치”라는 협상 수석대표나, “광우병이 전염병은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하는 농식품부 장관은 어느 나라 장관이고 수석대표인지 의심스럽다.

피터 싱어 등의 ‘죽음의 밥상’ 기준에서는 소들이 들판에서 유유하게 풀을 뜯는다고 본다면 현대 축산업에 대한 무지다. 미국 소들은 젤라틴과 도살장의 찌꺼기를 먹으며 쇠똥밭 둔덕 위에 뒹군다. 영양학적이나 윤리학적 문제까지 거론하지 않더라도, 이번 협상은 선진당 이명수 당선자(아산)가 훈수 둔 대로 “알면서 저지르는 나쁜 행위”다.

자유무역협정(FTA)과 시장 다분화(多分化)가 피할 수 없는 상수적 환경이라 하더라도 이건 통상국가의 똑바른 모습이 아니다. ‘글로벌한’ 마음가짐도 중요하지만 우리 축산업은 농업 구조조정을 마감한 선진국과는 달리 효율적인 자원 배분이 용이하지 않다. 최고 축산군인 홍성군을 비롯한 전국 축산농가의 의견은 비대칭적으로 묵살당했다.

한술 더 떠 질 좋은 고기를 값싸게 먹기 싫으면 그만이라며 (빵이 없으면 케이크 먹으라는) 앙투와네트의 말투까지 흉내내려 한다. 축산 인구가 LA갈비 먹는 인구보다 적다고 그러는가 싶어, 두어 달 전까지 자유무역협정(FTA) 국내대책본부장을 지낸 홍영표 전 차관보에게 이 문제를 물었다. 그는 한.칠레 FTA와 관련해 포도농가에 900억 기금 중 3분의 1밖에 안 썼던 경험을 이야기한다. 동일 선상에서 쇠고기 문제도 별 걱정 없다고 단언한 그였지만 설마 이렇게 전개될 줄은 예상 못했을 것 같다.

협상이 협상이 아니었다면 대책은 대책이 될 수 없다. 세 야당은 어제 쇠고기 협상 청문회에 합의했다. 피해 아니 파국을 맞을 수 있는 축산농민에게 고급 한우가 살 길이니 고품질로 생산하자는 다그침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자는 흰소리와 현실에서는 다름없다. 소 수천 마리를 잡고도 늘 빛나는 칼날 같은 그런 협상력, 포정의 소 각뜨기(解牛) 기술이 느닷없이 절실해지는 것은 그래서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돈 주면 수용자 챙겨주겠다”… 대전교도소 교감 징역 3년 구형
  2. [날씨] 이번 주말 흐리고 전국에 강한 비…다음주 소나기 가능성
  3. 3년 간 지연된 작은내수변공원 복합문화체육센터 공사비 문제로 또 늦어지나
  4. 글로벌 우주 강자들과 어깨 나란히…ISS2026 충청 우주기업들
  5. 충남도, 올해부터 시행되는 읍·면·동장 '주민 대피 명령권' 특별교육… "골든타임 확보 가장 중요"
  1. 화재 원인 다양·복잡해지는데…소방 화재사례 공유 체계 '미비'
  2. 오석진 "소통·청렴이 최우선"…인수위 첫 업무보고 돌입
  3. 충남대·공주대 통합 논의 막바지…토론회서 소통 필요성 부각
  4. [사설] 충청 ‘반도체 패키징 벨트’ 흔들림 없어야
  5. 대전광역시 선수단 '제5회 전국어울림생활체육대축전' 출전

헤드라인 뉴스


대전 RISE 첫 성적표 나왔다… 최대 17억5000만원 차등 지원

대전 RISE 첫 성적표 나왔다… 최대 17억5000만원 차등 지원

지역 대학 경쟁력과 지역혁신 역량을 가늠할 대전형 RISE(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 사업의 첫 성적표 윤곽이 드러났다. 최대 17억5000만원의 인센티브가 걸린 연차평가 결과에 따라 대학별 지원 규모가 달라질 전망이다. 정부가 올해부터 RISE 체계를 지역성장 인재양성체계(ANCHOR·앵커)로 개편한 가운데 이번 평가는 2차년도 사업 추진 역량을 점검하는 시험대로 평가된다. 18일 대전시와 지역대학에 따르면 이번 평가는 지난해 사업에 선정된 지역대 13곳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평가 결과 S등급은 1곳, A등급은 3곳, B등급은 5..

許, 재검토 공언했는데…정부 긍정평가 0시축제 존속 기우나
許, 재검토 공언했는데…정부 긍정평가 0시축제 존속 기우나

대전 0시 축제 존속 여부를 둘러싼 지역 사회의 관심이 뜨겁다. 민선 8기 이장우 시장의 대표사업으로 6·3 지방선거에서 승리한 허태정 당선인이 재검토를 공언했지만, 최근 이 축제를 둘러싸고 부쩍 달라진 기류 때문이다. 정부가 0시 축제의 관광·상권 활성화 등 0시 축제에 대해 일부 긍정평가를 내놓았고 무턱대고 폐지했다가 외교적 마찰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지역사회 안팎에선 0시 축제를 아예 폐지하는 것 보다는 축제 간판을 바꾸거나 축소·개편 쪽으로 방향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18일 지역..

공사판된 대전 도심, 트램 개통 미뤄지나…與野 책임 공방 재점화
공사판된 대전 도심, 트램 개통 미뤄지나…與野 책임 공방 재점화

2028년 말 개통을 목표로 추진되던 대전도시철도 2호선 트램 사업 일정이 흔들리고 있다. 지난해 말 28년 만의 착공으로 본궤도에 진입한 듯 했지만, 토지보상 지연과 시운전 기간 연장, 수소트램 기반시설 문제까지 줄줄이 드러나며 2030년 개통도 장담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이 같은 내용이 민선 9기 인수위에서 공식화되며 여야는 또다시 네 탓 공방에 나선 모습이다. 18일 취재에 따르면, 대전시는 최근 대전시장직 인수위원회 업무보고에서 당초 목표였던 2028년 말 트램 개통이 사실상 어렵다는 취지의 내용을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여름철 풍수해 대비 장비 점검 여름철 풍수해 대비 장비 점검

  • 수족구 예방…‘꼼꼼하게 손 씻어요’ 수족구 예방…‘꼼꼼하게 손 씻어요’

  • 접시꽃에 담긴 여름 접시꽃에 담긴 여름

  • 임직원들이 함께 즐기는 월드컵 임직원들이 함께 즐기는 월드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