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은 ‘지천’과 ‘꾸러기’라는 두 단어가 합쳐진 합성어인데 ‘지천’은 까닭없이 남을 꾸짖거나 탓하는 것이고 ‘꾸러기’는 어떤 명사 밑에 붙어서 그 명사가 가지는 뜻의 사물이나 버릇이 많은 사람을 나타내는 말, 이를테면 ‘심술꾸러기’ ‘장난꾸러기’ 등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이 생긴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본래 ‘지천’이란 조선조 인조때의 문신인 최명길의 호 지천(遲川)을 가리키는데, 그 최명길을 병자호란과 관계가 있는 분이다.
1627년(인조 5년) 정묘호란 때 지천은 주화론을 주장함으로써 화의(和議)가 끝나, 호병들이 돌아간 후, 조야(朝野)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지탄을 받았으나 왕의 만류로 경기관찰사에 나감으로써 일단락을 지었다.
다시 그는 여러 내직에서 예조판서를 거쳐 이조판사로 대제학을 겸하였다.
1636년(인조 14년) 병자호란 때 서울까지 쳐들어온 청병이 마침내 남한산성을 포위하자 조정 신하들은 일제이 끝까지 싸우자는 주전론을 주장하였으나 오직 지천 혼자만은 주화론으로 일관하였다.
그러던 중 전세가 급격히 불리해져 결국 인조는 지천의 주장대로 지금의 서울 특별시 송파구에 있는 삼전도에서 청태종에게 화해가 아닌 항복을 하고야 말았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청나라에게 국치(國恥)의 쓰라림을 당하였기 때문에 당시 조정의 많은 신하들은 이 국치의 결과를 가져온 것이 결국 지천 때문이라고 지천을 몰아세우기 시작했다. 이 같은 사실이 차츰 세상에 널리 퍼지면서 사람들로부터 힐책이나 원망을 받게 되는 사람을 가리켜 ‘지천꾸러기’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송백헌 충남대 국문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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