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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그리트 '정지된 시간',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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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 틀 안의 동그란 시계와 장난감 기차, 그리고 벽난로. 여기까지만 이야기한다면 어릴 때 소녀소년문학전집을 즐겨 읽었던 이들은 삽화에서 한 번쯤은 봤을 법한 서양의 화목한 가정집 실내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어두운 배경에 벽난로의 불은 밝게 빛나고, 아이가 기차를 갖고 노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부모님까지 있다면 완벽하다. 하지만 마그리트의 그림에서는 아이와 부모의 다정한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그 대신 시계바늘의 초침이 멈춘 순간, 정지된 시간 속에 벽난로를 뚫고 나오던 증기기관차의 움직임 또한 멎는다. 거울을 통해 비친 방의 내부는 어떠한 가구나 사물도 보이지 않는다.
시계초침이 멈춘 순간·벽난로를 뚫고 나오던 증기기관차의 멈춘 움직임
마치 시간이 정지한 듯한 방 내부… '실존'에 대한 의문 끊임없이 던져
방 내부는 마치 시간이 정지한 듯 생동감이 없어 보인다. 오직 증기기관차가 내뿜는 증기만이 열차의 빠른 속도를 가늠하게끔 할 뿐이다. <고정된 시간> 속 사물과 분위기는 우리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치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그림에서 눈을 뗄 수 없다. ‘이 그림 속 증기기관차는 벽에 붙은 미니어처 모형인걸까? 아니면 다른 차원에서 나타난 존재인 것일까? 아니면 관찰자가 헛것을 본 것일까?’ 라며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하게 만든다.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가, 그의 다른 작품인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에서도 마그리트는 우리에게 실존에 대한 의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파이프를 그렸다고 해서 이것을 파이프라고 할 수 있는가? 이것은 단지 파이프라는 사물을 2차원의 캔버스에 옮겨놓은 다른 사물이라고 해야 하지 않나?’라는 그의 의문이 <고정된 시간> 속에도 잘 드러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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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그리트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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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적 역설통해 그림의 내용과는 전혀다른 이질적인 의미 도출
존재하는 사물과 존재하지 않는 사물간의 구별을 부정하는 시도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서 가치가 쉽게 비틀릴 수 있음을 나타내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물을 동시에 배치함으로써 평범하고 익숙한 존재는 우리에게 이질적인 존재로 바뀌어 다가온다. 이러한 미스터리를 통해 화가는 우리의 시선을 강렬하게 잡아끈다. 우리는 정지된 순간을 응시하며 시간과 장소에 우리 또한 고정되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의 그림에는 입체파의 구조도, 인상주의의 빛도, 다다이즘의 통렬한 사회비판도 담겨있지 않다. 그는 오직 관조자의 자세로 다소 비현실적인 그림을 그저 응시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시적으로도 느껴지는데, 초현실주의의 모태가 문학과 시였음을 감안한다면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니다. 마그리트는 시각적 역설을 통해 그림의 내용과는 전혀 다른 이질적인 의미를 도출해낸다. 그림 속에서는 차원도, 시간도, 사물의 정해진 물질적 특성 마저도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는데, 이러한 방식은 존재하는 사물과 존재하지 않는 사물 간의 구별을 부정하는 시도라 볼 수 있을 듯 하다.
1920년대 이후, 그는 초현실주의 작가들과 끊임없이 교류했고 초현실주의적 화풍을 그의 그림에 적용하려는 시도를 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를 완전한 초현실주의 작가라 부르긴 힘들다. 초현실주의가 자신의 내면적 충동, 환상, 꿈 등을 자유롭게 풀어놓는데 집중했다면 르네 마그리트는 현실적인 사물을 다르게 배치함으로써 새롭게 창조된 낯섬을 시적으로 표현했다.
단어는 어떤 사물을 단순히 지칭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이러한 일상생활에서 인식되는 사물과 그를 나타내는 언어적 관계는 쉽게 바뀔 수 있다는 점을 마그리트는 자신의 그림을 통해 날카롭게 지적했다. 익숙함 속의 낯설음, 어쩌면 그는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서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해온 가치가 쉽게 비틀릴 수 있음을 이러한 괴리감을 통해 나타내고 싶었던 것이다.
백영주 갤러리 ‘봄’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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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주 갤러리 ‘봄’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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