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살롱]익숙한 것들의 반란… 낯선 현실과 마주하다

  • 문화
  • 백영주의 명화살롱

[명화살롱]익숙한 것들의 반란… 낯선 현실과 마주하다

[백영주의 명화살롱] 마그리트 '정지된 시간'

  • 승인 2016-02-03 14:16
  • 백영주 갤러리 ‘봄’관장백영주 갤러리 ‘봄’관장
▲ 마그리트 '정지된 시간', 1938
<br />
<br />
▲ 마그리트 '정지된 시간', 1938


사각 틀 안의 동그란 시계와 장난감 기차, 그리고 벽난로. 여기까지만 이야기한다면 어릴 때 소녀소년문학전집을 즐겨 읽었던 이들은 삽화에서 한 번쯤은 봤을 법한 서양의 화목한 가정집 실내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어두운 배경에 벽난로의 불은 밝게 빛나고, 아이가 기차를 갖고 노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부모님까지 있다면 완벽하다. 하지만 마그리트의 그림에서는 아이와 부모의 다정한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그 대신 시계바늘의 초침이 멈춘 순간, 정지된 시간 속에 벽난로를 뚫고 나오던 증기기관차의 움직임 또한 멎는다. 거울을 통해 비친 방의 내부는 어떠한 가구나 사물도 보이지 않는다.


시계초침이 멈춘 순간·벽난로를 뚫고 나오던 증기기관차의 멈춘 움직임
마치 시간이 정지한 듯한 방 내부… '실존'에 대한 의문 끊임없이 던져



방 내부는 마치 시간이 정지한 듯 생동감이 없어 보인다. 오직 증기기관차가 내뿜는 증기만이 열차의 빠른 속도를 가늠하게끔 할 뿐이다. <고정된 시간> 속 사물과 분위기는 우리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치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그림에서 눈을 뗄 수 없다. ‘이 그림 속 증기기관차는 벽에 붙은 미니어처 모형인걸까? 아니면 다른 차원에서 나타난 존재인 것일까? 아니면 관찰자가 헛것을 본 것일까?’ 라며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하게 만든다.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가, 그의 다른 작품인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에서도 마그리트는 우리에게 실존에 대한 의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파이프를 그렸다고 해서 이것을 파이프라고 할 수 있는가? 이것은 단지 파이프라는 사물을 2차원의 캔버스에 옮겨놓은 다른 사물이라고 해야 하지 않나?’라는 그의 의문이 <고정된 시간> 속에도 잘 드러나 있다.


▲ 마그리트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1929
<br />
▲ 마그리트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1929

시각적 역설통해 그림의 내용과는 전혀다른 이질적인 의미 도출
존재하는 사물과 존재하지 않는 사물간의 구별을 부정하는 시도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서 가치가 쉽게 비틀릴 수 있음을 나타내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물을 동시에 배치함으로써 평범하고 익숙한 존재는 우리에게 이질적인 존재로 바뀌어 다가온다. 이러한 미스터리를 통해 화가는 우리의 시선을 강렬하게 잡아끈다. 우리는 정지된 순간을 응시하며 시간과 장소에 우리 또한 고정되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의 그림에는 입체파의 구조도, 인상주의의 빛도, 다다이즘의 통렬한 사회비판도 담겨있지 않다. 그는 오직 관조자의 자세로 다소 비현실적인 그림을 그저 응시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시적으로도 느껴지는데, 초현실주의의 모태가 문학과 시였음을 감안한다면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니다. 마그리트는 시각적 역설을 통해 그림의 내용과는 전혀 다른 이질적인 의미를 도출해낸다. 그림 속에서는 차원도, 시간도, 사물의 정해진 물질적 특성 마저도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는데, 이러한 방식은 존재하는 사물과 존재하지 않는 사물 간의 구별을 부정하는 시도라 볼 수 있을 듯 하다.

1920년대 이후, 그는 초현실주의 작가들과 끊임없이 교류했고 초현실주의적 화풍을 그의 그림에 적용하려는 시도를 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를 완전한 초현실주의 작가라 부르긴 힘들다. 초현실주의가 자신의 내면적 충동, 환상, 꿈 등을 자유롭게 풀어놓는데 집중했다면 르네 마그리트는 현실적인 사물을 다르게 배치함으로써 새롭게 창조된 낯섬을 시적으로 표현했다.

단어는 어떤 사물을 단순히 지칭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이러한 일상생활에서 인식되는 사물과 그를 나타내는 언어적 관계는 쉽게 바뀔 수 있다는 점을 마그리트는 자신의 그림을 통해 날카롭게 지적했다. 익숙함 속의 낯설음, 어쩌면 그는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서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해온 가치가 쉽게 비틀릴 수 있음을 이러한 괴리감을 통해 나타내고 싶었던 것이다.

백영주 갤러리 ‘봄’관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충남경찰 인력난에 승진자도 저조… 치안공백 현실화
  2. 대전시와 5개구, '시민체감.소상공인 활성화' 위해 머리 맞대
  3. 세종시 '학교급식' 잔반 처리 한계...대안 없나
  4. [한성일이 만난 사람]여현덕 KAIST 기술경영전문대학원 인공지능(AI) 경영자과정 주임교수. KAIST-NYU 석좌교수
  5. 세종시 재정 역차별 악순환...보통교부세 개선 촉구
  1. 세종시 도담동 '구청 부지' 미래는 어디로?
  2. 더이상 세종시 '체육 인재' 유출 NO...특단의 대책은
  3. 세종시 '공동캠퍼스' 미래 불투명...행정수도와 원거리
  4. ‘대전의 밤은 낮보다 화려하다’
  5. 세종시 교통신호제어 시스템 방치, 시민 안전 위협

헤드라인 뉴스


전기 마련된 대전충남행정통합에 이재명 대통령 힘 실어줄까

전기 마련된 대전충남행정통합에 이재명 대통령 힘 실어줄까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으로 대전·충남 행정통합이 새로운 전기를 맞은 가운데 17일 행정안전부 업무보고에서 다시 한번 메시지가 나올지 관심이 높다. 관련 발언이 나온다면 좀 더 진일보된 내용이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역대 정부 최초로 전 국민에 실시간 생중계되고 있는 이재명 대통령의 2주 차 부처 업무보고가 16일 시작된 가운데 18일에는 행정안전부 업무보고가 진행된다. 대전과 충남은 이날 업무보고에서 이 대통령이 대전·충남 행정통합에 대한 추가 발언을 할지 관심을 두고 있다. 내년 6월 지방선거 이전에 대전·충남 행정통합을 하기 위해..

[기획시리즈] 2. 세종시 신도시의 마지막 퍼즐 `5·6생활권` 2026년은?
[기획시리즈] 2. 세종시 신도시의 마지막 퍼즐 '5·6생활권' 2026년은?

2026년 세종시 행복도시 신도시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할 수 있을까.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이하 행복청)이 지난 12일 대통령 업무보고를 거치며, 내년 청사진을 그려냈다. 이에 본지는 시리즈 기사를 통해 앞으로 펼쳐질 변화를 각 생활권별로 담아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1. 행정수도 진원지 'S생활권', 2026년 지각변동 오나 2. 신도시 건설의 마지막 퍼즐 '5~6생활권' 변화 요소는 3. 정부세종청사 품은 '1~2생활권', 내년 무엇이 달라지나 4. 자족성장의 거점 '3~4생활권', 2026년 던져진 숙제..

‘의료 격차 해소·필수의료 확충’ 위한 지역의사제 국무회의 의결
‘의료 격차 해소·필수의료 확충’ 위한 지역의사제 국무회의 의결

의사가 부족한 지역에서 10년간 의무적으로 복무하는 소위, ‘지역의사제’ 시행을 위한 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출산과 보육비 비과세 한도 월 20만원에서 자녀 1인당 20만원으로 확대하고, 전자담배도 담배 범위에 포함해 규제하는 법안도 마찬가지다.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1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제54회 국무회의에서는 법률공포안 35건과 법률안 4건, 대통령령안 24건, 일반안건 3건, 보고안건 1건을 심의·의결했다. 우선 지역 격차 해소와 필수의료 확충, 공공의료 강화를 위한 ‘지역의사의 양성 및 지원 등에 관한 법률공포안’..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딸기의 계절 딸기의 계절

  • 보관시한 끝난 문서 파쇄 보관시한 끝난 문서 파쇄

  • `족보, 세계유산으로서의 첫 걸음` '족보, 세계유산으로서의 첫 걸음'

  • ‘대전의 밤은 낮보다 화려하다’ ‘대전의 밤은 낮보다 화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