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호 소설] 아웃터넷(OUTERNET) 12. 월드컵 심포니

[최민호 소설] 아웃터넷(OUTERNET) 12. 월드컵 심포니

  • 승인 2017-07-14 00:01
  • 최민호최민호


[최민호 소설] 아웃터넷(OUTERNET) 12. 월드컵 심포니

배상진이 우편함에서 편지를 꺼내들고 확인하자 발송인은 독일어와 영어로 씌여진 이름이었다.

칼 슈가르트.

들어서 모를 사람이 없었다.

‘FIFA 세계 월드컵 조직위원회 위원장’.

상진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편지였다. 편지는 영어로 씌여 있었다.

“Dear Mr. 배상진

저를 비롯한 FIFA의 월드컵 준비위원들은 배상진씨의 제안을 받고 매우 놀라고 기뻤었다는 말씀을 무엇보다도 먼저 드리고자 하며, 아울러 감사하다는 말을 전합니다.

그동안 우리 위원회는 배상진씨의 제안을 기술적인 면과 현실적인 면, 마지막으로 실현 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 다각적으로 검토하였습니다.

그 결과 저희 위원회는 배상진씨 제안이 매우 독창적이고 예술적일 뿐만 아니라 고도의 첨단 기술력이 요구되는 것이라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곧 우리 FIFA가 추구하는 이상이기도 한 것이었습니다.

우리 위원회는 배상진씨에게 찬사를 보냄과 반드시 성공시키자는데 뜻을 같이 했습니다.

이에 보다 구체적으로 이 제안을 실현시키기 위한 실행위원회를 만들기로 합의하고 그 위원장에 배상진씨를 임명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다수의견을 따르기로 하였습니다.

보다 구체적인 사항은 첨부된 실행위원회 개최에 관한 안내 책자를 참고하시기 바라며, 동봉한 프랑크푸르트와 파리 왕복 항공표와 저희 위원회 공식 선정 호텔예약이 가능한 여행자 수표를 보내드리오니, 깊은 배려있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세계 월드컵 조직 위원회 위원장 칼 슈가르트”

동봉된 것은 쉽게 말하자면 초청장이었다.

초청대상은 제안자 배상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독일 연방 공화국 조직위원회 게른하르트 뷔하우어, 프랑크푸르트 심포니 오케스트라 상임 지휘자 막스 재켄, 전 영국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지휘자이자 작곡가 윌리암 코헨, 전 네덜란드 아인쉬칸 프로축구단 감독 헤마르첸 슈뢰더 바흐, 한국 삼성전자 이사 겸 프랑크 푸르트 지사장 김종대, 그리고 FIFA의 사무국 직원 3명 정도가 회의참석 대상자였다.

배상진은 명단을 죽 훑어보았다.

자기의 제안에 대한 그들의 실행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안내 책자에는 회의안건 내용이 소개되었는데, 겉봉에 회의 참석자 이외에는 누설되지 않도록 특별한 배려를 해달라는 주의문이 붉은 글자로 인쇄되어 있었다.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제안의 개요]

<제안자> 배상진 프랑스 파리 1대학 경제철학 연구소 연구위원

<제안의 내용(요약)>

- 남아공 월드컵 축구대회의 개막식 및 폐막식에 연주되기 위한 월드컵 심포니 작곡에 관한 제안.

* 원제; 월드컵 경기의 음악적 표현을 위한 심포니 작곡에 관한 제안 *

· 월드컵 축구 경기는 세계인이 즐기는 스포츠일 뿐만 아니라 국경과 인종, 종교를 뛰어넘는 세계인의 축제임.

· 월드컵 축구는 인류의 역사상 가장 큰 규모, 가장 많은 관중, 가장 거대한 경기장, 가장 막대한 자본과 인원이 동원되는 가장 스펙터클한 국가간의 시합임.

· 월드컵 축구는 인간의 육체의 움직임을 최고의 정교성과 조직력으로써 발휘시키는 근육과 지혜의 조화성을 추구하고 있음.

· 즉 아름다운 긴장과 절제된 흥분의 극치임.

· 이 월드컵 경기를 음악적 종합성을 내포하는 최상의 음악형식인 심포니로 표현하여 월드컵 경기를 음악으로 감상하거나 재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제안자 배상진의 생각임.

· 배상진은 월드컵 경기내용을 다음과 같은 관점으로 보고 있음.

· 월드컵 경기장은 거대한 오선지임.

· 선수들은 오케스트라를 구성하는 각각의 악기와 같음.

선수들의 움직임은 자기의 포지션에 따라 각각의 작전영역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기 때문임. 이는 오케스트라 악기와 유사함.

· 각 선수들을 오케스트라의 악기로 생각할 때, 선수들의 동선 궤적을 집적하면 오선지상에 나타나는 각 악기의 선율로 표현할 수 있음.

즉, 장대한 심포니의 작곡이 가능함

· 다만, 음악적 선율의 조화나 리듬이 음악적 가치를 가질 수 있는가는 미지수임. 작곡가의 음악적 윤색이 필요함.

· 월드컵 경기를 이런 방식의 심포니로 작곡한다면 월드컵의 경기내용을 악보로 기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시각적 퍼포먼스라 할 수 있는 축구경기를 청각적 퍼포먼스로 전환시키는 전위 예술적 의미를 가지게 할 수 있음.

<제안의 실행>

· 이 제안은 대단히 상상력이 풍부한 예술적 제안이지만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위원회 형식의 추진체가 필요함.

· 따라서 기본적으로 위의 초청자들이 중심이 되어 이 계획의 실행에 대한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논의가 필요함.

· 참고로 배상진씨는 제안자임과 동시에 본인 자신이 컴퓨터 프로그램의 고난도 솔루션의 전문가로서 초청한 것임.(후략)

나머지는 그들이 일을 할 때 필요한 실무적인 사항이었다.

그런데, 초청장의 뒷면에 장미꽃의 윤곽으로 테를 둘러 다음과 같은 서술이 있었다.

<월드컵 조직위원회 행사조직국 검토위원의 비공식적 견해>

⌦⌫⌫

골문을 향해 치타같이 달리는 호나우드의 두발이 경쾌한 드럼으로 우리의 심장을 두드린다.

8분음의 쉼표에 이어 지휘자의 바톤이 나이아가라 폭포와 같이 수직선으로 떨어지자 우리의 온몸은 동시에 웅장한 팡파레의 심벌과 같이 떨린다.

지단이 내쉬는 파곳의 깊은 숨……

온몸으로 달려가는 공의 테마에 따라 10억의 인류는 월드컵의 오딧세이가 브라운의 섬세한 현악과 시원스런 윈드의 관악, 그리고 원초적 축제로 질주하는 타악의 조화로 재현된다.

떨리는 근육의 탄력성은 첼로의 현의 떨림과 닮았을까, 팀파니 스프링의 바이브레이션과 닮았을까.

음악의 다듬어진 예술성과 스포츠의 즉흥적 감각성이 융합되는 제3의 세계로 우리는 빠져들고 만다.

월드컵 축구 심포니에 관한 상상만으로 예술로 다시 창조되는 축구의 미학을 우리는 경이롭게 상찬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검토위원들은 슈베르트가 나뭇잎의 가느다란 떨림을 피아노로 표현하고, 요한 스트라우스가 도나우강의 잔물결을 바이올린으로 그려냈듯이, 노도와 같은 질주와 페날티 킥의 숨죽임을 심포니로 그려내는 예술성을 기대해 마지 않을 수 없다.

인간 한계의 극한을 뿜어내는 월드컵 축구의 태초적인 격정의 변화가 인류가 창조한 새로운 창작물인 사이버상의 궤적을 통해 가장 고전적인 감성이 가장 현대적인 심포니로 재창조되는 상상력을 발휘한 배상진 선생의 제안에 우리는 상상의 지평선을 저 멀리 더 바라볼 수 있게 된 듯한 희열이 있었다.

감사.

⌫ ⌫ ⌫

참으로 아름다운 영어였다.

배상진은 뛸 듯이 기뻤다.

자기의 제안이 FIFA로부터 이렇게 까지 대대적으로 환영받을 줄은 미처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배상진은 불과 30페이지에 불과한 자기의 제안이 FIFA로부터 받아들여졌을 뿐만 아니라 면밀히 검토되어 정확히 이해되고 있음에 감개가 무량했다.

그리고 명성으로만 들었던 세계의 거장들이 이 계획에 참여한다는 사실에 가슴이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바로 거기에 자신이 실행위원장이 된다고?

당치도 않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머리는 하늘을 가운데로 빙빙 돌기 시작했다.

“엘리자베스!, 엘리자베스!”

배상진은 쿵쾅거리며 좁은 아파트 복도를 뛰면서 외쳐대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잘못인지, 고의인지 아니면 FIFA의 고도의 작전인지 알 수 없지만, 월드컵 심포니 작곡에 관한 내용은 보안이 지켜지지 않았다.

초청장이 각국 관련자들에게 발송되고 난 3일 후 연합뉴스 영문판 기사에는 FIFA에서 비밀리에 남아프리카 공화국 월드컵 축구 개막식 전야제를 위한 월드컵 심포니가 각국의 거장들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추진되고 있다는 내용과 그 위원장이 한국인 배상진이라는 내용이 게재되었다.

기사에는 월드컵 심포니의 개요도 소개되어 있었다.

서해안 꽃지 해수욕장의 아침,

안면도 국제 꽃박람회 조직위원회의 조정재 자문위원은 이 기사를 뚫어지게 읽어보고 있었다.

(계속)

/우보 최민호


최민호 전 충남도 행정부지사는 전)국무총리 비서실장, 행정중심도시 복합도시 건설청장, 행자부 소청심사위원장, 행자부 인사실장, 충남도 기획관리실장, 2002 안면도 국제 꽃박람회 사무차장(운영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전)배재대학교 석좌교수, 공주대 객원교수, 고려대 객원교수, 국회의장 직속 국회의원 특권내려놓기 추진위원회 위원(2016)으로 활동했으며 현)홍익대 초빙교수이다.

단국대 행정학 박사, 일본 동경대 법학 석사, 연세대 행정대학원행정학 석사를 거쳐 미국 조지타운대 객원 연구원으로 활동했으며 영국 왕립행정연수소(RIPA)를 수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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