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호 소설] 아웃터넷(OUTERNET) 23. 후루마쓰의 연구실

[최민호 소설] 아웃터넷(OUTERNET) 23. 후루마쓰의 연구실

  • 승인 2017-08-22 17:22
  • 최민호최민호
[최민호 소설] 아웃터넷(OUTERNET) 23. 후루마쓰의 연구실 

나리코가 방문을 두드리기 이전부터 주곤중과 마순원은 이미 깨어 있었다.

후루마쓰의 집 분위기는 알 수 없는 신비감이랄까 수수께끼를 안고 있는 분위기여서 사실 깊은 잠에 빠질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새벽에 일어나면서 들이마신 공기는 참으로 상쾌하고 신선했다.

잠이 좀 부족했지만, 머리는 개운하고 맑았다. 

나리코는 장지 문 앞에서 머리를 외로 돌리고 아침 준비가 다 되었노라고 전했다.

마치 일본식여관에 묵는 손님 대하듯 지극하고 정성껏 대하는 태도는 두 사람을 매우 미안하게 했다.

저녁을 먹은 1층 거실에서 다시 밥상을 받았다.

어제와 대동소이한 반찬이다. 아침이라서 낫토에 날계란을 하나씩 상에 얹어 온 것이 다르다면 다를까, 또 하나 있다면 술이 없는 것일 뿐.

아침에는 주인 후루마쓰와 같이 식사를 할 것을 기대했던 주곤중은 아침에도 순원과 둘만 식사를 하게 되자 약간 실망이 되었다.

순원이는 아무 생각도 없는 양, 밥그릇을 손으로 받쳐 들고 잘만 먹는다.

그러면서 낫토는 손에도 안 댄다. 

“이게 뭐예요?”

“말하자면 우리나라 청국장을 날로 먹는 것이다. 건강에 좋은 것이니 먹어봐라. 일본 사람들은 매일 먹는 것이다.” 

식사가 끝나고 나리코는 그제야 두 사람과 같이 차를 마시면서 말을 꺼냈다. 

“어제 밤은 별로 잠을 달게 주무시지 못하셨겠지요, 아무래도 낯설고 불편한 것이 많은 시골이라서요.”
 
“아닙니다. 정말 잘 잤습니다. 마치 고향에 온 기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침도 변변찮아서 죄송합니다. 어제 오실 줄은 저희들은 몰랐습니다.”

미리 연락하지 않고 온 두 사람의 결례를 탓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마음이 찔렸다. 

“차를 한 잔 하시고 잠시 뒤 아버님 연구실로 다시 모시겠습니다.”

두 사람이 안내되어 간 곳은 어제 저녁 순원이가 본 별채였다.

본채와 비슷한 규모의 별채인데 이곳도 겉모양이 일본식 목조 이층 집인 것인 매한가지였다.

문패가 안 걸려 있는 것이 다를 뿐.

연구실 안에 들어선 두 사람은 그러나 흠칫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의 전통의상을 단정하게 차려 입은 중년노인이 친절하게 손님을 맞으리라고 기대하고 옷매무새를 가다듬던 주곤중은 맨발에, 말하자면 우리의 적삼 바람으로 무릎까지 바지를 걷어 올린 채 아무렇게나 놓인 소파에 앉아 두 사람을 맞는 집주인의 의외의 모습에 의표를 찔린 기분이 들었다.

더욱이 그 연구실이란 곳이 서재도 아닌, 잡동사니 기계를 잔뜩 주어다가 모아 놓은 지하창고 같은 곳일 줄이야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손님이 왔으면 일어서서 인사를 하고 정중하게 안부를 물어야 할 집주인이 손님이 올 줄은 몰랐다는 양 엉거주춤 일어서서는 아무 말도 없이 낡고 낡은 가죽소파를 눈짓으로 가리키며 앉으라고 하지 않는가? 

주곤중은 악수를 해야 할지 인사를 해야 할지 당황한 가운데 어색하게 소파에 앉았다.

나리코가 조용히 두 사람에게 말을 했다.

“두 분이 놀라지 않게 하려고 말씀을 드리지 않았습니다마는, 아버님은 말씀을 못 들으십니다. 물론 말씀을 하시지도 못하고요.

두 분이 하시는 말씀은 제가 전해 드리겠습니다마는, 혹 일본어가 가능하시다면 노트북으로 필담을 하셔도 됩니다.”

충격으로 잠시 말을 잊은 주곤중은 나리코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후루마쓰를 향해 일어나 고개를 깊이 숙여 인사를 했다.​

“한국에서 온 안면도 국제꽃박람회 전시유치부장 주곤중이라 합니다.”

나리코가 수화로 뜻을 전하였다.

순원은 극도로 흥분되며 호기심과 흥미가 마음속의 마그마를 끓게 하는 것 같았다. 순원도 주부장과 같이 고개를 깊이 숙여 인사를 하였다. 이번에는 후루마쓰도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 깊이 절을 하고는 다시 앉아 얼굴에 미소를 가득 지었다.

“죄송합니다, 이런 모습이라서. 마음 편하게 자리를 잡으시고 얼마든지 말씀해 보십시오.” 

수화로 전하는 말을 나리코가 번역했다.

주곤중은 얼마 전 앙쥬에서 일본 시즈오카의 꽃박람회 간부를 만나 나눈 이야기를 먼저 하고, 그런 기계를 한국의 안면도 꽃박람회에도 전시할 수 있는지 등을 검토하러 방문했다는 취지를 요령있게 설명했다.

“언제 꽃박람회가 개최됩니까?”

“2년 뒤 4월입니다.”

“글쎄요, 그때까지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무어라 말씀드릴 수가 없군요.”​

그렇다면?

주곤중은 생각했다. 우선 플라워텔레스코프를 보여줄 수는 없느냐고 물었다. 

“당연히 보여드리지요. 이겁니다.”​

나리코의 수화가 끝나자 후루마쓰는 방 한쪽에 자리 잡고 있는 기계 하나를 가리켰다. 20인치 TV만한 크기였다. 모니터 양쪽으로, 말하자면 뇌파탐지할 때 쓰는 센서들이 여러 개 부착되어 있었다.

이 센서들을 꽃나무의 줄기와 잎, 꽃 등 여러 부분에 부착시키고, 모니터에 하고 싶은 말을 자판으로 입력하면 꽃나무가 반응을 보이는데, 그 반응이 모니터에 파장 형식으로 그려져 나온다는 것이었다.​

“이런 종류의 기계는 일본에서는 이미 오래 전에 개발된 것입니다. 한국에도 아마 있을지 모르지요. 제가 처음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물론 이 기계는 그런 것과는 조금 다른 겁니다.”

나리코의 설명이 끝나자 후루마쓰는 다시 수화로 이야기를 했다.​

“플라워텔레스코프는 식물의 반응을 해석하기 위해 만든 겁니다. 사람이 말을 하면, 그 말을 파장으로 바꾸어 식물에게 센서의 전극을 통해 자극을 줍니다. 그러면 식물도 반응을 보이는데, 이제까지는 일정한 반응만을 보여왔습니다.

저는 기계에 파동의 개념을 도입해 모니터에 나오는 파장들을 분류해서 표출시키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이번에는 마순원이 물었다.​

“완성되면 어떤 기능을 보입니까?”​

“식물의 표현을 이해하는 거지요.”

“이를테면 식물이 말을 한다는 것입니까?”​

“그렇게 표현을 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어쨌든 반응을 보이는 겁니다. 저는 말을 못합니다. 그러나 대화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식물이 의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까? 식물이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인가요?”​

주곤중은 진실로 흥미로워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로 물었다.

이것이야말로 안면도 국제꽃박람회가 추구하는 주제, 그것 아닌가?​

“사람의 감정이나 의사와 같은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정보를 가지고 반응하는 겁니다.”

주곤중은 옆에 있는 노트북을 끌어 당겼다. 서툴기는 하지만 일본에서 공부할 때 두드렸던 워드프로세서였다. 상단에는 주곤중이 치는 단어가 입력되고 하단에는 후루마쓰의 말이 입력되었다.

“그런데 무엇이 완성되지 않았다는 겁니까?”

“반응 해독부분입니다. 반응을 표출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그러나 그 반응이 무엇을 구체적으로 의미하는지 해석이 어렵습니다. 일부는 해독했습니다마는.”​

“일부는 해독했다니요? 식물의 반응이 무슨 뜻인지 알았다는 겁니까?”

“아주 일부분만….”

“이런 것이 학회나 학계에 보고된 사실이 있습니까?”​

“뭘 보고합니까? 완성된 것이 없는데.”

마순원은 진지하게 두 사람이 일본어로 필담, 아니 노트북 담화를 나누는 모습을 구경하기만 했다. 무슨 말인지 알 길이야 물론 없었다.

이때 나리코가 살그머니 다가오며 순원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에게 노트북을 하나 건넸다. 그리고 자판에 무엇인가를 입력하는 것이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나리코입니다.”

한글이었다. 순원은 눈을 동그렇게 뜨고 나리코를 바라봤다. 노트북은 한글 전용이었다.  순원도 얼른 한글로 답변했다.  ​

“한국어를 하십니까?”

“예, 배우는 중이지만 사실은 아버지도 한국어를 공부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저도 배우기 시작했어요.”

서투르지만, 또박또박했다.​

“저 두 분은 지금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 것입니까?”

“플라워텔레스코프에 대해서예요. 순원씨는 무엇을 공부합니까?”

“물리학입니다.”

갑자기 나리코가 노트북의 자판을 매우 빠르게 치기 시작했다. 영어였다.

“Where are you studying in? what is your major? (어디서 공부하시는 거예요? 전공은?)”

“올해 한국의 과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금 막 한국 KAIST에 입학했습니다.”

“순원씨는 천재시군요. 물리학 중에서도 무엇을 공부하려고 하세요?”

“아직도 잘은 모르겠습니다마는 양자이론이나 뭐 그런 것 전공하려고 합니다. 나리코씨는?”

“저는 언어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주곤중과 후루마쓰는 무언가 합의를 한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저희들로서는 후루마쓰 선생님의 연구 성과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모쪼록 반드시 성공하셔서 안면도 꽃박람회 때 선생님의 세계적인 연구 성과가 공표될 수 있도록 기원하겠습니다. 꼭 저희 꽃박람회 때 선생님을 모시고 싶습니다.”

주곤중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다.

순원의 얼굴도 마찬가지였다. 나리코와 남모르는 비밀을 나눠 가진 것처럼 생각되면서 나리코가 새삼 가깝게 느껴졌다. 나리코는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아버지와 주부장의 수화통역을 할 뿐었지만.

‘플라워텔레스코프라….’

주곤중의 머리는 재빠르게 돌아갔다.

‘이것이 완성된다면 그야말로 세상은 혁명을 만나는 거다. 과학은 다시 해석되어야 한다. 동물과 식물? 아니다. 지구의 역사는 다시 쓰여져야 한다. 믿을 수가 없었다. 꽃의 언어를 해독한 기계를 개발 중이라니. 더구나 그 기계가 안면도 국제꽃박람회에 세계 최초로 전시만 될 수만 있다면….’ 

주곤중은 이런 생각을 머리에 그리면서 온몸이 떨리는 느낌이 들었다.

마탁소가 튜라플라네스를 가지고 흥분하고 이성을 잃는 것 같은 기분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방문목적이 달성이 된 것이다.

이제 짐을 싸서 주부장은 한국으로, 순원은 네덜란드로 떠나야 하는 것이다.

상념에 빠져 있던 주곤중은 마순원이 말을 걸어오는 바람에 깨어났다.

“저, 주 선생님. 부탁이 있는데요.”

주곤중이 눈빛으로 말을 재촉했다.

“저 며칠 여기 있다가 가면 안 될까요? 아버지에게는 제가 말씀 드릴게요.”

“그거야 내가 뭐라고 할 일이 아니다마는, 어디서?”

“여기서요. 근데 후루마쓰 선생이 허락할까요? 주 선생님이 말씀 좀 해주시면 안 될까요? 며칠 있으면서 후루마쓰 선생의 연구에 대해 좀 더 공부하고 가면 안 되냐고요. 저 아직 학생이니까요.”

주곤중은 얼른 눈치챘다.

‘이 녀석이 나리코에게 관심이 있구만….’

후루마쓰의 의사를 살피고 온 주곤중은, “후루마쓰씨가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넌지시 나리코도 싫지는 않은 것 같더라고 눈을 찡긋했다. 후루마쓰는 표정이 없었다.

마순원은 좌우간 후루마쓰의 허락 하에 며칠을 더 야마노아마고우치 산기슭에 머물게 되었다.

이 며칠간이 그의 인생의 줄기를 그토록 세차게 바꾸게 될 줄은 마순원은 그때는 몰랐다.

(계속)

/우보 최민호


최민호 전 충남도 행정부지사는 전)국무총리 비서실장, 행정중심도시 복합도시 건설청장, 행자부 소청심사위원장, 행자부 인사실장, 충남도 기획관리실장, 2002 안면도 국제 꽃박람회 사무차장(운영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전)배재대학교 석좌교수, 공주대 객원교수, 고려대 객원교수, 국회의장 직속 국회의원 특권내려놓기 추진위원회 위원(2016)으로 활동했으며 현)홍익대 초빙교수이다.

단국대 행정학 박사, 일본 동경대 법학 석사, 연세대 행정대학원행정학 석사를 거쳐 미국 조지타운대 객원 연구원으로 활동했으며 영국 왕립행정연수소(RIPA)를 수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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