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호 소설] 아웃터넷(OUTERNET) 39. 아마노기 신사의 깊은 가을

[최민호 소설] 아웃터넷(OUTERNET) 39. 아마노기 신사의 깊은 가을

  • 승인 2017-10-17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아마노기 신사의 깊은 가을에 비가 내린다.

때로는 은실같이 가늘게, 때로는 가는 솔바늘 같이 뾰족하게, 시시때때 변하며 방울방울 신사의 지붕위에 떨어진다.



신단 앞에 손뼉을 치며 아침 참례를 하고 있는 후루마쓰의 옷은 새벽부터 내리는 빗줄기에 서서히 젖어갔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절을 세 번 하고 뒷걸음질로 돌아서 신사의 문을 나설 때 빗줄기는 처마 끝에 주렴이 쳐진 듯 은실의 발이 되어 앞길을 막았다.



후루마쓰는 빗줄기를 그윽한 눈빛으로 응시하였다.

고요했다. 세상은 늘 고요하다.

정적 속의 빗줄기는 굵기와 세기가, 바람의 방향에 맞추어 아주 천천히 그렇지만 끊임없이 변하고 변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본다.

수많은 작은 창살이 내려 꽂혀온다.

끊어진 실날 같은 창살, 연실 같이 길게 늘어진 창살, 대창과 같이 굵고 실한 창살이 땅으로 떨어져 꽂혀진다.

모두 선을 이루고 있다.



zkxhr
고개를 들어 먼 산을 바라본다.

뿌연 안개 같은 작은 방울의 무리가 반투명한 은막을 이루며 비단 천과 같이 산을 가리기도 하고 드러내기도 한다.

현란한 오로라와 같이 빗방울의 막들은 바람에 따라 그 면의 크기와 짙고 옅은 농담을 바꾸어 가며 꿈결같은 흰색의 화상을 만들어 내고 있다.

부연 영상막이 하늘하늘 아지랑이처럼 나부끼며 세상은 온통 은막으로 가득한 무대가 되어 빗방울들이 펼치는 춤의 향연으로 가득 차 있다.

고개를 내려 땅을 쳐다본다.

땅은 빗물에게 스스로의 자리를 다소곳이 내어주고 있다.

땅에 떨어지는 빗줄기는 선도 면도 아닌 점이다.

빗방울이 똑똑 땅을 노크하고 있다.

땅이 내어주는 빗방울의 집은 어느덧 손바닥 만한 물웅덩이가 되어간다.

여기저기 작은 웅덩이들이 앞마당에 탄생하고 있었다. 이제 작은 호수를 이루리라.

가을비에 단풍은 낙엽이 되고, 화려한 그 옷도 벗어버리겠지만, 소나무가 많은 신사에는 낙엽보다는 푸른 낙송들이 작은 호수들 속에 잠겨 있었다.

묵묵히 서 있는 소나무의 바늘 가지 끝에 맺혀있는 방울진 빗물은 하나하나가 수정같이 맑았다.

수정방울들은 소나무에 매달려 잠시 세상을 내려다보다 땅을 향해 자기 몸을 던져 작은 호수 속으로 사라져 가곤 했다.

가늘고 긴 빗줄기, 굵고 힘찬 빗줄기, 방울로 떨어지는 빗줄기, 흐느끼듯 나부끼는 빗줄기, 이어지듯 끊어지다가 다시 쏟아 붇는 빗줄기가 연출하는 산속의 교향악.

소리를 들어 본 바는 없었지만, 후루마쓰는 적막 속에 펼쳐지는 현란한 파노라마 속에서 빗줄기가 연출하는 강하고 여린 소리들이 조화를 이루며 내는 아름다운 자연의 심포니를 느낄 수 있었다.

웅장하다가 애간장을 녹일 듯 애절한 자연의 화음에 넋을 잃고 시간을 보낸 적이 한두 번이었던가?

후루마쓰는 하늘로부터 오는 심포니가 들려주는 속삭임에 늘 귀를 기울였다.

구름에서 비는 내리지만, 구름은 또 비가 만들어 내는 것.

저 빗방울들은 세상을 돌고 돌며 승천과 환생을 되풀이하여 몇 억 겁의 윤회를 거듭해온 해탈의 존재들이 아니던가.

빗줄기가 소나무를 건드릴 때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소나무는 그들에게 무슨 말을 듣고 있는 것일까.

맑은 날 머리를 들어 구름에게 했던 말들이 빗물에게 전달되어 다시 속삭이는 그 말들은 무슨 이야기일까.

떨어지며 전하는 빗줄기들의 수많은 말들을 후루마쓰는 진정으로 듣고, 듣고 또 듣고자 하였다.

들리는 사람들에게는 들리지 않는 이 속삭임에 귀 기울이는 후루마쓰를 보는 사람들은 그가 무엇을 듣고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서서히 신사 문을 나섰다. 맨발로 빗물과 땅과 흙이 빚어내는 기막힌 부드러움을 발바닥으로 느끼며 팔백 아흔 한 개의 계단을 하나하나 밟으며 내려왔다.

891.

3,3,3, 다시 9,9,9.

세상은 셋의 원소로 이루어 진 것이다. 하늘과 땅과 생명들.

우주는 3으로 그 존재를 이루어 내었다.

3의 셋인 9는 변함이 없는 법.

891의 합도 분해하면 9와9의 합이요. 이의 2배 3배의 아니 수십 배의 어떤 수도 다시 9로 다시 3으로 돌아오지 않을 수는 없는 법.

우주의 비밀을 간직한 계단을 걸어 후루마쓰는 신사를 내려와 길 옆 소나무가 자연으로 만들어 낸 한 그루터기에 앉았다.

백년이 넘게 자라던 소나무가 한 여름 밤 번개의 은혜를 받았음인지 무릎 쯤 와 닿는 부분에서 반듯하게 잘리면서 입적하고 말았다.

그루터기는 명상의 좌대가 되었다.

좌대에 자리를 잡은 후루마쓰는 오른발을 왼 무릎 위에 얹었다.

허리를 반듯이 세우고 눈을 감고 힘과 기를 한곳에 모으기 시작했다.

무념무상.

소나무 위의 소나무라도 된 양 미동도 하지 않고 앉아 있는 후르마쓰의 머리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가면서 머리뿐만 아니라 온 몸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김은 점점 짙어가고 후루마쓰의 얼굴빛도 점점 소나무의 붉은 빛깔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빗줄기는 비단결이 바람결에 나부끼듯 몸을 감싸며 적시고 있었다.

명상에 젖어, 비에 젖어, 더운 김이 되어 피어나는 후루마쓰가 소나무 좌대 위에 앉아있자, 후루마쓰의 몸 위에 떨어지는 빗줄기가 한송이 한송이 꽃잎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빗방울이 후루마쓰 몸 위의 보이지 않는 은막 위에 떨어져, 튕겨 나가는 빗방울 마다 아름다운 꽃잎모양이 되고 있는 것이었다.

꽃잎은 매화꽃을 닮았다.

빗방울은 감히 그 몸을 적시지도 만지지도 못하며 몸 위의 공간에서 수없는 매화꽃잎을 피워내고 있었다.

빗줄기가 점점 굵어졌다. 매화꽃잎 역시 점점 커졌다.

머리와 어깨위에서 수없이 아름다운 매화꽃잎을 피워내면서 후루마쓰는 좌대위의 그윽한 부처가 되어 있었다.

(계속)

우보 최민호

최민호컷1
최민호 전 충남도 행정부지사는 전)국무총리 비서실장, 행정중심도시 복합도시 건설청장, 행자부 소청심사위원장, 행자부 인사실장, 충남도 기획관리실장, 2002 안면도 국제 꽃박람회 사무차장(운영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전)배재대학교 석좌교수, 공주대 객원교수, 고려대 객원교수, 국회의장 직속 국회의원 특권내려놓기 추진위원회 위원(2016)으로 활동했으며 현)홍익대 초빙교수이다.

단국대 행정학 박사, 일본 동경대 법학 석사, 연세대 행정대학원행정학 석사를 거쳐 미국 조지타운대 객원 연구원으로 활동했으며 영국 왕립행정연수소(RIPA)를 수료했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파멥신' 상장 폐지...뱅크그룹 '자금 유출' 논란 반박
  2. "중부권 산학연 역량 모은 혁신 벨트 구축 필요"…충남대 초광역 RISE 포럼 성료
  3. [사설] 지역이 '행정수도 설계자'를 기억하는 이유
  4. 대전교도소 수용거실서 중증 지적장애인 폭행 수형자들 '징역형'
  5. 2월 충청권 아파트 3000여 세대 집들이…지방 전체 물량의 42.9%
  1. 대청호 수질개선 토지매수 작년 18만2319㎡…하천 50m 이내 82%
  2. [사설] 대전·충남 통합, 여야 협치로 풀어야
  3. 포춘쿠키 열고 ‘청렴의식 쑥’
  4. 2025 대전시 꿈드림 활동자료집 '드림이쥬3'
  5. 대전·세종·충남 작년 수출 1000억불 돌파 '역대 최대'… 우리나라 전체 1/7 차지

헤드라인 뉴스


선거 코앞인데…대전·충남 통합시장 법적근거 하세월

선거 코앞인데…대전·충남 통합시장 법적근거 하세월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예비후보자 등록이 다음 주부터 시작되지만, 통합시장 선거에 대한 법적 근거가 마련되지 않아 일선에서 혼선이 가중되고 있다. 행정통합 논의가 급물살을 타는 것과 달리 통합시장 선출을 위한 제도적 준비는 하세월로 출마 예정자들의 속만 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다. 현재로선 통합시장 선거에 깃발을 들고 싶어도 표밭갈이는 대전과 충남에서 각개전투를 해야 하는 상황으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27일 대전·세종·충남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제9회 전국동시 지방선거 예비후보자 등록은 다음달 3일부터 광역단체장과 교육감 선거를..

대전 주요 외식비 1년 새 6% 인상... 도시락 싸는 직장인 많아졌다
대전 주요 외식비 1년 새 6% 인상... 도시락 싸는 직장인 많아졌다

대전 주요 외식비가 1년 새 많게는 6% 넘게 오르면서 직장인들의 부담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김치찌개 백반은 전국에서 가장 비싼 음식으로 등극했고, 삼겹살을 제외한 7개 품목 모두 가격이 일제히 상승하며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는 이들도 늘어나는 모습이다. 27일 한국소비자원 가격정보시스템 참가격에 따르면 2025년 12월 기준 대전 외식비는 삼겹살 1인분 1만 8333원이 전년대비 동일한 것을 제외하곤 나머지 7개 품목 모두 상승한 것으로 조사됐다. 가장 많은 오름세를 보인 건 김밥으로, 2024년 12월 3000원에서 2025년..

故 이해찬 전 총리 대전시민분향소 지역정치권 추모행렬
故 이해찬 전 총리 대전시민분향소 지역정치권 추모행렬

고(故) 이해찬 전 국무총리의 서거에 대전 정치권이 정파를 넘어 애도의 뜻을 모았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대전시당 인사들이 잇따라 시민분향소를 찾아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27일 더불어민주당 대전시당에 마련된 시민분향소에는 이날 이른 아침부터 시민들뿐 아니라 여야 정치권 인사들도 분향소를 찾아 헌화와 묵념으로 고인을 추모했다. 김제선 중구청장과 정용래 유성구청장은 출근 전 분향소를 찾아 헌화와 묵념으로 애도의 뜻을 전했다. 오후 3시에는 박정현 대전시당위원장을 비롯해 장철민·장종태 국회의원, 허태정 전 대전시장과 당원들이..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유성경찰서, 귀금속 취급업소 순찰강화 대전유성경찰서, 귀금속 취급업소 순찰강화

  • 이해찬 전 총리 대전 분향소 시민들 발길 이해찬 전 총리 대전 분향소 시민들 발길

  • 포춘쿠키 열고 ‘청렴의식 쑥’ 포춘쿠키 열고 ‘청렴의식 쑥’

  • 강추위에 얼어붙은 인공폭포 강추위에 얼어붙은 인공폭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