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호 소설] 아웃터넷(OUTERNET) 44. 플라워텔레스코프의 언어

[최민호 소설] 아웃터넷(OUTERNET) 44. 플라워텔레스코프의 언어

  • 승인 2017-11-03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마순원이 야마노아마고우치를 다시 찾은 때는 후루가와 마을이 이제 막 겨울의 초입에 들어서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몇 개월 전 짧은 만남에 이어 다시 보게 된 나리코와 순원은 서로 마치 오랜 연인의 재회처럼 반갑고 애틋한 감정까지 느꼈다.



나리코는, "아버지는 요즘 거의 연구실 외에는 바깥출입을 하지 않으십니다"고 들려주었다.

순원은 직감적으로 두 부녀가 새로운 발견에 몰두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이튿날 틈을 봐 가면서 순원은 나리코에게 플라워텔레스코프에 대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문제는 언어예요."

잠시 뜸을 들이던 나리코는 담담하게 그동안의 진전에 대해 털어놓았다.

"아버지와 저는 이미 식물에서 일정한 감정을 표출하는 파장을 읽어냈어요. 그건 이미 몇 년 전의 일이고, 전에 말씀드린 내용입니다. 식물에게 일정한 전자파를 보내면 이에 감응하는 식물마다 제각기 나름의 파장을 보낸다는 것이죠. 그 파장을 기록하는 기계가 플라워텔레스코프지요.

그렇지만 아버지는 파장의 의미까지 알고 싶어 하셨습니다.

식물의 메시지를 우리가 이해하는 의미로 해석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입니다. 결국 인간은 언어로 사물을 해석하는 것이니까, 언어적 방법을 고안해 보려고 하는 시도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제가 할 일이죠."

"언어라 하지만 누구의 언어인가요? 식물의 메시지를 언어로 표시하자면 어느 언어를 특정하지 않으면 안 되지 않겠어요?"

나리코는 고개를 돌려 순원을 소리 없이 응시했다.

"인간의 언어에는 놀라운 유사성이 있지요. 한국어와 일본어를 예를 든다면 쉽게 이해가 갈 줄 압니다.

그렇지만 아버지와 저의 관심은 인간의 언어가 아닙니다. 식물의 감정이지요. 이제까지 연구 결과로는 식물의 단순한 감정표시는 파악할 수 있었지요. 하지만 식물도 이성적이고 지능적인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우선 일차적인 것은 식물의 단순한 감정을 해석하는 일이지만, 감정이라는 것도 식물의 감정과 인간의 감정이 같을 수는 없겠지요. 그런데 감정이라는 일차적인 반응, 즉 본능적 반사라고 할 수 있는 이 감정도 보다 풍부하게 해석을 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풍부한 감정의 언어가 필요하게 됩니다.

우리는 그 언어를 찾아내고 있습니다."

"어려워서 잘 이해가 안 되는군요."

"다시 말하면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언어들 가운데 그러한 형용사가 가장 많은 언어를 찾는 작업이지요.

결론적으로 저는 한국어에서 찾고 있습니다.

지구상에는 천차만별의 언어가 존재합니다. 어휘수도 각각 다르지요.

영어는 이제 100만 어휘를 자랑한다고 합니다.

일본어도 대개 비슷합니다. 80만내지 90만 어휘가 있습니다.

한국어는 약 50만정도 됩니다. 한국인들은 잘 모르고 인정하기 싫으시겠지만 일본어의 어휘수보다 적습니다.

지식이 많아지면 이를 표시하는 어휘는 늘 수밖에 없습니다. 어휘는 지력의 수준과 비례한다고 보아도 크게 틀리지는 않습니다."

나리코는 이 대목에서 무척 조심스러워했다. 순원의 감정을 의식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한국인들이 지력이 부족하다고 말씀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부족한 지식언어는 직접 차용해서 쓰니까요. 한국에 영어가 범람하는 이유입니다. 스스로 창출한 지식이 없는 나라는 자기 고유의 지식언어가 부족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감정을 말하고 있습니다. 제 짧은 지식에도 한국어는 감정표현 어휘가 어느 나라 언어보다 발달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욕설이 그러한 사실을 증명합니다. 사실 일본어에는 그렇게 다양한 욕설은 없습니다. 기껏해야 10가지 정도나 될까요.

한국의 형용사는 다른 언어로 번역이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슬프다'라는 의미를 전하는 표현에 '서럽다', '구슬프다', '서글프다', '애통하다', '애끓다', '애간장이 녹는다' 등등 다양하지요. 그 밖에 또 뭐가 있을 겁니다.

아버지와 저는 여기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식물의 감정 영역이 어디까지인줄 모르기 때문에 가능한 한 많은 감정표현을 가진 언어를 사용해 식물의 감정에 대입할 필요를 느끼는 것이지요. 그래서 한국어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나리코씨가 한국어에 그렇게 정통한 줄은 몰랐습니다. 대단하십니다."

"이러한 이유로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지만 한국어는 일본어와 문법구조가 같아서 쉽게 해득할 수 있었어요. 혹시 한국어와 한글과의 관계에 대해 순원씨는 생각해 보신 적이 있나요?"

"한국어와 한글?"

"그렇지요. 한국어와 한글. 한글이 없었을 적에도 한국어는 있었습니다. 한글은 훨씬 뒤에 생겼지요. 그렇지만, 한글이 생긴 뒤로 한국어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렇겠네요"

"그 변화 중 가장 큰 변화는 최근 들어서입니다.

소위 한국에서 한글전용론이 확산되면서부터이지요. 한글전용이 확산되고 한자 사용이 점점 없어지면서, 한국어의 어휘 수는 급격하게 줄고 있습니다. 줄고 있다기 보다는 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하겠군요. 한국어의 어휘가 영어어휘로 급속하게 대체되고 있는 것입니다."

"......."

"당연합니다.

한글은 음운표시 방법으로서는 세계적으로도 가장 우수한 문자체계중 하나입니다. 한국인은 한글에 대해서 정말 자부할 만합니다.

문자를 모르는 어린이의 발음은 자유롭지요. 그렇지만 문자를 배우고 나서는 발음이 고착됩니다.

문자는 발음을 구속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글은 음을 나타내는데 어느 문자보다도 간단하고 쉽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중국의 한문은 이점에서 가장 불리하지요. 문맹이란 말을 문자로 쓰지 못하는 것인데 한글은 문맹을 만들어내지 않습니다.

너무나 쉽기 때문이죠.

그렇지만 한글은 결정적인 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어휘를 만들어내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한글로는 소리를 나타낼 뿐 뜻을 나타내지 못합니다. 뜻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한문이 매우 유리하지요.

한글은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내는데 방법이 없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쏟아져 들어오는 영어를 직접 사용하는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한문은 영어를 다시 한문으로 개조해야 하는 단점이 있지만 어쨌든 중국인들은 자기의 어휘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어의 어휘수가 제약을 받는 것은 그래서입니다.

일본어는 한문과 가나를 적당히 배합하여 발음은 가나로, 뜻은 한문으로 표기합니다. 그래서 일본어의 어휘는 언제든지 늘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한글의 단점을 이야기하면 한국인들은 늘 기분 나빠하더군요. 기분 나빠한다고 한글이 발전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리코씨는 한글과 한문을 병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까?"

"제가 무어라고 하겠습니까? 언어학적으로는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한글만으로는 고급 개념을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추상(抽象)이라는 개념을 한글로 나타낼 수 있습니까? 또 추상(追想)이라는 개념을 한글로 나타낼 수 있습니까?

이러한 '추상'은 수없이 많습니다. 같은 발음이지만 다른 뜻의 동음이의어를 한글로 어떻게 해결할 수 있나요?

한글로는 문맥 속에서 의미를 해석해야 합니다. 그러나 아직은 다행스런 편입니다. 한문을 영영 안 쓰다 보면 그 수많은 추상의 개념도 결국 없어져 버리고 말 것입니다. '抽象'과 '追想'의 차이는 그 한문을 읽을 줄 아는 사람만이 이해하는 것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결국 한국어의 어휘수는 장래에 엄청난 위기를 맞을 수 있지요.

언어학적으로 보았을 때의 저의 견해입니다."

"한글로 어휘를 만들어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최근에 한국에서는 이러한 신조어가 많이 있습니다만...."

순원은 썩 자신은 없는 말을 하였다.

"맞습니다. 한글로 어휘를 못 만들라는 법은 없지요. '비행기'를 '날틀'이라고 한다든가 하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지요. 그렇지만 '날틀'이라고 할 때에도 '날'이라든가 '틀'이라든가 하는 어휘는 결국 뜻글자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한글에는 이러한 고유한 한글 뜻을 가진 어휘가 한자어에 비하면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적다는 것이지요. 결국 한문에서 온 개념을 한글로만 표기한다는 식이 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소리글자에 어휘생산의 한계가 있는 것은 언어학상 당연한 것입니다.

영어도 마찬가지이지요. 그래서 영어에서도 라틴어의 어원을 살려 어휘를 만듭니다. 한글과 한문의 관계와 비슷하다고 할까요?

결국 고급 개념의 생산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지요. 한국인들이 이 명백한 이치를 굳이 부정하려 하거나 외면하려는 이유를 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글은 가장 컴퓨터에 적합한 글자체라고 하던데요. 영어 알파벳보다도 쉽고 빠르게 컴퓨터에 입력시킬 수가 있습니다. 일본이나 중국의 한자를 입력하기 위해서는 이중의 작업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일단 일본어로 치고 다시 한자로 변환해야 하는... 한글은 그런 과정이 필요 없습니다. 만일 한자를 병행해서 써야 한다면 한글의 그야말로 놀라운 첨단기능성은 포기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별개의 문제라고 봅니다.

한문을 배워 어휘수를 늘리는 것하고 한글전용하고는... 예를 들어 고교이상의 수업에서 한문을 배워 지식층의 어휘 해득도를 높이면 이들 지식인들이 한글 어휘수를 늘려줄 수 있지요. 마치하바드 대학에서 라틴어를 배우듯이 말입니다.

하지만 지금 말씀하신대로 컴퓨터언어로서 한글은 미래지향적이라서 저는 플라워텔레스코프의 입력언어로 최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아무튼 저는 순원씨가 여기 계시니 정말 기쁩니다. 함께 계시면서 꽃의 감정을 한글로 표시되도록 하는데 도와주실 수는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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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원은 고개를 돌려 나리코를 곁눈으로 쳐다보았다.

나리코의 눈과 마주쳤다.

나리코는 미소를 짓고 순원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가슴이,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런 바보, 사내 녀석이...' 싶었다.

(계속)

우보 최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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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호 전 충남도 행정부지사는 전)국무총리 비서실장, 행정중심도시 복합도시 건설청장, 행자부 소청심사위원장, 행자부 인사실장, 충남도 기획관리실장, 2002 안면도 국제 꽃박람회 사무차장(운영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전)배재대학교 석좌교수, 공주대 객원교수, 고려대 객원교수, 국회의장 직속 국회의원 특권내려놓기 추진위원회 위원(2016)으로 활동했으며 현)홍익대 초빙교수이다.

단국대 행정학 박사, 일본 동경대 법학 석사, 연세대 행정대학원행정학 석사를 거쳐 미국 조지타운대 객원 연구원으로 활동했으며 영국 왕립행정연수소(RIPA)를 수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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